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지난 2분기 석유생산량은 1일 평균 963만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914만 배럴을 웃돌았다. 러시아 언론들은 `부동의 1위'였던 사우디를 제쳤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러시아는 고유가 속 오일달러 붐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석유가 세계 에너지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며 오히려 러시아 경제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 달러 붐에 `빚잔치'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에 이르는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러시아는 쏟아져들어온 오일달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최근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부채 237억 달러를 조기 상환했다. 이 부채에는 옛 소련시절의 것들도 포함돼 있다. 작년 2억3000만배럴의 석유를 수출한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2500억 달러로, 세계 4위다. 러시아는 빚 갚기에 그치지 않고 파리클럽 가입 의사까지 밝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의 전환까지 시사했다. 고질적인 에너지 수급불안 외에 최근 들어서는 이란 핵문제로 인한 중동 정세 불안과 미국 알래스카 송유관 누출에 따른 유럽 에너지기업들의 고전 등까지 겹쳐 러시아가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잔치를 벌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의 35%, 세입의 52%를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액으로 메우고 있다. 따라서 유가에 변동이 있을 경우 국가재정도 요동을 칠 우려가 있다. 또 러시아가 1990년대 이래 석유를 너무 많이 파내 유전을 고갈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석유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경우 이미 석유생산의 피크(정점)를 지나고 있으며, 여태까지 파낸 석유보다 남아있는 매장량이 더 적은 상태로 돌아서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석유로 번 돈을 인프라 확충과 산업 전반의 활성화에 효과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면 과거 오일달러로 흥청거렸던 중동 산유국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증산할까

OPEC에 따르면 러시아의 석유생산량은 2002년 하루평균 762만 배럴에서 이듬해 846만 배럴, 2004년 919만배럴, 지난해 944만 배럴 등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에는 965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석유생산량이 늘어난 `기술적인' 이유는 석유산업 현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옛 소련 붕괴 뒤 민영화했던 에너지기업들을 최근 다시 국유화하고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산유량을 늘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쿼터(생산량 할당)제도에 있다. 사우디가 OPEC의 쿼터에 묶여있는 반면 러시아는 쿼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러시아 석유전문가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OPEC을 이끌고 있는 사우디는 언제라도산유량을 늘릴 수 있지만 유가 밴드(유가 적정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 쿼터를 정해놓고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매장량으로 보면 사우디가 2617억 배럴로 2위 캐나다(1789억 배럴)와 3위 이란(1308억 배럴)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의 확인된 석유매장량은 700억 배럴에도 못 미친다.

사우디 측은 산유국 1위 랭킹을 빼앗긴 것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다만 지나친 고유가 현상에 누차 우려를 표명해온 압둘라 국왕이 지난 26일 유가를 더 낮춰야 한다는 뜻을 시사, 증산을 결정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압둘라 국왕은 "우리가 고유가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우디의 정책은 좀더 누그러진 수준에서 가격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판도 변화 없다"

러시아는 근래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들과 친밀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 석유생산량의 4분의1 가량을 소비하는 미국은 러시아 산유량이 늘어난 것에 대해 `영향력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ABC방송은 27일 "러시아가 세계 1위 산유국이 됨으로써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돌 수 있지만 러시아에의 석유 종속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세계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유전문가들도 수송 인프라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미국의 석유수입선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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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2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석유판도는 이렇게 돌아가는군요. 딸기님 서재에선 배워가는게 많아요^^

로쟈 2006-08-2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는 잠재적 매장량이 아직 여유가 있는 걸로 보던데, 어떤 예측이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볼모지였던 땅들이 다 황금광일 줄이야...

딸기 2006-08-29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고맙습니다. ^^
로쟈님, 그 '여유'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해서 말이지요. 통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석유생산의 피크(정점), 즉 '남은 양보다 파낸 양이 더 많아지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건데요. 중동 지역은 아직 피크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지만 러시아는 피크가 지났다는 추측과 5~6년 남았다는 추측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피크론자;;들은 전세계적으로 피크가 지났거나 2010년 안에 곧 지날 것이라고들 얘기하고, 반대론자들은 '새로운 매장지를 더 많이 발견하면 피크는 미뤄진다'라고들 하는 모양이예요.
 

