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히스토리아 문디 3
키스 W.휘틀럼 지음, 김문호 옮김 / 이산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 동안 되는대로 집히는대로 읽어왔던 것은 중동/이슬람/이스라엘에 관한 책들이었다. 왜 책을 읽는가? 잠시 우문(愚問)을 던져보면, '보기' 위해서다. 그냥 남이 보여주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간단하게 대답해두자.

바로 보는 것, 제대로 보는 것은 '가려진 것'들까지도 보는 것, '권력의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배제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절절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제대로 보려면 많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만 해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주 구체적인 사실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그 많은 것들이 또한 권력의 담론에 의해 가려져 있으니. 그래서 알기가 힘들고 보기가 힘들다. 아무리 '비판적'인 책들을 읽는다 해도 눈을 가리고 있는 장벽은 두텁디 두텁다. 두터운 장벽을 조금이나마 뚫어보려고 책을 읽는다. 한 권을 읽고, 이제 1cm 쯤은 뚫렸겠거니 생각하고 또 한권을 펼치면 여전히 높고 두터운 장벽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어려운 작업인가. 리뷰를 쓰기 앞서 이런 독백 아닌 독백을 늘어놓게 만든 이 책.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절감하면서 잠시 좌절. 착한 독자를 이렇게 좌절하게 만든 이 책은 참으로 나쁜 책이다! 한번 욕해주고 싶지만 대단히 훌륭한 책이다.

 

책은 '침묵당한 팔레스타인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침묵당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소개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이른바 '성서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연구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파헤친다.

역사연구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 역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특정 텍스트를 '선택'해 연구하고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역사학은 편파적인 학문이다'라는 것이 저자의 기본 전제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아니며, 팔레스타인의 역사라는 프로젝트가 성서연구의 담론에 의해서 어떻게 방해받아 왔는가에 대한 논평이다." (23쪽) 책은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고고학적 증거'들로 뒷받침하는데에 혈안이 되어온 성서고고학의 '편파적 텍스트'들에 맞서 쓰여졌으며, 따라서 이 책 또한 '편파적인 텍스트'라고 저자는 미리 선언을 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가 '환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성서고고학의 기본 가정은 어떤 것인가.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선진 문명을 가진 유대민족이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유대민족의 위대한 선조 다윗은 타락한 다신교 신앙에 물들어있던 가나안 부족들을 정복하고 유일신교를 믿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그 땅에 살고 있던 부족들은 열등한 문화 밖에는 갖고 있지 못했으며, 선진 문명을 건설할 능력이 없었다."

조야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같은 '가정'은 '추론'을 넘어서 고고학자들의 대전제가 되었고, 고고학적 연구는 대전제의 '증거'들을 찾는 작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지워졌다. '팔레스타인'은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일지언정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름은 아니었다. 이 연구를 진행해온 사람들은 철저하게 팔레스타인의 고대사를 지우고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상상의 산물을사실(史實)'로 만들어버렸다. 팔레스타인 역사를 '지우는' 행위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명백하다. 첫째 현대 이스라엘을 위해서, 둘째 기독교 경전에 바탕을 두고 근대 민족국가의 '기원'을 찾고자 했던 서구를 위해서였다. 성서고고학자들의 연구에서 시오니스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대사를 지우는 행위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저자는 우선 '시간과 공간의 명명법의 선택'이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청동기 후기-철기시대 초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가나안 시대' '정착과 판관의 시대' '유대 제국 시대' 등으로 이름 붙이는 것이 '시간의 명명법'에 해당된다면, '공간의 명명법'은 지금 이스라엘이 무력점령하고 있는 골란고원과 웨스트뱅크 등지에 가나안 사마리아 식으로 '성서의 지명'을 붙이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름붙이기, 즉 '이스라엘'이라는 꼬리표 붙이기에 이어 성서고고학자들은 '진화론적' 시간을 도입하는 방법을 함께 동원한다. 가나안 땅에 유대인이 '정착'하고 '정복'했던 것에 대해 도덕적, 진화론적, 서구적 개념을 적용하는 것. 여러말 할 것 없이, 서양이 '대항해의 시대' 이후 '야만인의 세상'을 문명화시켰다는 논리와 그대로 일치한다.

