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아이스 그리폰 북스 7
스티븐 백스터 지음, 김훈 옮김 / 시공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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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북스라고 돼 있는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하도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차에, 읽는데 좀 오래걸렸다. '대체역사소설'이라 해서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그냥 '가상 역사소설'이로구만.

그럭저럭 재미있고, 현학적인 양 딱딱거리면서도 재미있는 문체가 맘에 든다. 하지만 초장부터 너무 쉽게 주제 혹은 문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터에 긴장감은 확실히 떨어졌다. '20세기-핵무기-미국'을 '19세기-안티아이스-영국'으로 그대로 등치시켜 놓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가 없었다.

멍텅구리 정치인들이라든가, 자기가 발견해놓고도 뒤처리를 하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천재과학자라든가, 어리버리 운 좋은 청년이라든가-- 등장인물이 도식적이다. 기찻간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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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구자현 외 옮김 / 중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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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大家)는 통한다고 할까요. 스스로를 `외로운 여행자'라 불리웠던 20세기 최고의 지성. 사람들은 보통 그를 ‘뇌가 쪼글쪼글한 천재' 정도로만 생각하지만(오죽하면 우유 이름이 아인슈타인일까요), 노벨상을 받은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그는 사상가이고 철학자였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까지 핵문제와 교육, 인권, 과학과 인류애의 문제를 고민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기고문과 연설문, 편지, 성명서 등을 모은 이 책에는 젊은 시절부터 1955년 사망하기 직전에 쓴 것까지 망라돼 있습니다. 오만한 인류의 손에서 양날의 칼이 되고 있는 과학의 이슈들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보았는지, 핵무기 개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은 어땠는지, 왜 그를 `위대한 철학자'라 불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밴드의 선율에 맞춰 4열 종대로 행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여지없이 경멸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큼직한 두뇌를 갖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실수 때문이다. 그에겐 보호막이 없는 척수만 있어도 될 것이다'


군대를 혐오하는 과학자, 어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지만—그래도 멋지지 않습니까? ‘4열 종대로 행진하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사람은 ‘뇌 없는 뼈다귀’란 얘기인데요^^ 그는 적극적으로 불의를 거부할 자유, 거부할 권리, 거부할 책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해주는 말들은 지금 들어도 딱 맞는 것들이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글을, 요즘 '우리'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읽은 것이 아니라 읽는 내내 '지금, 이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일까요.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 1921년에 지적한 군비축소 문제, 기술향상에 따른 실업 문제, 과잉생산 운운하면서 분배의 불균형을 가리려 하는 자본가와 정책 입안가들의 양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적 덕성과 도덕심, 시대정신의 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책임감과 교육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문장이 화려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 와서 잘 '먹힌다'고 할까요. 나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박애주의자로구나, 이 사람은 현실을 고민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절실하게 꿈꾸었던 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큰 인물이 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감동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2차대전을 겪고 나서 국제적인 평화의 메커니즘으로서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요, 책의 백미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들과 아인슈타인의 서신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소련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소련을 빼놓고서라도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소련에게 압박을 가해 세계정부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각 국가의 전쟁욕구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소련 쪽에서는 '민족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이 식민국가들의 압제에 맞서 쟁취해낸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민족주의를 제한하자고 하는 것은 또다른 횡포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순진하게도' 세계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런 주장을 뒤에서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민족주의의 국경 안에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초국적 자본들이다'라고 반박합니다. 세계정부 구상은 물론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순진하고 낭만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의 '정신'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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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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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써 있고,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제목 정도는 안 들어본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이제야, 큰맘먹고 읽었다. 1976년에 발표됐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내가 본 것은 을유문화사에서 새로 나온 책이다. 널리 알려진 책이고, 그동안 재미나게 읽었던 매트 리들리의 <게놈> <이타적 유전자> <붉은 여왕>이 모두 이 책을 바탕으로 쓴 것이어서, 정작 도킨스의 '획기적 이론'(발표 당시)은 아주 낯익게 다가와버렸다.

이기적 유전자 개념이나 확장된 표현형 개념은 수긍이 가고, 또 다양한 시뮬레이션 과정이 참 재미있는데, 정작 인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뜬금없다 싶었다. 동식물(개체)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위해 이용해먹는 생존 기계, 즉 운반자에 불과하다--라고 결론 내렸으면 그 논리를 100% 고수할 일이지. 사회학자들에게 욕 먹을까 걱정되어 '인간의 특수성'을 억지로 꿰다 맞춘 꼴이 된 느낌. 인간의 '이타주의'를 몽땅 부정해버리면 안 되니까, 유전자 gene에 대비되는 문화적 유전자 meme의 개념을 제안한다. '인류에게 있어 소크라테스의 유전자보다 의미있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정신, 즉 meme의 전달이다' 라는 황당한 논리를 만든 셈이다.