<개념>이란 단어를 보고 불현듯 이게 생각이 났다.(;;)





    

      

개념 500을 아시는가?

개념 500 한 병만 마시면, 행방불명된 개념이 돌아오고, 애초부터 없었던 개념이 생기고,  방황하는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는 전설의 개념 500.

 

개념 500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올해 초에 연수원에서 교육받으면서, 각 팀마다 신입사원의 패기에 관한 영상물을 제작하는 게 있었는데, 우리 팀에서 나왔던 괴작 중 일부가 바로 개념 500이다. (;;)

평소에 목표도 자신감도 능력도 없이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던 한 남자가 개념 500을 마신 후, 힘을 얻어 나태와 싸워 이겨 취업에 성공했다는 ....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개념 500, 이거야말로 블루오션 아닌가.-_-  대박 예감.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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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누구의 블로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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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8-2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실은 안그래도 올리브님 블로그에서 저 홈페이지 보고 열씨미 혼자 글자 만들고 놀았답니다 ^^
(근데 저는 ttalgi예요 ㅋㅋ)

페일레스 2006-08-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딸기님 제가 ttalgi21.com의 디자인을 무단도용한 게 맘에 걸려서 리뉴얼한 거 말씀도 안 드렸는데... 가입을 해주시다니 흑흑 ㅠ_ㅠ
리뉴얼하고 360명의 회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다음날 359명이 되더라는... -_-;;
아무튼 딸기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께요 ㅠ_ㅠ

딸기 2006-08-2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그게 무단도용한 거였군요. 저도 늘 무단도용하지요 ^^

딸기 2006-08-2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올리브님, 이쁜 이름 감사합니다 >.<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즉위 60주년을 맞은 올해 태국 전역은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깃발과 노란 티셔츠들로 뒤덮였다. 지난 12일 시키릿 왕비의 생일까지 겹쳐 방콕을 비롯한 태국 곳곳은 온통 `왕실붐'으로 들떠 있다. 태국 왕실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민들을 생각하는 왕실 식구들의 `솔선수범'이 그 비결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사회적 의무)를 실천하는 태국 왕실은 입헌군주국의 모범으로 꼽힌다. 생화학자 공주, 검사 공주. 태국 왕실의 공주들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멋쟁이 아가씨들이 아닌 전문직장인들이다. 최근 푸미폰 국왕의 손녀가 검사가 된 것을 계기로, 태국 언론들과 외신들은 국왕 일가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다시 조명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검사가 된 공주

푸미폰 국왕의 손녀인 바즈라 키티야바 공주(28)가 최근 검사로 임명됐다고 영자지 네이션과 방콕포스트 등 태국 언론들이 22일 보도했다.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의 맏딸인 키티야바 공주는 미국 코널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공부벌레. 키티야바 공주는 최근 유학에서 돌아와 검사직을 지원했으며, 면접시험을 통과했다. 검찰청은 21일 키티야바 공주가 변호사협회 정회원으로 법무관 경험 등을 갖추고 있어 충분한 자격조건을 갖췄다며 검사 임명 사실을 발표했다. 왕실도 이를 공식 발표하면서 공주의 활동에 기대를 표명했다. 공주는 다음달 1일부터 검찰청에서 근무하게 된다.

법학을 전공한 공주가 관련 분야에서 자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는 험한 지역을 근무지로 희망했다는 점이었다. 공주는 면접시험 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교육 등 사회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지방 근무지로 남부의 나타리왓주(州)를 희망했다고 검찰청 대변인이 밝혔다. 태국은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이지만 나타리왓 일대에서는 이슬람이 우세하다. 이 지역에선 불교도들의 무슬림 교사 살해가 빈번해지면서 양측간 갈등이 촉발됐다. 무슬림 교육기관들이 교사들에게 총기 휴대를 권고할 정도로 험악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자선사업가, 과학자, `성실한 왕족'

1946년 즉위한 푸미폰 국왕은 국민의 고통과 함께 하는 지도자, 태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왕의 네 자녀도 전문분야와 사회사업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맏딸 우폰라타나 공주는 미국 매서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 거주했다. 몇해 전 귀국한 뒤 자선사업에 투신, 주로 마약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4년말 쓰나미 때에는 푸켓에 휴가를 갔다가 아들을 잃어 국민들의 동정을 받았다.