또하나의 방법은 '문자 텍스트(성서)에 의존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진정한 역사'는 오직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토대로 해야만 쓸수 있다는 성서연구의 공통된 가정 아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자료들이 없기 때문에 '선사'는 역사와 똑같은 비중을 갖지 못하고, 아무튼 사실이 아니며, 그래서 결국 이 시기들에 살았던 민족들은 침묵당하게 된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맥락에서 발전한 19세기 서양 역사서술의 원칙이다. 이제 그 원칙은 우리가 '진짜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국가(국민국가)와 함께 할 때뿐이라는 사실에 의해 이스라엘 역사의 구성 속에서 더욱 강화된다." (189쪽) 그리고 '성서'는 팔레스타인땅의 과거를 서술한 '객관적인 역사책'으로 격상된다.

저자는 민족국가/문자텍스트만을 선별적으로 채택해온 성서고고학의 연구결과들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는지, 바로 그 연구서들을 뒤져가며 설명한다. 성서학자들은 '우월한' 유대민족이 '열등한' 원주민들을 정복한 것은 정당한 행위였으며 심지어 '신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종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내보인다. 심지어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성서고고학계의 이런 경향은 사라지기는커녕 강화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인을 나치와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성서고고학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의 권리가 '정복의 권리'에  있었다고 말함으로써 제국주의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서고고학은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였다는 선민사상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특별한 위상 때문에 팔레스타인 정복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복은 사실상 신의 계획의 일부"가 된다. 이는 곧 기독교 근본주의다.

 

책의 3장(고대 이스라엘 발명하기)과 4장(이스라엘 국가의 창조)은 1970년대까지 성서고고학을 주도했던 독일과 미국 주요 연구자들의 연구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5장에서는 1980년대 이후, 성서고고학에 대한 반발로 '수정주의'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의 연구들을 소개하고 비평한다. 요약하자면 성서고고학은 이스라엘이 고대부터 '국민국가'의 원형을 갖고 있었다는 허구적 가설 위에 지어진 집이라는 것, 다윗과 솔로몬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 성서고고학의 기본 가정들은 '다윗왕의 황금시대'와 같은 개인숭배적 요소들로 인해 더욱 강화됐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핀컬스타인 류의 수정주의적 해석들 또한 성서고고학의 바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 이스라엘'이라는 지배요인에 압도당한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침묵을 강요당한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어떻게 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쉽게도 책은 '앞으로의 연구'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작업이 갖고 있는 의미는 크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역사를 말살하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학문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갈파해내는 것, 현재와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대이건 현대이건, 이스라엘-유대민족의 우월함과 팔레스타인-아랍인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것은 공통의 전제다. 또 고대 이스라엘의 '제국' 건설과 '정복'에 '침략적 자기방어'라는 우스꽝스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현재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짓들과 완전히 똑같다. 고대 이스라엘의 이주-정복 모델은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정과 일치한다. 이스라엘을 '민주주의 국가'로 묘사하면서 토착민들의 사회(페르시아/아랍)에 전제정치의 꼬리표를 붙이는 것도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역사적 모델'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가 과거를 만들고, 정치가 역사학을 만드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 지우기'가 팔레스타인 땅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국민국가'를 기본틀로 역사를 해석하는(빼앗는) 행위는 '국가'를 만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사상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팔레스타인의 비유대계 거주민들, '신대륙'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를 빼앗겨 버린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국가를 만들려 한다는 이유로 터키 정부에 의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는 쿠르드족, 티벳 등 목록은 계속 길어질 수 있다. 이들 모두를 위해서도 '편파적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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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1-1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위해서, 책은 정말 중요함다. 그리고 때론 이런 책들을 통해 제대로 보는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좋슴다. ㅋㅋㅋ

딸기 2005-01-11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추천 눌러줘야지!

마냐 2005-01-1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꾸욱.

딸기 2005-01-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히히.
 

좀 오래전 유행하던 사진이지만, 리사이클~

소인배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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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1-0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면 대인배 되남유?

딸기 2005-01-0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그럼요!

urblue 2005-01-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딸기님~ 왜 이러시나요~

딸기 2005-01-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러시긴요~ 방명록에 글 받고 싶어서 그러지요~
 

아이덴티티님을 위한 선물입니다.
꽈레스키, '약속을 지킨 소녀'라는 단편인데요. 인터넷에서 읽기엔 좀 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어요. :)

+++

여자라고? 아니, 여자는 필요없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약간 흥청거리는 일이라면 난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나에겐 이미 내 소녀가 있다. 그녀는 파브리꼰의 길을 따라 늘어선 세 번째 전봇대에서 매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열 네 살이었고, 파브리꼰의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서양자두나무 한 그루가 담장 너머로 가지를 늘어 뜨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어느 소녀가 손에 바구니를 들고 들판에서 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크고 몸매가 잘 잡힌 것으로 보아 분명 열 아홉 살은 되었을 것이다.