그래도 논리적 일관성 면이나, 칼로 끊듯 불필요한 부분 잘라내고 개념 딱딱 집어내어 설명하는 것이나, 도덕성 최대한 배제하고(meme의 문제는 분명 사족이다) 건조하게 유전자의 속셈을 까발기려 한 것 따위는 아주 맘에 들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도킨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데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르원틴은 도킨스식의 과학낙관론에 극도로 반대하면서 '감성에 호소하는' 글들을 많이 내놨다. 그렇지만 나는, '히틀러 복제'가 무서워서 파킨슨병 환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짓따위는 그야말로 비인도적인 짓이라는 쪽이다. 나는 '과학기술 발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는 도킨스의 장담에 오히려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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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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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 썼던 과학칼럼들을 모은 것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조금씩 재미있게 읽었다. 저널에 실리는 글들이 재미는 있지만 정작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최재천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 중에 글 잘 쓰는 두 사람이, 최교수와 모씨라고 하는데 그냥들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건, 동물에게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정말 본받을 일이고, 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최교수의 글은 제목처럼 '생명이 있는 것'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안타까움과 연민, 애정을 듬뿍 보낸다.

동물보호론자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남의 나라 식생활 왈가왈부하는 것 정말 싫다. 그 못잖게 꼴보기 싫다 싶은 것이 동물사랑 유별나게 드러내놓는 사람들이다. 동물을 괴롭히는 건 나쁘지만 동물사랑한다고 유난떠는 것도 꼴불견이다. 남는 시간 재력 다 투자해서 동네 개들 돌봐준다며 TV에 나오는 사람들 보면 괜히 밉다. 저 돈으로, 저 시간에 불쌍한 아이들 노인들이나 도와줄 일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만 보고 판에박힌 환경사랑 이야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연예찬, 어설픈 동물애호론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공부 이야기를 잘난척 않으면서 적당히 풀어놓고, 우리 주변 내가 모르는 낯선 동물 이야기를 전혀 낯설지 않게 던져놓는다. 맘에 드는 것은 세상을 보는 최교수의 따뜻한 눈이다. 말 안되는 인간사회의 잔인한 구조는 물론이고, 전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따갑게 질타를 한다. 그렇다고 '동물이 착하니 우리도 착하자!' 식의 유치한 논리는 전혀 아니다. 최교수는 마치는 글에서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제가 자연에게 써올린 반성문들'이라고 했다.

'제가 감히 인류를 대표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함께 무릎을 꿇게 해드렸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저 일부라는 엄연한 사실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길 빕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인류와 다른 생물들이 평화공존을 할 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들끼리의 생활도 나아질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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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생 텍쥐페리 지음, 유혜자 편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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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명상가이고 시인이다. 야간비행, 사막, 바람과 모래와 별들. 그리고 실종. 영화처럼, 소설처럼, 그림처럼 낭만적인 말들로 이뤄진 그의 생애. <어린 왕자>의 문구들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저며온다. '네 개의 벽과 기둥이 지붕을 덩그러니 받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을 올리고, 벽돌을 쌓아올렸다고 모두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과 애착만이 그것을 진짜 집으로 만들어주며 그곳에 담긴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준다' 저 글을 보는 순간, 내가 은근히 꿈꾸어왔던 것은 바로 저런 집을 갖는 것이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추억과 애착이 있는 곳,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주는 곳.

생텍쥐페리는 '진실'과 '언어'의 문제, 죽음과 헤어짐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되새겨보고 기억하면서 무언가를 향해간다. 말은 다만 표현하는 것 뿐이라고,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라고,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눈과 귀와 마음을 모두 열어두어야 한다고. '관습과 인습을 넘어 삶의 비극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때야말로 우리가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극적인 존재감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작은 행복'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걸까.

'네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한 계절은 꽃을 피우고, 한 계절은 열매를 맺고, 다시 어떤 계절은 사랑을 가져다주었지. 인생은 그렇게 쉬웠어.'

별로 오래 살지 않은 생텍쥐페리의 글이지만, 적당히 나이든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한 때를 생각하는 듯한 그런 느낌. 우습게도 나는 '벌들도 사랑 때문에 죽거든'이라는 준비에브의 말을, '별들도'라고 생각했다. 별들이 사랑 때문에 죽는다-- 엄청난 에너지로 세상에 태어나 빛을 발하다가 사라져가는 별들, 별들의 죽음이 사랑 때문이라면. 나는 상상속의 그런 이미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냥 저 문장을 별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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