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향하여'라고 하니깐 되게 웃기네;;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독일에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행 목적이 목적이다보니... 경기장 순회에 그쳤던 게 사실이고, 여행 내내 관심사는 '조 추첨식'에 가 있었으니 말이다.

여행의 당초 목적이었던 월드컵 조 추첨식 이야기부터. (여행담이라기보단 월드컵담이다 ^^;;)

추첨 전에 무려! 로타어 마테우스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마테우스가 날 만나줄리는 만무하고, 조추첨이 열릴 예정이던 라이프치히 노이어메세 컨벤션센터에서 어정거리다가... 어떤 작자들(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를 쫓아가는 작자들은 뻔하다, 방송 기자들이다)이 누군가(카메라를 든 누군가에게 쫓기는 작자는 뻔하다, 유명인사다)를 따라가는 걸 목격했다. 내가 누구인가? 구경거리가 있으면 당연히 구경을 해야지.
마테우스였다. 솔직히 나는 마테우스가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축구선수로서 마테우스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나는 세계적인 유명인사인 펠레를 김포공항에서 본 적도 있지만 역시나 펠레의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마테우스가 컨벤션센터에 등록하고 있는 걸 옆에가서 찍었음

마테우스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의 경기를 눈여겨봤다면서 “한국은 독일팀과의 경기에서 대단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월드컵을 아주 잘 치러낸 것처럼 한국팀은 멋진 경기들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한국팀은 계속 향상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팀을 경계하고 싶었는지, 혹은 무시하고 싶었는지, “지난번엔 한국이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유럽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며 “한국팀이 지난 대회에서와 같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12월 9일 저녁에 열린 추첨식에서는 마테우스가 바로 우리가 속한 4번 그룹의 추첨을 했다. 우리를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같은 G조에 집어넣은 것이 바로 마테우스다. (덕택에 내가 고생했다구...)

조추첨식은 재밌었다.
내가 월드컵 조추첨식장에서 추첨을 지켜보다니! 꿈이야 생시야~~
혼자 속으로 대단히 감동하면서 조추첨식을 지켜봤다. 추첨이 진행되는 동안 참관인석에서는 국가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조추첨식 전에 있었던 공연들, 다 재밌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이름이 불리기까지 어찌나 오래 기다려야 했던지.

4번 그룹에서도 마지막 사우디아라비아와 둘이 남을 때까지 이름이 불리질 않았다. 옆에 앉아있던 축구협회 관계자들, '손에 땀을 쥔다'는게 아마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을게다. 브라질, 크로아티아, 호주가 있는 F조의 마지막 남은 자리에 일본의 이름이 불렸을 때.. 이러면 안되지만 속으로 조금 고소하면서, "최악은 피했다"며 다들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 한국이 프랑스, 스위스, 토고가 있는 G조로 결정되자 다소 안도. 옆에 축구협회 김주성 이사가 앉아있었다. 예쁘게 생겼더라 ^^ 조추첨결과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최악의 케이스는 피했으니 우리 팀이 해볼만 하다"고 해서, 나도 괜히 안심...

재밌었던 것은 본선 참가 자체만으로 기뻐한 나라들 표정이었다. 32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호주... 최강 브라질팀과 한 조가 되었지만 객석의 참관인들이 수건을 흔들며 좋아라했고, 우리와 같은 조가 된 토고 사람들은 유니폼을 흔들고 전통 호루루기를 불며 몇초간 골 셀레브레이션을 연상케하는 몸짓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긴장됐던 추첨장에 한순간 웃음이 퍼졌을 정도.



베켄바워가 공들고 뭔가 하고 있음

조추첨식은 프란츠 베켄바워 독일월드컵준비위원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는데, 가히 '베켄바워의, 베켄바워를 위한' 행사다시피 했다. 추첨 전 행사가 1시간30분여 동안 열렸다. 32개국 국기로 만든 대형 축구공, 어린이들의 가장행렬과 마술쇼, 가수의 공연과 댄스... 축구공을 형상화한 중앙의 대형 무대는 화려한 네온 불빛으로 장식됐다. 영화 `굿바이 레닌'을 만들었던 호어스트 에켈 감독(이름 알아듣느라고 고생함)이 축구를 소재로 한 유머러스한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이거 어디서 구할수 있으면 구해서 다시 좀 보고 싶다. 꽤 재밌었다.



조추첨하는 모습.

