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한스 그라스만 지음, 염영록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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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넬은 앙칼지지도 않고 경망스럽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소녀였다. 그렇게 평범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리넬은 도망자였다.'

청소년을 위한 물리학 개론서 형식으로 돼 있는데, 특이하게도 1장은 <이리넬의 도망>이라는 소설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서문 격인 이 글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는 언제나 독재자(혹은 사람의 감정을 매몰시키고 사람의 생각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독재자에게 도망치려는 사람들 또한 항상 있게 마련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를 피해 물리학 공부로 <도피>해 들어왔던 이리넬이라는 소녀처럼. 저자인 한스 그라스만은 이리넬과 같은 사람이 다음번에 도망할 때 도움을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리넬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머리 속에 조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요슈타인 가아더의 <카드의 비밀>에 나오는 그 어린 소년의 모습이. 가아더가 그 어린 소년을 여행지로 불러들이면서 <철학>과 <자유>를 슬그머니 꺼내놓는 것처럼, 그라스만은 이리넬이라는 소녀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어느틈에 <물리학>과 <사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철학, 자유, 그리고 물리학과 사색.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단어들이고, 실제로 두 책 모두 철학과 자유, 물리학(세상의 법칙)과 사색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결국 물리학이건 철학이건 <사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라스만은 말하는데, 이 사색이라는 말이 계속 날 머리를 쿵쿵 때렸다. '우리로서야 그 공식이 너무나 간단해서 암소나 파리까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어깨를 으쓱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이 물리학은 아니다. 풀밭에 서있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 그늘에 앉아 쉬면서, 오후가 되어 멀리 시선을 던져 그 공식에 대해서 사색에 잠긴다면, 그때서야 그것을 진정한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색하다'라는 말은 턱을 괴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생각에 잠기다'라는 말이 훨씬 나은 표현일 것 같다.'

그렇게 사색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바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지혜로우면서도 관조적인 눈빛으로 볼 수 있는 비결이고,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조커 혹은 자유정신을 내쫓아버리지 않는 길 아닌가.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나같은 독자에게 그라스만은 학제적인 의미로서의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툭툭 던져준다. 나는 지금 왠지 모르게 신나고 두근거리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그가 던져준 화두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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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쟁 - 빈 라덴 조직과 미래의 테러
사이먼 리브 지음, 황의방.한영탁 옮김 / 중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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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꽂아만 놓고 있다가, 갑자기 손이 그리로 가는 바람에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원제(The New Jackals)에서 알 수 있듯, 20세기 최고.최악의 테러리스트로 꼽혔던 자칼의 뒤를 잇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는 93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의 주범인 람지 유세프, 후반부는 지난해 9.11 테러의 마스터마인드 오사마 빈라덴의 이야기이다. 오사마에 대한 것들은 지난해 하도 많이 봐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사건들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재구성해놓아 재미있었다.

지난해 쏟아져나왔던 외신들은 람지 유세프가 오사마의 사주를 받았던 것으로 추측한데 반해 리브는 두 사람 간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책이 쓰여진 것은 1999년인데 9.11 테러를 염두에 두고 읽으니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다. 저자는 미국 테러수사요원들을 꼼꼼하게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충실히해서 자칫 <그럴싸한 소설>로 보일 수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를 사료로 격상시켜놓는다. 이슬람 자체에 대한 비난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것도 맘에 드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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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재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안철흥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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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꽂이에 얹어두고 있다가 다시 꺼내 읽었는데 뜻밖에 술술 넘어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 중 하나라는 히친스는 여러 사료와 증언들을 종합해서 키신저라는 인간이 저지른 비열하고 잔혹한 행태들을 까발리고, 그의 무책임하고 저급한 변명과 거짓말을 맞받아친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워드 진 보다는 표현이 좀 격렬하고, 노엄 촘스키보다는 덜 신랄하다. 문체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내용에서는 충실도나 역사의식으로 보나 두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촘스키의 <불량국가>와 묶어서 읽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불량국가>는 <키신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까.

지난해부터 칠레 피노체트 정권에 대한 <진실과 정의 위원회>의 조사가 본격 진행되고 스페인 등지에서 피노체트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 <진실과 정의 위원회>는 이미 키신저를 조사할 것을 결정했지만 키신저가 법정 출두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될까. 과연 <키신저 재판>이 이뤄질 수 있을까.

설마, 키신저가 어떤 인물인데 칠레에 가서 재판을 받겠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내기 전에 <역사>를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인류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가 결국은 승리했던 기록들도 꽤 많이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거다. 언제가 되든 정의는 승리한다는 믿음. 구태의연한 결론인 듯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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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료전쟁 가일스 밀턴 시리즈 1
가일스 밀턴 지음, 손원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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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고 영양가 없는 책이었다. 신문 북리뷰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데 지면을 할애한 이유가 대체 뭐지?

영국은 어떻게 식민지를 개척했나.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은 얼마나 비열하고 미개하고 야만적이었나.그들에 맞선 영국인들은 얼마나 담대하고 용감했으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나. 영국인과 경쟁한 네덜란드 놈들은 얼마나 잔인하고 멍청한 것들이었나. 대체 내가 왜 이런 책을 보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절로.

식민주의 예찬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점들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향료니 茶니 마닐라삼이니 하는 것들을 놓고 <바로 이것 때문에 식민지 경쟁이 일어나 오늘날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세계의 역사는 무엇무엇의 역사였다> 식으로 침소봉대 하는 책들 맘에 안 든다. 역사를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 않고서야, 저런 식의 무리하고 성급하고 주제넘은 일반화를 시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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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2004-07-0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그렇져...?? 영국인 입장에서 쓴 편향적인 시각은 한없이 거슬리긴 한데,
그래도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되요. 그 시각 말고, 내용이요.
 
역사적 전환기의 문화적 재편성
박이문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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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맘에 안 든다. ~적 ~의 ~적 ~ 한글 망가뜨리는 일어식 영어식 표현 뒤범벅돼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척 온다.

목차를 보니 각 항목마다 책 한권씩은 될법한 것들을 몽땅 모아놨길래, 혹시 우리나라에도 에드가 모랭 같은 이가 있으려나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못 따라가도 한참 못 따라갔다. 총론을 쓰려면 통찰력이 탁월하든가, 에세이를 쓰려면 글을 잘 쓰든가. 그래도 우리나라 압네 하는 지식인 글 중에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구체적인 지식.정보>에서 나온 내용을 찾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탄탄한 자료로 뒷받침되는 그런 주장 아니고 나오는대로 <인간 복제는 안 된다. 문명의 충돌보다는 문명의 대화를 해야 한다>라고 선언하는 거라면 누군들 못 하랴.

게다가 갑자기 유교타령은. 생명윤리의 바탕을 유교에서 찾자고? 글쎄. 유교야말로 저자가 목청 높여 비판했던 <인간 중심의 세계관> 아닌가? 영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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