외아들인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첫 부인과 이혼 뒤 여러 차례 스캔들을 뿌리기도 했지만 군에서 경력을 쌓아 유능한 장성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아래 여동생 짜크리 시린돈 공주는 오빠에 이어 왕위계승서열 2위에 올라 있다. 국왕 다음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린돈 공주는 농촌지역 빈민구호활동 등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태국 언론들이 "시린돈 공주가 해온 일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꼽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 골든주빌리 네트워크, 사이자이 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막내 출라폰 공주는 방콕 카셋삭 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다. 현재 마히돈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진흥과 환경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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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2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왕실이군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네요. ^^

머큐리 2006-08-2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을 위해 전 일가가 재산을 팔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아니키스트 이회영이 생각납니다. 우리들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근대화의 주역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참 가슴 시립니다

딸기 2006-08-25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옳은 지적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이 아프리카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교역 확대·노동력 공급 등을 무기로 아프리카 공세를 강화하자 미국도 이에 맞서 아프리카 외교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고, 일본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등 대외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아프리카 외교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자원과 잠재적 시장을 갖고도 저발전 상태를 면치 못했던 아프리카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서 열강들의 쟁탈전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오바마의 화려한 순방


미국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일리노이주)이자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 배럭 오바마 의원이 지난 20일부터 보름간의 일정으로 아프리카 순방을 시작했다.
오바마 의원은 케냐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함께 미국 흑인들의 정치적 성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시작된 오바마 의원의 아프리카 순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의 방문은 미국 내 흑인들의 `뿌리찾기' 움직임과 연결되면서 미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미국인들에게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오바마 의원은 21일 남아공 의회 연설에 앞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복역했던 로벤섬 감옥 등을 둘러본 뒤 "아프리카가 그동안에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아왔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아공 에이즈퇴치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만난 뒤 아버지의 고국인 케냐와 콩고, 인도양 연안 소국 지부티 등을 둘러보게 된다.

미국은 냉전 시절 뒤로 제쳐놓았던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최근 들어 동·남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아프리카 해안지대에 미군 기지들을 잇달아 신설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군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최근 소말리아와 접한 지부티의 르모니에 기지에 1500명을 파병하는 등 주둔군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은 또 세계 10위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유전지대의 소요 등 정치적 불안요인을 감안,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항공모함을 연 130일 이상 진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구애 작전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일본 외무성이 앞으로 10년간 정원을 2000명 늘리고 대사관 숫자도 현재의 117개에서 150개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집권 이래 계속돼온 공무원 축소·세출 삭감 계획과 정면 배치되는 외무성의 조직 확대 계획 이면에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목표가 숨어 있다. 일본은 지난해 독일, 브라질, 인도 등 상임이사국 진출을 꿈꾸는 이른바 G4 국가들이 내놓은 안보리 개혁안이 무산된 이유가 아프리카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데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외무성은 이같은 판단에 따라 우선 인력을 수백 명 증원, 아프리카 각국에 대사관을 신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성의 확대 계획이 그대로 통과될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공격적 외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지역 외교력 강화 방안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식 아프리카 외교의 효력


일단 아프리카 외교에서 고지를 선점한 것은 중국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 아프리카를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의 공세를 보도하면서, 중국인들로 들어찬 세네갈의 모습을 전했다. 자동차 경주 `다카르 랠리'로 유명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중심가는 과거 식민종주국이었던 프랑스인들 등 유럽인들이 넘쳐났지만 이제는 중국 상인들로 가득하다. 지난달 서아프리카 소국 감비아 수도 반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담장에는 중국 참관인단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프리카 어디에건 중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다. 내전이 끝난 시에라리온에서는 유럽이 아닌 중국이 전후복구·인프라 재건을 주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상무부 통계를 인용, 중국과 아프리카의 무역량이 2001년 이래 4배로 뛰어 지난해 400억 달러에 육박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내정치에는 관여하지 않는 실용적 접근으로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유엔사무총장 경제고문을 지낸 미 컬럼비아대 제프리 삭스 교수는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중국의 아프리카 외교를 평가하며 "중국은 아프리카 빈국들에 이런저런 `강의'를 하는 대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이같은 방식이 과거 식민제국의 아프리카 강탈과 다른 중국식의 아프리카 접근법이라고 평가했다.