독일은 과거와 현재의 축구영웅들을 총동원해서 축구 강국의 자부심을 과시했다. 과거 3차례 우승 경험이 있는 독일은 베켄바워 준비위원장을 비롯해 위르겐 클린스만 현 대표팀 감독 등 과거 우승의 주역들을 무대에 불러냈다. 마지막에는 현재 대표팀 주장인 미하엘 발락을 등장시켰는데... 말하자면 내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내년 월드컵, 어떻게 되려나...
우리가 우승...은 쫌 심하고, 4강...도 무리겠지? 8강까지만 올라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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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2-2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강이면 족합니다~

urblue 2005-12-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 레닌 재밌었는데, 그의 단편 영화가 더 궁금하군요. ^^
16강이면 족합니다~, 2.

mannerist 2005-12-2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중3때 미국 월드컵... 후반전에 악착같이 밀어부친 태극전사들의 몸부림보다도 -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 당시 가장 아깝게 16강 탈락한 국가로 한국이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맞나요? 아니면 또 스포츠 찌라시들의 헛소리였나 -_-ㅋ - 홍명보의 통쾌한 중거리슛보다도, 더욱 더 놀라웠던 건 현 대표팀 감독 클린스만 첫 골이었어요. 수비수 하나 등지고 완전히 몸 꺾어 날린 한 방의 터닝 발리슛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ㅎㅎ

하긴-_- 제가 워낙에 테크니션에 열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오대영 스코어때도 정작 제가 열광한 건 베르캄프 大人의 간결한 볼터치와 귀신같은 몸놀림이었으니까요. 아우... 그거 어떻게 다시 볼 수 없나...

딸기 2005-12-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린스만은 독일에서 이제 거물 취급을 받기 시작하는데(현 국대 감독) 마테우스는 어쩐지 좀 급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라이프치히에선 어느 고급 호텔에 마테우스는 방을 잡았는데 클린스만은 못 잡았다고 해서 신문에 "클린스만이 마테우스보다 못한가"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답니다.
클린스만의 그 골, 아마 매너님이 얘기한 골일 것 같은데, 조 추첨식에서 자료화면으로 보여줬어요. 매너님 테크니션을 좋아하는군요. 저는 테크니션 스타일보다는 발바리 스타일(아일랜드의 데미안 더프, 독일의 뇌빌 같은 선수)을 좋아하고, 중후하거나 짐승같은 타입(비에리 내지는 호나우두)에 열광하거든요.

만두님, 유어블루님.. 16강은 약해요, 약해... 더 해야죠! ㅋㅋ

mannerist 2005-12-2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테크니션도 뭐 화려한 기술로 눈 흐리는 스탈 말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날렵한 움직임, feel이 있는 선수들 말에요. 98년도 월드컵땐, 센터서클에서 날라온 롱패스 원터치로 받아넣은 라울 보고 시험기간 매점떡볶이 먹으면서 저게 사람새끼냐 생난리도 쳤어요. ㅎㅎㅎ 나이지리아 vs 스페인 전이었는데 올리세였나요. 진짜 로케트같은 중거리슛 날려서 2:3으로 스페인 셧아웃시켰던게. 그게임도 진짜 재밌었는데. ㅎㅎㅎ

재작년 이후 축구 혐오증이 도저 신경 끈지 꽤 됐는데... 그때 이야기 다시 떠올려봐도 재밌네요. 이야기 나온김에 매너 인생의 축구 경기 세 개만 꼽자면...

1. 98년 4월 잠실에서 일본 상대의 황선홍 복귀전. 비와서 운동장 개판이었는데 서정원이 기가막히게 찔러준 공 황선홍이 치고들어와 받는 순간 수비랑 엉켜 공 뜨고 "젠장 또 X됐다"하는 순간 믿어지지 않는 각도로 몸 던지며 황선홍 발리슛, 가와구치 키 넘겨 골인~ 거기에 죽~ 카메라 앞에 미끄러지는 황새. 모 대학 기숙사 TV시청실 난리 났었슴다. ㅎㅎ

2. 유로 2000 준결승전 이탈리아 vs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살벌한 파상공격을 지독하게 불리한 판정 속에서 끝까지 막아내고 끝내 승부차기에서 3:1로 네덜란드 셧아웃. 칸나바로/네스타/말디니大人의 카데나치오의 위력에 처음으로 지키는 축구가 재미있을수도 있구나 보여줬죠. 평점 10점의 로보캅 톨도도 빼놓을 수 없고요. ㅎㅎㅎ

흐흐. 그것 말고 유로 2000의 잉글랜드 - 포르투칼이랑 한일월드컵 16강도. ㅎㅎ 쩝. 작년하고 올해 앓은 축구혐오증이 좀 풀리려나요. 내년에는. 그래도 월드컵인데. =)

숨은아이 2005-12-28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622227


앗, 좀 전에 22222 지나셨네요. 축하~! ^^

숨은아이 2005-12-28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월드컵이 좋은 점이 있다면 몰랐던 아프리카 나라를 하나씩 알게 되는 것. ^^

딸기 2005-12-29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축구를 혐오하면 안되죠 ^^
숨은아이님, 아프리카 나라를 하나씩 알게 되는 것, 저도 그게 참 좋아요.
우리는 보통 유럽과 미국 아니면 모르는 걸 자랑으로 여기다시피 하는데
내년 월컵 모토가 '친구를 만드는 시간'이랍니다.
우리도 친구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듯한 기분.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