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에 담은 동남아시아 역사
밀턴 오스본 지음, 조흥국 옮김 / 오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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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책이었다. 말레이사, 필리핀사를 모두 섭렵할 의욕은 없는데 업무상 개괄적인 역사를 알아야겠고...허니, '한 권에 담은' 류의 책들이 겉핥기 공부에는 가장 좋은게 바로 이런 것 아닌가.

헌데, 장난이 아니었다. 방대한 지역의 역사를 '한 권'으로 읽는다는 게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겠지. 특히 십여년간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도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침 한번 안 튀기고 지나갔으니. 유럽에 대해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니 '카놋싸의 굴욕'이니 하는 것까지 시시콜콜 배우고 연도를 외우면서, 정작 아시아라면 동남아는 물론, 인도와 일본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운 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동남아시아'란 과연 어디냐 하는 건데, 나는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시아에서 중국 아래쪽, 인도를 뺀 지역(^^)이라고. 이 지역의 특징은, 이른바 제3세계 대부분이 그렇듯이 도시와 농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개발과 미개발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 모두 식민통치의 결과다. 동남아시아의 과거를 핵심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식민통치'다. 그 전의 역사(저자인 오스본은 '고전적인 시대'라고 불렀다)에 관해서라면, 보로부두르와 앙코르와트의 유적들, 스리위자야 제국 정도밖에 모른다.

이렇게 '고전시대'의 이야기는 얼렁뚱땅 넘어간채, 시간은 식민시절로 흘러간다. 특히 내가 궁금해했던 것들은, 독립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동남아시아에서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장기간의 전쟁 끝에 독립한 대표적인 나라들. 그런데 어째서 베트남에서만 공산혁명이 성공했을까? 또 동남아와 일본의 관계는? 아이러니하지만, '동남아에서 일본의 만행'에 반발하는 이들 중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난 네덜란드인들과, 필리핀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다. 필리핀과 태국 등지에서는 '일제 협력자'의 불완전한 청산 문제가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 실태를 잘 모르겠다.

재미난 것은, 70년대 이후 아세안 지역과 공산국가들로 양분돼 있는 동남아의 상황에서 남북한의 확대판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 좌익-우익이 혼재해 있다가 (38선과 전쟁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남북한으로 갈리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을 이 지역도 거쳤다는 거다. 막사이사이가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었다니! 필리핀에서는 루손 섬을 기지로 한 '후크운동'이라는 공산주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이들 후크세력들은 해방정국의 인민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토지개혁을 주장했다고 한다. 경제체제의 총체적인 변혁을 가져올 토지개혁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반발→후크반란→막사이사이의 후크세력 제압과 친미정권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

그렇다면 역사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논란-지속성과 변화 가운데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쉽게 결론내릴 수는 없지만 다만 정치적 리더십의 측면에서 보자면 동남아의 20세기는 '오래된 지배집단'들과 '새로운 엘리트들'이 혼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엘리트의 대표적인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총리같은 사람이다. 분명 20세기는 이 지역에서 기술관료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 시기였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지역에서는 '폭동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는가-성공가능성이 매우 낮은데도 불구하고 농민폭동이 빈발하는 것은, 농민들의 불만이 그만큼 깊고 절망적이기 때문. 결국 빈부의 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의 문제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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