"나 목마 좀 태워 줘."
그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바구니를 내려 놓고 나는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가지에는 자두가 넘치게 달려 있었고 나는 윗도리 가득히 노란 자두를 땄다.
"치마를 벌려. 절반으로 나누게."
내가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넌 자두를 좋아하지 않니?"
내가 물었다.
"좋아해.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딸 수가 있어. 이 나무는 우리거야. 난 저기서 살고 있어."

그 때 나는 열 네 살이었고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키가 컸고 처녀처럼 몸매가 잡혀 있었다.
"너 사람을 놀리는구나."
나는 소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 못생긴 키다리야. 난 네 얼굴을 박살 낼 수도 있어!"
소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틀 후 저녁 똑같은 길에서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안녕. 키다리!"
내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입안 가득히 욕을 퍼부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나폴리에서 욕을 배운 미장이 십장보다 더 잘했었다. 그 뒤 여러번 소녀를 만났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뛰어 내려 소녀의 길을 가로 막았다.
"무엇 때문에 날 그렇게 쳐다보는지 알고 싶어."
나는 베레모의 챙을 한쪽으로 홱 젖히면서 물었다.
소녀는 물처럼 투명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전혀 본 적이 없는 두 눈이었다.
"난 너를 보고 있지 않아."
소녀가 겁에 질려 대답했다.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조심하라구, 키다리! 난 농담하는게 아냐!"

일주일 후 나는 소녀를 다시 보았는데 어떤 청년과 함께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자전거 페달 위에서 벌떡 일어서 미친 듯이 밟아 댔다. 청년의 2미터 쯤 뒤에서 속력을 늦추었고, 곁을 가까이 스쳐지나면서 어깨로 힘껏 밀쳤다. 청년은 무화과 껍질처럼 땅바닥에 길게 널부러졌다. 뒤에서 나한테 갈보새끼라고 욕하는 걸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자갈 더미 곁의 전봇대에 기대어 놓았다. 청년이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스무 살 정도의 청년이었고 날 한 주먹에 때려 뉘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나는 때맞추어 돌멩이로 그 녀석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우리 아버지는 특이한 기술자였다. 아버지가 멍키스페너를 손에 들고 있으면 온 동네가 다 도망갔다. 하지만 그런 우리 아버지도 내가 돌멩이 하나를 움켜쥐는 걸 보면 뒤로 물러서곤 했다. 그리고 날 때리기 위해서는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는데, 저런 멍청이 정도야!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나는 훌쩍 자전거에 올라타 멀리 달아났다. 나는 이틀 동안 멀리 돌아서 다녔다. 그러다가 사흘 째 되는 날 저녁 나는 다시 파브리꼰의 길로 돌아왔다. 소녀를 보자 나는 바싹 뒤쫒아가 미국식으로 자전거 안장에서 뒤로 훌쩍 뛰어내렸다.
요즈음 소년들이 자전거 타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흙받이, 종, 브레이크, 전기 헤드라이트, 변속기만 이용할 뿐 무억을 한단 말인가?

나는 녹이 덕지덕지 슨 프레라 자전거를 갖고 있었지만 광장의 열 여섯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절대로 내리지 않았다. 핸들을 꽉 움켜쥐고 번개처럼 달려 내려가곤 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소녀 앞에 섰다. 핸들에 매달린 배낭에서 망치를 꺼내어 들었다.
"다시 한 번 다른 녀석과 함께 있는 걸 보면, 너와 그 녀석 대갈통을 바숴놓을 거야."
그녀는 그 미칠 정도로 물처럼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소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나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래야 되니까 그래."
내가 대답했다.
"너는 혼자 다니든가 아니면 나하고만 다녀야 해."
"난 열 아홉 살인데 넌 기껏해야 열 네 살이야. 네가 최소한 열 여덟만 되어도 문제는 달라. 난 이제 처녀가 되었지만 넌 아직 소년이야."
"그러면 내가 열 여덟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구!"
내가 소리쳤다.
"다른 놈과 함께 다니지 않도록 조심해. 아니면 죽을 줄 알아!"

