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 / 김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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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과 <이타적 유전자>를 통해 국내에서도 탁월한 과학저술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매트 리들리가 性선택 이론을 근간으로 인간의 성격과 행태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학습이냐, 본능이냐. 저자의 주장은 두 가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의 공통점은? 유전자 과신론자가 아니라, 유전자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는 건, 그들을 <차별>해야 된다는 얘기랑은 다르다. <실재하는 차이>를 부정하면서 모든 것을 <교육>과 <환경>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리들리의 주장대로 <인정>하고 맞닥뜨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

난 리들리의 책들을 참 좋아한다. 특유의 재치있고 명쾌한 설명. 낙관적이면서도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전공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다. 과학맹신론과, 과학낙관론은 엄연히 다르다. 리들리는, 리처드 르원틴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처럼 '인간 복제 이뤄지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겁주는 대신 <인간을 위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과학낙관론자에 해당된다. 미리부터 겁내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실 무시한채 과학의 발전을 겁내기보다는, 과학의 성과들이 공정하고 생태지향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감시하면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성의 유전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할 것 같다. 유전자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지식들을 <유전자 결정론>이나 <성차별적 주장> 혹은 <신 우생학>으로 평가절하하지 말고, 그 정보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여자와 남자는 분명 다르고, 그 차이점은 우리 유전자가 지난 수백만년 동안 형성해온 역사적 과정의 일환이다. 남아선호 역시, 역사적 맥락과 함께 <유전적 맥락>을 갖고 있다. 우리의 본능은, 더 좋게 나아지기 위해 있다는 것이라는 인용구가 머리에 남는다.

리들리의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과학사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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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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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월드컵 때 한국이랑 터키랑 사촌입네 혈맹입네 하더니 급기야 <터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나왔다. 책 출간되고 나서 교보문고 복도 가운데에 판매대를 만들어놓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봤었다. 이미 그 전해에 9.11 테러 여파로 이슬람에 대한 책들, 심지어는 노엄 촘스키의 그 복잡한 책들까지 팔려나가는 걸 보면서 한국인들의 엄청난 지식욕과 유행바람 두 가지 모두에 놀랐었는데 월드컵이 불러온 터키 열품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터키에 오래 살아온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책 <터키>는 가이드북으로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대략적인 지리-역사-종교-사회관습-정치구조 등등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게, 경험을 곁들여 말해주니 꼭 여행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재미가 있다. 한 페이지 걸러 한 장씩 사진자료가 나오니(저자가 직접 찍은 것은 아니지만) 보기에도 심심찮고 도움이 많이 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터키와 아랍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 아랍과 다른 터키만의 특성이나, 터키 뿐 아니라 아랍 문화의 공통점인 사항들이 모두 뒤섞여서 정작 <터키의 특징>을 알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그 점이 오히려 전문지식 늘어놓는 것보다는 소박하게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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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경제발전, 환경
셰르스틴 린달 지음, 박영한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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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 이론을 이리 씹고 저리 씹어서 인구 얘기를 하는데,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재미없고 주제도 불명확하다. 번역도 엉망이고, 집필 시가 자체가 90년대 초반이어서 각종 통계자료를 비롯한 근거들이 지금은 이미 '약발' 떨어진 것들이다. 제목만 그럴듯할 뿐. 알라딘에서 책을 사면(다른 인터넷 서점들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지만) 원작의 출판시기가 아니라 국내 발행시기만 확인하고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종종 하게 된다.

리처드 르원틴의 'DNA 독트린'도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격변'하는 세계에서, 이미 낡은 이야기가 돼버린 예전의 책을 요즘 나온 것으로 알고 덜커덕 사버리는 경우. 특히 린달의 이 책은 자료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 제목 자체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인구와 환경의 문제를 어거지로 갖다 끼워맞추려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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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에 담은 동남아시아 역사
밀턴 오스본 지음, 조흥국 옮김 / 오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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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책이었다. 말레이사, 필리핀사를 모두 섭렵할 의욕은 없는데 업무상 개괄적인 역사를 알아야겠고...허니, '한 권에 담은' 류의 책들이 겉핥기 공부에는 가장 좋은게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헌데, 장난이 아니었다. 방대한 지역의 역사를 '한 권'으로 읽는다는 게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겠지. 특히 십여년간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도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침 한번 안 튀기고 지나갔으니. 유럽에 대해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니 '카놋싸의 굴욕'이니 하는 것까지 시시콜콜 배우고 연도를 외우면서, 정작 아시아라면 동남아는 물론, 인도와 일본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운 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동남아시아'란 과연 어디냐 하는 건데, 나는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시아에서 중국 아래쪽, 인도를 뺀 지역(^^)이라고. 이 지역의 특징은, 이른바 제3세계 대부분이 그렇듯이 도시와 농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개발과 미개발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 모두 식민통치의 결과다. 동남아시아의 과거를 핵심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식민통치'다. 그 전의 역사(저자인 오스본은 '고전적인 시대'라고 불렀다)에 관해서라면, 보로부두르와 앙코르와트의 유적들, 스리위자야 제국 정도밖에 모른다.

