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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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기간동안, 조셉 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을 다 읽는데 '성공' 했습니다. 책 한권 읽는데 무슨 '성공'이라는 말까지 붙이느냐. 이 책은 유럽의 언어권들을 대표하는 5개 출판사가 회심의 역작으로 기획중인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기획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자, 총론에 해당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체가 완역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최갑수 교수를 필두로 한 일군의 서양사학자들이 기획에서 번역까지를 맡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워낙에 안 좋아서 말이죠. 실은 이 책의 첫장을 펼쳐든 것이 한달도 더 됐는데, 읽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영어식 문장을 그대로 번역해서(더우기 원본은 스페인어로 쓰여졌을 것이니까요) 초반부에 상당한 참을성을 요구하더군요.

알려진대로, 조셉 폰타나는 바르셀로나 태생의 역사학자입니다. 현대사와 경제사를 전공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이른바 '수정주의 역사관'을 토대로 쓰여졌습니다. 우리가 배워온 기존의 '유럽사'라고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유럽의 로마화와 기독교화-암흑의 중세-르네상스-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성공'이라는 도식으로 돼 있습니다.
폰타나의 시각은 여기에서 잠시 벗어나, 경제적 발전과 정치체제의 변동이라는 요소들의 인과관계를 뒤바꿉니다. 봉건제라는 '대전제' 하에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유추해내는 것이 아니라, 농업생산력의 상승을 바탕으로 해서 기사도와 봉건제라는 제도가 발전해나갔다는 식으로 뒤집어보는 거죠. 폰타나의 '뒤집어보기'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브뤼겔의 그림들은 '귀족제의 뒤안에 가려져 있던 민중의 생생한 생활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뒤집어보기'를 위해서 저자는 '거울을 깨뜨리는' 역사서술을 시도합니다. 원래 '야만인'(barbarian)이라는 말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를 쓰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표현했던 단어랍니다. '야만인'이라는 타자(他者)에 비춰 자신들을 보기 시작했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인'(헬레네스)이라는 정체성이 생겨난 것처럼, 오늘날의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나 나머지 세계에 대한 인식들은 모두 타인을 향한 거울에서 역으로 유추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폰타나는 이같은 '타자의 거울'로 9가지를 꼽습니다. 야만의 거울(로마의 게르만 진출), 기독교의 거울, 봉건제의 거울, 악마의 거울('이단시'되는 것에 대한 배타성), 촌뜨기의 거울(귀족과 평민의 구분), 궁정의 거울(십자군과 종교개혁), 미개의 거울(식민주의), 진보의 거울(역사발전의 단계구분론), 대중의 거울(국민주권 개념)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별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은 없습니다. 서술방식이 기상천외한 것도 아니고, 문장도 평이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저 거울들이 비단 유럽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지적대로 '비유럽인들 자신들까지도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거울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지경이 된' 오늘날 아시아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폰타나는 유럽을 비추는 거울들을 깨뜨리는 작업을 통해서 역사란 무엇이며, 왜 역사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안토니오 마차도의 말을 다시 인용해봅니다. '과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온갖 희망들, 즉 실현되지 못한, 그러나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닌 희망의 저장소-요컨대 하나의 미래가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공의 역사'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성공한 역사' 이면에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역사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야만 미래의 '또다른 가능성'에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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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자망트의 열정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글, 장 클로드 갈 그림, 최정수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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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욕에 빠져 있던 한 여자가 구도의 길로 들어서 결국 진리를 깨닫게 되는 과정. 잔혹함과 육체의 열정에만 빠져 있던 아라스의 여왕 디오자망트. (아라스-이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다. 약탈과 강간범이 득시글거리는)디오자망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 뭔지 모를 답답함과 열기(탐욕)에 불현듯(요 부분이 좀 미흡하다...) 싫증을 느끼고 궁전을 나선다. 사라바왕국(아라스의 반대편-화려함, 근엄함, 우주의 질서?)의 위르발 왕을 죽이기 위해 찾아간 디오자망트는 그만 '적과의 사랑'에 빠져 버리는 것이니...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처음으로 정신적 욕망(진리에의 갈구)에 빠져든 디오자망트는 위르발을 다시 만나 영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화려하고 농밀한 그림과 색채, 동양적인 주제의식, 짧으면서도 강약 조절이 분명한 시나리오.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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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헤르만 헤세의 점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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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인 김정란교수는 이 책에 대해 '먹을 수 있는 철학책'이라면서 '철학지망생이었던 한 명의 작가가 써낸 매우 흥미로운 철학요리서'라는 설명을 붙였다. 벌써 지난 봄에, 이 책의 앞부분을 읽다가 그만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옆의 선배 자리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더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 책을 찾아냈다. 알고보니 그 더미는 내 '쓰레기들'이었는데. 책상과 책상 사이의 좁은 틈을 기준으로 '내 세상'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규칙이 많고 꼼꼼한 사람들의 얘기인데도 난 내가 그런 사람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장 콕토는 자기는 개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양치기 고양이라든지 사냥 고양이, 장님 길잡이 고양이, 서커스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다. 고양이는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제일 맘에 드는 구절이다.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했다니!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만이 저런 '명예'를 운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설픈 의식 따위를 벗어던진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바로 고양이에게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느슨하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 앞의 '개와 고양이'처럼 두개씩의 대립항으로 여러 얘기를 풀어간다. '대립'은 단순하고 재미있지만 야박하고 극단적이고 풍요롭지가 못하다. 어쨌든 투르니에가 골라놓은 대립쌍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꽤 있다. '지하실과 다락방' '오리나무와 버드나무' 같은 것들은 이 작가의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통찰력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어떤 지하실에든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한 집의 살아있는 뿌리가 지하실 안에 박혀 있다. 다락방에서는 추억과 시가 떠다닌다. 지하실의 상징적 동물은 쥐이다. 그런가 하면, 다락방의 동물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새 올빼미이다'

어차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처지에, 프랑스의 지하실과 다락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집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을테니까.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자리와, 추억과 시가 떠다니는 자리. 추억과 시의 자리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붙여둔 것이 철학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결리기는 하지만.