그 때 나는 미장이 조수 일을 하고 있었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이 여자 이야기를 하면 나는 벌떡 일어나 가 버리곤 했다. 여자란 나에게 썩은 무화과보다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녀만은 다른 녀석과 만나지 않아야 했다.
나는 거의 4년 동안 일요일만 빼고 매일 저녁 그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언제나 파브리꼰의 길가 세 번째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나를 기다렸다.비가 올 때면 그 멋진 우산을 펼쳐 들고 있었다. 나는 단 한번도 자전거를 멈추지 않았다.

"안녕."
내가 지나가면서 말하면,
"안녕."
하고 소녀는 대답했다.

열 여덟 살이 되던 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이제 열 여덟 살이 되었어."
내가 말했다.
"이제 나와 산책할 수 있어. 만약 어리석은 짓 하면 머리통을 까부술 거야."
그녀는 이제 스물 세 살이었고 완전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물처럼 맑은 눈을 갖고 있었으며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열 여덟살이 되었지만 나는 스물 세 살이 되었어.
내가 너처럼 젊은 애하고 함께 있는 걸 보면 청년들이 나한테 돌멩이를 던질 거야."
나는 자전거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납작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서 말했다.
"저기 세 번째 전봇대의 애자가 보이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통으로 맞추었고 그 곳엔 벌레처럼 헐벗은 쇠고리만 남았다.
"돌멩이를 던지기 전에 청년들은 어떻게 던지는가를 배워야 한다구!"
내가 소리쳤다.
"내가 말하는 것은,"
소녀가 말했다.
"처녀가 어린 소년하고 돌아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야. 최소한 네가 군대라도 마쳤다면…"

나는 베레모의 챙을 왼쪽으로 홱 돌렸다.
"이봐, 혹시 날 멍청이로 놀리는 것은 아니겠지? 군대를 마치면 난 스물 한 살, 넌 스물 여섯이 될 거야. 그 때 가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
"아니야."
소녀가 대답했다.
"열 여덟과 스물 셋하고 스물 하나와 스물 여섯은 완전히 다른 거야.
앞으로 나갈수록 나이 차이는 별로 중요해지지 않아. 남자가 스물 한 살이거나 스물 여섯 살 이거나 그건 똑같은 거야."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결코 속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군대를 마쳤을 때 다시 이야기하자."
내가 자전거에 올라 타면서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 내가 돌아와서 널 찾지 못하면 네 아버지 침대 밑에 숨어 있어도 네 대갈통을 부숴놓을 거야!"

매일 저녁 그녀가 세 번째 전봇대 아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절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았다. 내가
"안녕."
하고 말하면 그녀는
"안녕."
하고 대답했다. 소집 여장을 받았을 때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내일 군대 간다!"
"그래 잘가."
소녀는 대답했다.

지금 내 군대 생활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8개월의 군대 생활이었고 부대에서 나는 집에서처럼 지냈다. 3개월은 막사에서만 지냈다. 말하자면 매일 저녁 외출 금지이거나 부대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18개월이 지나자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후 늦게 도착했다. 사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 나는 자전거에 뛰어올라 파브리꼰의 길로 달렸다. 만약 그녀가 또 다른 변명을 늘어 놓았으면 난 그녀의 등 위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것이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녀를 찾아낼까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정확히 세 번째 전봇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헤어졌을 때와 똑같았다. 두 눈도 역시 똑같았다. 나는 그녀 앞에서 내려섰다.

"나 제대했어."
나는 제대증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탈리아가 앉아 있는 도장이지. 이건 완전한 제대를 뜻해. 그런데 만약 이탈리아가 서 있는 도장이면 임시 제대가 되는 거야."
"정말 멋지구나."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너무 정신 없이 달렸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그 전처럼 자두 몇 개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물었다. 소녀는 한숨을 쉬었다.
"안됐지만 자두나무는 불탔어."

"불탔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자두나무가 불에 타다니 무슨 소리야?"
"여섯 달 전이었어. 어느 날 밤 헛간에 불이 나서 집과 마당의 나무들까지 모두 성냥개비처럼 타 버렸어. 모두 타 버렸지. 두 시간 후에는 벽밖에 남지 않았어. 저기 보이지?"

나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벽이 보였고 창문 하나가 붉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물었다.
"나도 역시."
그녀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나도 역시 나머지 것들과 마찬가지야. 한 줌의 재로 모두 끝나버렸어."

나는 전봇대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몸통을 통하여 전봇대의 나뭇결과 호숫가의 풀들이 보였다.
내가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자 전봇대가 만져졌다.

"내가 널 아프게 했니?"
내가 물었다.
"전혀 아프지 않아."

