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정도로 압승을 할줄은 몰랐다.

일요일인 어제, 회사에 나와서 NHK를 봤다. 일본말은 잘 못 알아듣지만, 암튼 저녁 8시가 되어 투표가 끝나고 나니 출구조사 결과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285석에서 325석이라니!

아무튼 이웃나라에서 벌어진 여야간 일대 혈전은 끝났다. 고이즈미,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본다. 다른 자들이 모두 까마귀처럼 양복 입고 쪼르르 서있을 적에 고이즈미는 분홍색 셔츠를 입고 나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쇼 정치, 극장 정치 하는데, 쇼는 중요하다. 자민당 간사장이라는 이가 이렇게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쉬운 말로 설명했다. 그것이 통한 것 같다".

흰소리 몇마디 하자면-- 옛날 우리나라에도 와이에스라는 전설의 쇼쟁이가 한 분 계셨지...

또 한마디 더 하자면-- 우리나라엔 지금 쉬운 말로 설명 잘하는 대통령이 계시다. 근데 왜 인기가 없지...)

 

 

일본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기록적인 대승을 거뒀다. 전체 480석 중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327석을 차지, 과반수는 물론이고 3분의2선(320석)까지 넘어섰다. 이로써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민영화는 물론이고 개헌 등 핵심 이슈에서 사실상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으며, 일본은 명실상부한 `고이즈미 시대'로 가게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는 22일 쯤 중의원 특별회의를 소집, 제1당 당수로서 총리로 재선출되는 절차를 밟은 뒤 지난달 참의원에서 부결됐던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을 다시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현행법상 참의원에서 부결됐더라도 중의원이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키면 참의원 결정은 효력을 잃는다.

고이즈미 총리는 11일 밤 일본 언론들과의 연쇄 회견에서 "민간의 것은 민간에 줘야 한다"며 우정 민영화 추진 방침을 다시 강조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2일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부결됐던 법안에서 우정공사 민영화 시기를 몇 개월 늦추는 정도의 손질만 가한 뒤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시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우정공사측은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12일부터 당장 민영화 준비 작업을 재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당면 과제인 우정법안이 마무리되고 내각 인선과 자민당 당직개편이 끝나면 개헌 문제가 부상할 전망이다. 참의원이나 중의원에서 의원 3분의2가 찬성하면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 `의석 3분의2'는 고이즈미 정권에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만능열쇠인 셈이다.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오는 11월15일에 개헌안 초안을 공표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전후해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초안은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를 고쳐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연립정권의 일부인 공명당은 개헌에 반대해왔으나,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정권내 공명당의 입지는 약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개헌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개헌을 성급히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공명당이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경우 야당인 민주당 내 개헌 지지파를 끌어들여 개헌 작업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현지 언론들은 내다봤다.

또한 오는 12월에는 이라크에 나가 있는 자위대 파병 시한이 만료된다. 11월에는 개헌 논의와 함께 자위대 파병 연장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현 정권의 아시아 외교 실책을 공격했지만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개헌 논의를 비롯해 고이즈미 총리의 우경화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고이즈미 총리가 연내에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연장론도 나오고 있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 총리는 11일 임기 연장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정해진 임기만 채우더라도 내년 4월이 되면 전후 3번째 장수 총리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또 임기를 연장하지 않더라도 고이즈미 총리가 `킹메이커'가 돼 후임 총리를 자신의 입맛대로 선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자민당은 11일 치러진 총선에서 전국 300개 소선거구와 비례대표(180석) 선거에서 총 296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31석을 합치면 여당 의석은 전체 480석 중 327석이다. 이로써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이 300석을 넘긴 이래 최대 승리를 기록했다. 투표율은 67.5%로 지난 2003년 선거 때보다 7% 이상 높아져 이번 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자민당은 고이즈미 총리 특유의 스타성과 개혁 이미지, 총선을 앞두고 전격 발탁한 화려한 신인 군단의 활약에 힘입어 대도시권과 젊은층 부동표를 대거 흡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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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5-09-1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그 분은 '쇼'를 싫어한다는군요...

딸기 2005-09-12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쇼'를 잘 해주면 국민들이 좋아할텐데...

서연사랑 2005-09-1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수업시간에 "일본은 대부분의 경우 과반수 넘는 정당이 나오지 않는 다당제이므로 연립정권이 등장한다"고 가르치는데 선거 결과가 이러하니 다시 애기해 줘야 겠군요...고이즈미...날 귀찮게 하는구나...

딸기 2005-09-1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전자인간 2005-09-13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정치에 대해서는 무지해서 여쭤보는 것인데,
어떻게 자민당이 '개혁'을 내걸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죠?
제게 자민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여서 썩은 물' 이었는데...

딸기 2005-09-1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고이즈미가 위대;;하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이즈미가 자민당을 개혁한 측면이 많긴 한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고이즈미가 해온/하는/할 짓들을 정리해보면

1. 정치개혁: 금권정치 파벌정치 해체.
일본에 '족의원'이란 게 있대요. 기업들, 이익집단들과 결탁해서 정치자금 받고, 당 내에서는 파벌로 똘똘 뭉쳐 자리깔고 앉은 자들. 자민당에서 최대 주류 파벌이 하시모토파, 그 다음이 모리파였는데요.
모리파가 고이즈미를 밀어서 총리가 된 거였대요. 고이즈미가 원체 외로운 늑대이다보니, 모리가 쫓겨나면서 고이즈미를 밀고, 하시모토파에서도 "뭐 걔는 별 영향력이 없으니깐" 이러면서 용인해줬나봐요.
그런데 고이즈미가 스타가 되고, 쇼 정치를 워낙 잘 하고... 그래서 국민들 지지를 등에 업고 칼을 뽑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우정공사라는 것이 바로 그 족의원들과 연결돼 있고 또 문제가 많았는데, 이걸 민영화해버리겠다, 라는 거니깐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중의원 해산해서 꼴통 반대파들 잘라내고, 정치신인들 대거 등용해서 파벌들 세력을 약화시키고(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닙니다만)...
이번에 야당은 '정권교체'를 외쳤는데, 고이즈미는 '정치 교체'를 외쳤다더군요.

2. 경제: 신자유주의 '개혁'
울나라에서 DJ가 이미 선보인바 있으니 설명은 생략...

3. 외교: '강한 일본' '보수화'
이거 증말 웃깁니다. 주변국들 보기엔 위험한 짓이고 '우경화'에 해당되는 짓인데, 이게 일본 '젊은 사람들'의 욕구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더군요.
대도시/젊은층은 민주당을 좋아하고 농촌/나이든층은 자민당을 좋아하고...
이게 그동안의 구도였는데, 이번 선거 결과에선 완존히 뒤집혔습니다.

전자인간 2005-09-1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친절한 해설입니다.
이제 좀 뭔가 알겠군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