`신식민주의' 논란


중국은 아프리카의 에너지자원 뿐 아니라 토지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 짐바브웨 등 적극적 개발 과정에 들어선 아프리카국가들은 중국의 투자를 받는 대신 중국 측에 장기간 토지를 임대해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언론들은 중국이 아프리카 자원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는 기사를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보내고 있다. 잭 스트로 전 영국 외무장관은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150년 전 우리(유럽)가 아프리카에서 벌였던 일과 같다"며 식민주의에 빗대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측은 이런 시선에 대해 "중국과 아프리카의 친밀한 관계는 아프리카가 선택한 것"이라며 식민주의 논란을 일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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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어느 편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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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8-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에나들...

머큐리 2006-08-2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되건 아프리카는 원조의 손길이 필요한 땅이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간섭하지 않는 평등한 호혜관계는 불가능한 걸까요?

딸기 2006-08-2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쪽에선 자기들이 그런 평등한 호혜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예요. 일방적 수탈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른 '거래'를 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안내를 부탁합니다.


폴 빌라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전화를 놓은 집이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벽에 붙어 있던, 반질반질하게 닦은 참나무 전화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화기가 그 통 옆에 걸려 있었다. 전화번호까지 생각나는데, 우리 집은 109번이었다.

나는 워낙 꼬마라서 전화기에 손이 닿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거기 대고 말을 할 때면 홀린 듯이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한 번은 어머니가 나를 들어 올려 지방에 출장중인 아버지와 통화하도록 해준 적도 있었다. 이거 참, 요술 같은 일이 아닌가!

이윽고 나는 이 멋진 기계 속 어딘가에 놀라운 인물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은 여자였는데, 이름은 '안내를 부탁합니다'였다. 그 사람은 무엇이든 알고 있었다. 누구네 전화번호라도 어머니가 묻기만 하면 척척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어쩌다 밥을 안 줘 우리 집 시계가 멎기라도 하면,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즉시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내가 이 전화기 속의 요정과 처음으로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은, 어느 날 어머니가 이웃집을 방문하러 갔을 때였다. 지하실에 꾸며놓은 작업대 앞에서 놀다가, 나는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때렸던 것이다. 너무나도 아팠지만 집안에는 나를 달래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울어봤자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쿡쿡 쑤시는 손가락을 입으로 빨면서 집안을 헤매다가 어느덧 층계 옆에 이르렀다. 전화기다! 나는 얼른 응접실로 달려가 발받침 의자를 끌어왔다. 그 위에 올라서서 수화기를 들고는 귀에 갖다 댔다. 그리고 전화통에 붙은 송화기에 대고 말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한두 번 짤깍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작지만 또렷한 음성이 귀에 들려왔다.

"안냅니다."

"손가락을 다쳤어, 잉...."

나는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이제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생기자, 눈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쏟아졌다.

"엄마가 안 계시나요?"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물었다.

"나밖에 아무도 없는 걸, 잉...."

"피가 나요?"

"아냐, 망치로 때렸는데 막 아파요."

"냉장고를 열 수 있어요?

나는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얼음을 조금 꺼내서 손가락에 대고 있어요, 금방 아픔이 가실 거예요. 얼음을 꺼낼 때 조심해야 해요."

이렇게 가르쳐준 뒤, 그 사람은 상냥하게 덧붙였다.

"자, 이제 그만 울어요. 금방 나을 테니까."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무슨 일이든 모르는 게 있으면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지리 공부를 하다가 전화를 걸면, 그녀는 필라델피아가 어디 있으며 오리노코 강은 또 어디로 흐르는지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설명만 들어도 멋있어서, 나는 이담에 커서는 꼭 이 강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다.

그녀는 또 내 산수 숙제를 도와주었고, 내가 공원에서 잡은 다람쥐에게 과일이나 땅콩을 먹이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우리들이 애지중지하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즉시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불러 이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 뒤 어른들이 흔히 어린애들을 달랠 때 하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하며 온 가족에게 기쁨을 선사하던 새가 어떻게 한낱 깃털 뭉치로 변해 새장 바닥에 숨질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조용히 말했다.