이렇게 '고전시대'의 이야기는 얼렁뚱땅 넘어간채, 시간은 식민시절로 흘러간다. 특히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은, 독립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동남아시아에서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장기간의 전쟁 끝에 독립한 대표적인 나라들. 그런데 어째서 베트남에서만 공산혁명이 성공했을까? 또 동남아와 일본의 관계는? 아이러니하지만, '동남아에서 일본의 만행'에 반발하는 이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난 네덜란드인들과, 필리핀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다. 필리핀과 태국 등지에서는 '일제 협력자'의 불완전한 청산 문제가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 실태를 잘 모르겠다.

재미난 것은, 70년대 이후 아세안 지역과 공산국가들로 양분돼 있는 동남아의 상황에서 남북한의 확대판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 좌익-우익이 혼재해 있다가 (38선과 전쟁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남북한으로 갈리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을 이 지역도 거쳤다는 거다. 막사이사이가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었다니! 필리핀에서는 루손 섬을 기지로 한 '후크운동'이라는 공산주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이들 후크세력들은 해방정국의 인민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토지개혁을 주장했다고 한다. 경제체제의 총체적인 변혁을 가져올 토지개혁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후크반란→막사이사이의 후크세력 제압과 친미정권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

그렇다면 역사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논란-지속성과 변화 가운데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쉽게 결론내릴 수는 없지만 다만 정치적 리더십의 측면에서 보자면 동남아의 20세기는 '오래된 지배집단'들과 '새로운 엘리트들'이 혼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엘리트의 대표적인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총리같은 사람이다. 분명 20세기는 이 지역에서 기술관료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 시기였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지역에서는 '폭동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는가-성공가능성이 매우 낮은데도 불구하고 농민폭동이 빈발하는 것은, 농민들의 불만이 그만큼 깊고 절망적이기 때문. 결국 빈부의 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의 문제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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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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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벌써 한 해도 전에 얻어와서 집에 굴리고 있었는데, 회사 안 가고 버려진 책처럼 저 자신도 뒹굴뒹굴 하는 김에 책장을 펴들자마자 후다닥 읽었습니다.

토토는 도쿄에 사는 여자아이입니다. 전철을 탈 때에는 역무원이 되고 싶고, 친동야(광고맨)를 보면 친동야가 되고 싶고, 스파이가 되고 싶다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가, 수시로 꿈이 바뀌는 여자아이인데 '주의가 산만'(이런 말 듣는 아이들 주변에 많이 있었죠^^)하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죠. 소학교 1학년인 주제에 퇴학을 당해서, 요즘식으로 말하면 '대안학교'에 해당되는 도모에학원으로 전학을 갑니다.

혼자서 종알종알 떠들어도 4시간씩이나 들어주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과 낡은 전차를 개조한 학교. 이 책은 새 학교에서 토토가 만나는 친구들과 수업, 하루하루 벌어지는 일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예전에 하이타니 겐지로의 '토끼의 눈'(우리나라에는 처음에 '어른학교 아이학교'라는 이름으로 번역됐다가 후에 완역됐었죠)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교육문제를 담은 비슷한 책이었어요. 그 책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뒤에 하이타니의 군국주의 동화를 읽고 몹시 실망하긴 했었지만- 그 책이 교사들의 입장에서 쓴 것이었다면, '창가의 토토'는 어디까지나 아이의 눈으로 기억을 더듬었다는게 다릅니다.

토토는 저자인 테츠코의 어릴적 애칭인데, 테츠코는 지금은 아사히TV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20년째 진행하고 있는 저명인사라고 합니다. 작가의 후기를 보니 안타깝게도 도모에학원은 2차대전 때 폭격으로 불타버렸고, 고바야시 선생님은 60년대에 숨지고 말았다는군요.

어릴 때 어른들한테 뭔가 '눌린' 기억 다들 하나씩, 아니 수만가지씩 갖고 있을 겁니다. 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려서 뭘 배운다거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중압감은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자체가 무겁고 딱딱하고, 더우기 옛날에는 반공새마을교육까지 겹쳐서 자연이니 아이들의 꿈이니 하는 것들은 완전히 무시를 했었잖아요.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생각 하면서 재미있게 읽고, 또 토토의 소아마비 친구가 죽었을 때 조금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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