우리는 잠시 말 없이 서 있었다. 하늘은 더욱 더 어둡게 물들어 갔다.

"그래서?"
마침내 내가 물었다.
"나는 널 기다렸어."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내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약속을 지켰다는 걸 너에게 보여주려고 말이야. 이제 가도 되겠니?"

그 때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75밀리 박격포라도 가져왔을 것이다.
내가 지나갈 때면 여자들은 마치 장군의 사열이라도 하듯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나를 눈이 찢어져라 응시하곤 했었다.

"그러면,"
소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이제는 가도 되겠니?"
"안돼."
내가 대답했다.
"너는 내가 이 다른 일을 끝마칠 때까지 날 기다려야 해. 아름다운 아가씨야, 날 놀리면 안돼."
"좋아."
소녀가 대답했다. 마치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이제 벌써 12년 동안이나 우리는 매일 저녁 만나곤 한다.
나는 영원토록 소녀를 만날 것이다.
나는 지나가면서 절대로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는다.

"안녕."
"안녕."
이해가 가실는지? 여하튼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약간 흥청거리는 일이라면 난 언제나 찬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나에게는 이미 파브리꼰의 길가 세 번째 전봇대에서 매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할 것이다.

"이봐 친구, 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요?"

"대답하지요.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요.
산과 강 사이에 있는 그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그 곳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일들이요.
그 곳에서는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 아주 좋은 특수한 공기가 감돌고 있소. 그 곳에서는 개들도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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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
도널드 우즈 지음, 최호정 옮김 / 그린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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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꼭 한번씩 묻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갖고 있는가? 좀더 한국말답게 표현하면,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인물이 있는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한국민, 한국인이다.   
간디 평전을 읽을 때 나는 인도인이 간디를 생각하듯 그렇게 한국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덩샤오핑의 평전을 읽을 때에는 (정치적 공과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정치인이 있었던가를 물었고, 만델라에 대한 글을 읽을 때에는 우리에게 만델라같은 투사가 있는지, 있었던지를 물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묻게 된다. 우리에게 반투 스티브 비코 같은 사람이 있었던가? 물론, 있다. 있었을 것이다. 비코 같은 인물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서류 캐비닛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잊고 지낸 어느 시인의 시집에 있을 수도 있다.

책은 반투 스티브 비코라는, 남아공의 흑백차별 철폐를 위해 싸웠던 흑인 투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전'이라 보기엔 범위가 좀 넓다. 남아공의 역사와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역사로 시작해 비코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 비코의 투쟁노선, 기고문, 대화록, 숨지기까지의 과정과 숨진 이후의 재판 기록 등등을 충실히 싣고 있다. 따라서 비코의 일대기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위인전은 아니다.   
책은 몇가지 서로 다른 축으로 엮여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비코라는 인물 개인에 대한 것이다. 둘째, 남아공의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철저하고 광범위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에 맞선 투쟁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번째는, 이 책을 쓴 도널드 우즈라는 백인 언론인과 흑인 투사 비코의 우정이다. 서문에서 밝혔듯 우즈는 비코와의 우정(백인정권의 눈에는 '백인의 배신'으로 비쳤던)으로 인해 그 자신도 보안관찰 처분을 받았고, 결국 외국으로 망명해서야 이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에는 투사 비코의 인간됨과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하에서 우즈와 같은 '백인 자유주의자'들이 겪어야만 했던 일들도 많이 나온다. 독극물을 묻힌 티셔츠를 배달받은 뒤 우즈의 아이가 티셔츠를 입고 괴로워했다는 잔혹한 에피소드 같은 것이 그 예다. 그러니 이 책은 단순히 '흑백 차별'이라는 말만 듣고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인간성을 말살하고 너나없이 올가미에 가두는(이 점에서만 흑-백의 평등이 가능했었을 것이다) 차별과 억압의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남아공 인구에서 소수에 불과한 백인들이 투표권을 독점하고 있던 때에 아파르트헤이트정권은 정작 백인들의 지지조차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른바 '아프리카너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써먹었던 술수들에 대해서도 몇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잘 모르고 있었던 남아공의 역사와 흑인들의 투쟁, 그리고 자유주의자들과의 관계 등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내겐 큰 수확이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흑인들의 투쟁에서, 만델라라든가 비코의 사상을 좀더 상세하게 접하게 된 것도 소득이었다. 폭력투쟁이나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구상 같은 것들이 아주 구체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이미지로는 제시되어 있어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책을 읽은지 며칠 되었지만 이 책의 리뷰를 올리기까지는 조금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서평'이랍시고 몇마디 쓰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책이기 때문이다. 왜? 무엇 때문에,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 그것도 이미 30여년전의 이야기가 2005년에 책장을 뒤적이는 나를 숨막히게 만드는가.   
굴곡진 현대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읽을 자유가 없다. 스스로 '흑인됨'을 선언했던 이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많은 책들처럼) 또다시 '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의문사'의 이야기가 신문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지 않았던가. '멀쩡한 대학생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던' 시절의 우리나라 법정에 비하면, 잔혹하기로 이름 높았던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공 판사들은 최소한 상식 수준의 법의식은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비코를 죽음으로 몰고간 감금과 구타와 고문 또한 많이 듣던 레퍼토리가 아니던가. 만델라가 28년간 감옥에 있었다지만 우리나라 비전향 장기수들 중엔 훨씬 넘어서는 기록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가 겪어온 지난 세월은 대체 어떤 것이었나.