"폴, 죽어서도 노래 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왠지 나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또 전화기에 매달렸다.

"안냅니다."

이제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휙스(수리하다)라는 말을 어떻게 쓰죠?"

"무언가를 고친다는 뜻 말이죠? 에프 아이 엑스(fix)에요."

바로 그때, 언제나 나를 골려주기 좋아하던 누나가 층계에서 나를 향해 뛰어내리며, '왁' 하고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수화기를 쥔 채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바람에 수화기는 뿌리째 전화통에서 뽑히고 말았다.

우리는 둘 다 겁에 질렸다. '안내를 부탁합니다'의 음성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수화기 코드를 뽑아내어 혹시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았나 걱정되었다.

얼마 후 한 남자가 현관에 나타났다.

"난, 전화 수리공이야. 저 아래서 일하고 있는데, 교환수가 부르더니 이 집 전화가 어떻게 되었는지 가보라고 하더라, 무슨 일이 있었니?"

나는 그에게 조금 전의 일을 이야기했다.

"아, 뭐 그런 건 잠깐이면 고칠 수 있어."

그는 내게서 수화기를 받아들고는 전화통을 열었다. 얽히고 설킨 전선과 코일이 드러났다. 그는 끊어진 전화 코드를 잡고 조그만 드라이버로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수화기를 한두 번 두드린 뒤 전회에 대고 말했다.

"여어, 나 피터야. 109번 전화는 이제 괜찮아. 누나가 겁주는 바람에 애가 놀라서 수화기 코드를 뽑았더군."

그는 수화기를 걸고는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한 번 쓸어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 모든 일들은 북서 지방 태평양 연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 내가 아홉 살이 되자, 우리는 대륙을 가로질러 보스턴으로 이사했다. 그 때 나는 수화기 속의 내 가정 교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물론 새로 이사온 집에도 전화기는 있었다. 그러나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어디까지나 두고 온 고향의 낡은 나무 상자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응접실의 작은 테이블에 놓인 번쩍번쩍 빛나는 새 전화기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0대로 접어들면서도, 어린 시절 그 사람과 나는 대화의 추억은 결코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간혹 어려운 문제나 난처한 일이 생기면, 그 옛날 '안내를 부탁합니다'에 물어 올바른 해답을 얻었을 때의 안도감이 생각나 나는 그녀와 헤어졌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제는 나도 알 것 같았다-얼굴도 모르는 꼬마 소년에게 자기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준 그녀는 얼마나 참을성 있고 친절하며 이해심 깊은 사람이었던가!

몇 년 뒤, 방학을 집에서 보내고 서부의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공중 전화로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나는 이제 결혼하여 그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덧 나는 고향 마을의 전화국을 불러 말하고 있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흡사 기적과도 같이, 너무도 귀에 익은 저 가깝고도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냅니다."

애당초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지껄이고 있었다.

"저, '휙스'라는 단어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속삭이듯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마 지금쯤은..."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말했다.

"..손가락은 다 나았겠지요?"

"정말 아직도 계시는군요. 하지만 모르실 걸요. 그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이 제게 얼마나 귀중한 분이었는지..."

"당신이야말로."

그녀는 대답했다.

"네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알고 있나요? 나는 평생 아이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늘 당신의 전화를 기다리곤 했답니다. 우습죠? 이런 얘기?"

결코 우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그 동안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말하고, 1학기가 끝나 다시 누나를 만나러 올 때 전화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부디 그렇게 해줘요. 그냥 샐리를 찾으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샐리."

'안내를 부탁합니다'에게 다른 이름이 있다니 기분이 왠지 묘했다.

"혹시 다람쥐를 만나게 되면, 과일과 땅콩을 먹으라고 말해주겠어요."

"그렇게 해요."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오리노코 강에 가봐야겠지요? 그럼 잘 가요."

석 달 뒤, 나는 다시 시애틀 공항에 내려 전화를 걸었다.

"안냅니다."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친구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러시다면 유감이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샐리 씨는 병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잠깐씩만 일하셨습니다. 그 분은 한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내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녀는 물었다.

"잠깐, 혹시 폴 빌라드 씨가 아니신 가요?"

"그렇습니다."

