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구자현 외 옮김 / 중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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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大家)는 통한다고 할까요. 스스로를 `외로운 여행자'라 불리웠던 20세기 최고의 지성. 사람들은 보통 그를 ‘뇌가 쪼글쪼글한 천재' 정도로만 생각하지만(오죽하면 우유 이름이 아인슈타인일까요), 노벨상을 받은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그는 사상가이고 철학자였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까지 핵문제와 교육, 인권, 과학과 인류애의 문제를 고민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기고문과 연설문, 편지, 성명서 등을 모은 이 책에는 젊은 시절부터 1955년 사망하기 직전에 쓴 것까지 망라돼 있습니다. 오만한 인류의 손에서 양날의 칼이 되고 있는 과학의 이슈들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보았는지, 핵무기 개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은 어땠는지, 왜 그를 `위대한 철학자'라 불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밴드의 선율에 맞춰 4열 종대로 행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여지없이 경멸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큼직한 두뇌를 갖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실수 때문이다. 그에겐 보호막이 없는 척수만 있어도 될 것이다'


군대를 혐오하는 과학자, 어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지만—그래도 멋지지 않습니까? ‘4열 종대로 행진하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사람은 ‘뇌 없는 뼈다귀’란 얘기인데요^^ 그는 적극적으로 불의를 거부할 자유, 거부할 권리, 거부할 책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전해주는 말들은 지금 들어도 딱 맞는 것들이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글을, 요즘 '우리'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읽은 것이 아니라 읽는 내내 '지금, 이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일까요.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 1921년에 지적한 군비축소 문제, 기술향상에 따른 실업 문제, 과잉생산 운운하면서 분배의 불균형을 가리려 하는 자본가와 정책 입안가들의 양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적 덕성과 도덕심, 시대정신의 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책임감과 교육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문장이 화려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 와서 잘 '먹힌다'고 할까요. 나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박애주의자로구나, 이 사람은 현실을 고민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절실하게 꿈꾸었던 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큰 인물이 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감동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2차대전을 겪고 나서 국제적인 평화의 메커니즘으로서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요, 책의 백미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들과 아인슈타인의 서신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소련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소련을 빼놓고서라도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소련에게 압박을 가해 세계정부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각 국가의 전쟁욕구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소련 쪽에서는 '민족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이 식민국가들의 압제에 맞서 쟁취해낸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민족주의를 제한하자고 하는 것은 또다른 횡포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순진하게도' 세계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런 주장을 뒤에서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민족주의의 국경 안에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초국적 자본들이다'라고 반박합니다. 세계정부 구상은 물론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순진하고 낭만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의 '정신'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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