물론 남아공 백인정권이 '상대적으로 덜 가혹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가 집권한 뒤 남아공에서는 역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만들어져서 백인정권의 잔혹성을 파헤치는 작업을 했다. 외신 기사를 읽으면서, "'진실'만 밝히면 처벌 대신 '화해'를 시켜주는 위원회라니" 하며 다소 실망했던 기억도 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을 했고, 명칭은 다르지만 '진실'과 '화해'를 내건 작업들이 시도됐었다. 그 결과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있고, 친일파의 망령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아, 너무 많이 나갔다. 이래서 이 책의 서평은 아무래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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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의 제목이 와 닿습니다.

딸기 2005-01-0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앗, 하이드님 벌써 오셨군요 *^^*
 

지난번에 주문한 책도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주문 중독이런가.
올해는 문학의 해... 따라서 문학책??을 많이 주문했다.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그 후- 나쓰메 소세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농담- 밀란 쿤데라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포- 존 쿳시

석유의 종말- 폴 로버츠
촘스키- 존 마허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 잉그리드 베탄쿠르
평화의 발명- 마이클 하워드
나는 왕이 아니다- 니나 브라운 베이커

2월이 되면 서울로 돌아간다. 그때까지, 지난번 주문했던 책들로 참을까... 하다가, "올해는 문학의 해!"라며 두 주먹 불끈. 남은 한 달 동안 소설이나 열심히 읽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주문장을 넣은 뒤...남편에게 물었다.

"인간실격을 읽어야겠어. 그런 거 알어, 인간실격이라고?"
"아니."
"그런 것도 모르고서.. 과연 일본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그게 뭔데."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그러는 딸기는 과연 다자이 오사무를 아는가? 물론, 모른다. 지난번에 어느 지방 여행하다가, 다자이 오사무 문학비가 세워져 있는 것은 봤다. 한자로 쓰여있어서... 그게 다자이 오사무를 가리키는 거라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이번엔 남편이 내게 묻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해협'이라고, 아냐?"
"모르지, 그런 건."
"그런 건 없지. ㅎㅎ"
-_-;;

저렇게 썰렁한 농담...이 통하는 것도, 올해까지다. 얼마 안 남았다구, 올해는 문학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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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1-0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그 후]는 [마음]의 후속편인가요? [그 후]를 읽으면 [마음]이 이해되려나..- _ -;;

저는 [고리오 영감]을 가장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하이드 2005-01-06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는 '방드르디,,'의 연장인가요?

아, 그리고 아무래도.. 이맘때는 '주문 바이러스'가 떠도는것 같아요. 아, 책 사고 싶어라.

딸기 2005-01-0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제게 아무것도 묻지 마시라니깐요. 문학...에 대해서라면 거의 무뇌아 수준입니다. 하이드님, '포'는 '방드르디'의 연장 맞습니다. 주문바이러스... ㅋㅋ 저만 물린 것이 아니니깐 어쩐지 안심해도 될 것같은 기분입니다.

반딧불,, 2005-01-07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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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인사 드리옵니다.

장난감 보고 왔는데요.

거기엔 댓글이 안되는군요. 퍼갔습니다.


딸기 2005-01-0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덴티티님의 서재에선 제가 자극을 많이 받는걸요. 소설! 소설! (아, 이렇게 외쳐놓고 올 연말에 소설 몇권 읽은 게 없으면 무슨 망신일까). 반딧불님, 이상하게 어제는 댓글이 잘 안 되더군요. 장난감 재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