"그러시다면 샐리 씨가 남긴 말씀이 있습니다. 편지지에 적어놓으셨지요."

"무슨 말씀인데요?"

나는 물었지만 이미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여기 있군요. 읽어드리겠습니다. -그에게 말해줘요. 죽어서도 노래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고. 그는 내 말뜻을 이해할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샐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였던 것 같군요. 별로 많이 알려져있지도 않은 폴 빌라드의 에세이같은 단편소설 ‘이해의 선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원제는 The present of understanding 이라고 하는데, 영어 텍스트는 인터넷을 뒤져봐도 없네요.

옮겨놓은 것은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A TRUE STORY’라는 제목의 또다른 단편입니다. ‘이해의 선물’과 마찬가지로, 잔잔하고 단순한 듯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울리는 단편이지요. 너무 판에박힌 이야기같아, 라고 말해버리기엔, 누구나 마음 한곳에 저런 기억들이 있지 않을까요. 꼭 저렇게 아름답게 새겨진 것들이 아니더라도, 저는 어릴적 오래된 연립주택에 살 때에 저를 집으로 불러 ‘내 손녀와 네 이름이 똑같다’ 하시면서 집으로 불러 과자니 사탕이니 주시던 노부부 생각이 나곤 한답니다.


원문도 옮겨 놓습니다. ‘이해의 선물’은 다음에 올릴께요. :)


A TRUE STORY


When I was quite young, my family had one of the first telephones in our neighourhood. I remember well the polished oak case fastened to the wall on the lower stair landing.  The shiny receiver hung on the side of the box.  I even remembered the number - 105. I was too little to reach the telephone, but used to listen with fascination when my mother talked into it.  Once she lifted me up to speak to my father, who was away on business. Magic! Then I discovered that somewhere inside that wonderful device lived an amazing person - her name was "Information Please" and there was nothing that she did not know. My mother could ask her for anybody's number and when our clock ran down, Information Please immediately supplied the correct time. 


My first personal experience with this genie-in-the-receiver came one day while my mother was visiting a neighbour. Amusing myself at the toolbench in the basement, I whacked my finger with a hammer. The pain was terrible, but there didn't seem to be of much use crying because there was no one home to offer sympathy. I walked around the house sucking my throbbing finger, finally arriving at the stairway.  The telephone! Quickly, I ran for the footstool in the parlor and dragged it to the landing.  Climbing up, I unhooked the receiver and held it to my ear. "Information Please," I said into the mouthpiece just above my head. A click or two, and a small clear voice spoke into my ear. 

"Information."  "I hurt my fingerrr-" I wailed into the phone.  The tears came readily enough now that I had an audience.  "Isn't your mother home?" came the question.  "Nobody's at home but me," I blubbered.  "Are you bleeding?".  "No", I replied.  "I hit it with the hammer and it hurts".  "Can you open your icebox?" she asked. I said I could. "Then chip off a little piece of ice and hold it on your finger. That will stop the hurt.  Be careful when you use the ice pick," she admonished.

"And don't cry.  You'll be alright".


After that, I called Information Please for everything. I asked for help with my Geography and she told me where Philadelphia was, and the Orinco--the romantic river I was going to explore when I grew up.  She helped me with my Arithmatic, and she told me that a pet chipmunk--I had caught him in the park just that day before--would eat fruits and nuts. 

And there was the time that Petey, our pet canary, died. I called Information Please and told her the sad story. She listened, then said the usual things grown-up say to soothe a child.  But I was unconsoled. 

Why was it that birds should sing so beautifully and bring joy to whole families, only to end as a heap of feathers feet up, on the bottom of a cage?  She must have sensed my deep concern, for she quietly said, "Paul, always remember that there are other worlds to sing in."  Somehow, I felt better.


Another day I was at the telephone. "Information," said the now familiar voice. "How do you spell fix?".  F-I-X."  At that instant my sister, who took unholy joy in scaring me, jumped off the stairs at me with a banshee shriek-"Yaaaaaaaaaa!" I fell off the stool, pulling the receiver out of the box by its roots.  We were both terrified--Information Please was no longer there, and I was not at all sure that I hadn't hurt her when I pulled the receiver out.  Minutes later, there was a man on the porch. 