당신은 목욕을 좋아하는가, 샤워를 좋아하는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중에서는 어느 한쪽을 쉽게 골라낼 수 있겠지만(하긴, 요샌 트랜스젠더들도 있군) 목욕 쪽인지 샤워 쪽인지, 유목민인지 정착민인지, 일차적인간인지 이차적 인간인지, 우파적 인간인지 좌파적 인간인지, 관념론자인지 리얼리스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나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재미있다. 나는 낙관론자, 좌파적 인간, '인류 전체에게 말을 거는 넓은 정신의 소유자'를 꾸준히 동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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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1-1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운빈현님... 실은 지금 제 서재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죠... 저거 옛날 책 읽고 옛날에 쓴 서평이예요. 뭔가 고장이 나서인지, 복구된 서평들이 제대로 안 올라가서 어지러워요... 저 책이 다시 나왔군요. :)

브리즈 2004-11-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 님의 리뷰는 언제 봐도, 참 시원시원하네요. 공감이 가고 매력적인 생각들도 가득하고요.

가령, "집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하실과 다락방이 있을테니까. 숨겨진 행복의 약속이 있는 자리와, 추억과 시가 떠다니는 자리. 추억과 시의 자리에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붙여둔 것이 철학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결리기는 하지만"..

또 하나, "인류 전체에게 말을 거는 넓은 정신의 소유자를 꾸준히 동경하고 있다"는 말.여러모로 곱씹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추천합니다. :)

딸기 2004-11-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즈님 칭찬은 정말 기분 좋다니까요. ^^

실은 저 책 때문에 그 뒤로 투르니에의 에세이집만 나오면 사버리는 버릇이 생긴 거예요. 저는 투르니에 책들 중에 저 책이 가장 좋았어요.
 
일본정신의 기원 - 언어, 국가, 대의제, 그리고 통화 이매진 컨텍스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매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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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재미있다.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느낌마저 주는 필치랄까. 고진의 글은 술술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서평을 쓰기가 힘든 것이 고진의 책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고진의 글에 상당히 반해있으면서도 뭐라 평가하기가 참 힘들다. 그저 재미있다,고 말할 밖에는.

이 책은 내가 올들어 읽은 첫번째 책이다. 때마침 나는 일본으로 건너오게 됐고, 뭐든 일본에 대한 책을 붙잡고 공부를 해야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 그리고 '일본 정신의 기원'. 이 책만큼 어울리는 것이 어디있겠나 싶어 책을 펼쳐들었다. 책의 전반부는 제목 그대로 일본 정신의 기원을 논하는 것이어서 재미있었고, 뒷부분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충분히 해당될,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대안을 언급한 것이어서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고진은 우선 보편적인 의미(서구적인 의미)의 '근대성'의 개념과 언어와의 관계를 살피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이 시도했던 식민지 동화계획을 되돌아본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개념을 원용해 고진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기획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뒤이어 고진은 본격적인 '일본 정신' 분석으로 들어간다. (일본정신의 기원? 글쎄, '기원'이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메이지 유신을 거쳐 성장하고 군국주의로 귀결된 일본의 근대가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같기도 하고,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일본의 정신'을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문제가 아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고진도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넘어가자) 고진은 '일본정신'은 바로 '변용의 정신'이라고 진단하면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신들의 미소'를 꺼내보인다. 일본의 혼령이 서양의 전도사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 이 소설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종교관을 다루는 것을 넘어, '일본에 오면 모든 것이 일본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고진은 아쿠타가와의 말을 받아들여, 외래적인 것이 일본으로 넘어와 일본화될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일본의 힘을 설명한다. 한자와 가나의 병용에서 보이듯 외래문화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 외래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이 공존하게 하고, 또한 상호 변화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일본만의 힘이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란 언제나 흐르고, 상호작용하게 마련이므로. 하지만 조선과 비교해보면, 일본 문화가 갖고 있던 '변용의 힘'이 더 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자와 가나의 병용을 놓고 일본문화의 '변용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은 고진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일본정신을 논한 다른 저술들에서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책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책의 타이틀을 좀 벗어난 듯한 주제, 즉 '투표라는 형식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점검하고 있는 책의 후반부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을 통해 일본정신의 일단을 보여줬듯, 이 장에서 고진은 또다른 단편소설(기쿠치 칸의 '투표')을 통해 '대의제'의 한계를 논한다. 맑스와 칸트를 좋아하는 고진은 이 책에서도 여러가지 철학적 개념들을 들어 민주주의의 한계를 말하지만 논지는 명확하다. 개인이 다른 개인을 진정으로 '대표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며,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는 것은 고진에게는 철학적/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뒤이어 고진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대안으로서 시민운동의 형태를 띈 참여민주주의의 방안(예를들면 시민통화 개념이라든가)을 모색하는데 이 부분은 발상은 재밌지만 다소 나이브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 책은 지극히 '가라타니 고진的인' 책임에는 틀림없다. 책 말미에는 고진이 언급한 단편소설들 전문이 나와 있어 또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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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것이랍니다. 머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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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1-1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최강의 딸기....스트롱베리.....^^


urblue 2004-11-1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탱글한 딸기네요. 먹고싶어라. ^^

balmas 2004-11-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렇게 예쁘고 탱글한 딸기가 있다니~~

비로그인 2004-11-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딸기가 더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