"I'm a telephone repairman. I was working down the street and the operator said there might be some trouble at this number."  He reached for the receiver in my hand. "What happened?"  I told him. "Well, we can fix that in a minute or two."  He opened the telephone box exposing a maze of wires and coils, and fiddled for a while with the end of the receiver cord, tightened things with a small screwdriver. He jiggled the hook up and down a few times, then spoke into the phone. "Hi, this is Pete.  Everything's under control at 105.  The kid's sister scared him and he pulled the cord out of the box."  He hung up, smiled, gave me a pat on the head and walked out the door.


All this took place in a small town in the Pacific Northwest. Then, when I was nine years old, we moved across he country to Boston-and I missed my mentor accutely. Information Please belonged in that old wooden box back at home, and I somehow never thought if trying the tall, skinny new phone that sat on the small table in the hall. Yet, as I grew into my teens, the memories of those childhood conversation never really left me; often in moments of doubt and perplexity I would recall the serene sense of security I had when I know that I could call Information Please and get the right answer.  I appreciated now how very patient, understanding and kind she was to have wasted her time on a little boy.


A few years later, on my way back to college, my plane put down in Seattle.  I had about half an hour between plan connections, and I spent 15 minutes or so on the phone with my sister who lived there now, happily mellowed by marriage and motherhood.  Then, really without thinking what I was doing, I dailed my hometown operator and said, "Information Please."  Miraculously, I heard again the small, clear voice that I know so well:"Information."  I hadn't planned this, but I heard myself saying,

"Could you tell me, please, how to spell the word 'fix'?"  There was a long pause. Then came the softly spoken answer. "I guess," said Information Please,"that your finger must have healed by now."  I laughed. "So it's really still you.  I wonder if you have any idea how much you meant to me during all that time...."  "I wonder," she replied,

"if you know how much you meant to me?  I never had any children, and I used to look forward to your calls. Silly, wasn't it?" It didn't seem silly, but I didn't say so.  Instead I told her how often I had thought of her over the years, and I asked if I could call her again when I come back to visit my sister when the semester was over. "Please do. Just ask for Sally." "Goodbye Sally." It sounded strange for Information Please to have a name. "If I run into any chipmunks, I'll tell them to eat fruits and nuts."  "Do that," she said. "And I expect one of these days you'll be off for the Orinoco. Well, good-bye."


Just three months later, I was back again at the Seattle airport. A different voice answered, "Information," and I asked for Sally.  "Are you a friend?" "Yes," I said.  "An old friend."  "Then I'm sorry to have to tell you.  Sally had only been working part-time in the last few years because she was ill. She died five weeks ago." But before I could hung up, she said, "Wait a minute.  Did you say your name was Villard?" 

"Yes." "Well, Sally left a message for you.  She wrote it down." "What was it?" I asked, almost knowing in advance what it would be.  "Here it is, I'll read it-'Tell him I still say there are other worlds to sing in.

He'll know what I mean'"


I thanked her and hung up. I did know what Sally meant.


Paul Vi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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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8-22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너무너무 감동이에요^^ 딸기님 고맙습니다~ 영문으로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감동일 것 같아요. 물론 제 실력에 사전은 필수지만요^^;;;;
그나저나 카페 길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서 이따 다시 올게요~

딸기 2006-08-2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추천해주셔야죠! ^^

까페는요,

여기랍니다.


마노아 2006-08-2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잊다니, 센스가 부족해요ㅡ.ㅡ;;;
딸기님은 시간 언제 괜찮아요? 금요일쯤 괜찮을까요? 편한 시간 얘기해주세요~^^

딸기 2006-08-22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추천 고맙습니다. 룰랄라~
그런데 저는 다음주 쯤에야 괜찮을 것 같은데... 어쩌죠?
저녁에는 집에서 애 봐야 하기 때문에;;

마노아 2006-08-2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다음 주에 뵈어요~ 괜찮답니다. ^^ 앞으로 그쪽에서 누구 만날 때는 스타벅스 가지 말고 정원을 찾아야겠어요. 이름부터 넘 예뻐요^^

딸기 2006-08-23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우'님, 고맙습니다. 그 버찌씨 이야기 맞아요. 영어 원문이 거기에 있었군요.
마노아님, 그럼 다음주에 만나기로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