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박테리아의 '인공 게놈'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서기 2500년의 미래세계를 묘사하면서, `아기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인류가 대량생산되는 과정을 그렸다.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창조'하고 생산해내는 것이 더이상 꿈만은 아니게 됐다.
미국 과학자들이 화학물질들을 조합해 인공적으로 게놈(유전체)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이 기존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복제를 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힘으로 생명체를 창조해내는 길로 나서고 있는 것.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실험실에서 생명체가 대량생산되는 날도 머지 않았다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인공 게놈과 `합성생물학'

미 메릴랜드주 록빌에 있는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는 24일 "5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화학적 요소들을 조합, 박테리아의 게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크레이그 벤터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것은 `마이코플라스마 제니탈리움'이라는 박테리아의 게놈. 마이코플라스마는 485개의 유전자로 움직여지는 지구상 가장 단순한 생명체 중 하나다. 미국 과학자들이 2002년 생명체와 비(非) 생명체의 중간 격인 바이러스의 게놈을 만들어낸 적은 있지만, 번식이 가능한 완전한 생명체의 게놈이 인공적으로 생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상세한 연구결과를 24일자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공개했으며, 인공 합성된 게놈에 `마이코플라스마 라보라토리움(laborator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게놈이란 녀석이다. 물론 모형도... 저 이중나선 사다리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붙임으로써
과학자들은 인공생명체로 가는 길을 열었다. /로이터



생명체의 DNA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아민이라는 4개의 염기성 물질로 이뤄져 있다. 보통 머릿글자를 따 A, G, C, T로 불리는 이 물질들은 2종류씩 쌍을 이뤄 이중나선 구조를 형성한다.
연구팀은 네 물질을 조합, 58만2970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마이코플라스마의 게놈을 만들었다. 다만 염기쌍 하나하나를 잇는 것은 시간이 매우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5000∼7000개의 염기쌍으로 이어진 일종의 `사슬' 101개를 서로다른 벤처기업들에게서 구입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사들인 박테리아의 게놈 토막들을 이어 하나의 긴 사슬로 완성하는데에 성공한 것. 이 작업에만 5년이 걸렸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이미 미국에는 인공생명 시대를 바라보며 게놈 합성에 몰두하는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석유고갈 이후를 내다보면서, 바이오연료의 원료가 되는 미생물의 대량생산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존 생물학과 구분해 인공생명 창조에 초점을 맞춘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인공생명 시대가 도래하나

벤터 연구소와 함께 생명공학회사 `신세틱 지노믹스(Synthetic Genomics)'를 이끌고 있는 과학자 겸 사업가 크레이그 벤터(60)는 생명공학기술의 최첨단에서 끊임없이 윤리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인물이다. 미국과 유럽국 정부들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던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경쟁을 벌여 인간 게놈지도를 거의 동시에 완성해내 세계의 눈길을 끌었던 그는 2002년부터 노벨상 수상자 해밀튼 스미스 등을 끌어들여 인공생명 연구에 몰두해왔다.




과학윤리 논란에서 언제나 최전선에 있었던 벤처사업가 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 /AFP


아직 벤터 연구소는 인공 게놈이 세포를 움직여 완전한 유기체로 기능하게 만드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인공생명이 탄생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던 것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만은 사실이다.

인공생명을 둘러싼 격렬한 논란은 벌써 시작됐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 등은 SF영화나 소설의 단골 메뉴였던 `병균을 이용한 악당들의 지구공격' 같은 시나리오들을 쏟아내면서 과학윤리 논쟁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기술이 발전된다면 컴퓨터로 인쇄물을 프린트하듯 생명체를 디자인해 `출력' 버튼만으로 탄생시킬 수도 있게 될 것"이라며 "나쁜 과학자들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가공할 병원균 따위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실수'로 무시무시한 유기체를 자연에 방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장담할수 없다"고 지적했다.
벤터 박사는 "과학자들과 생명공학기업들은 윤리적인 차원을 늘 고민하고 있다"며 반박했지만, 인공생명 연구를 감시ㆍ규제할 장치를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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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1-2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에 지적되었다시피, 인공 게놈이 단백질등으로 발현되어 생명현상을 수행하기까지는 훨씬 더 큰 장벽이 있지요. 그래서 저는 인공 게놈 단계에서 인공 생명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큰 과장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딸기 2008-01-25 16: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한참 걸릴거야' 생각했던 일들을 과학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잘도 해낸다는 거예요.
그것이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따져보니 이래저래 위험하더라, 라기보다는, 정서적으로 '공포심'을 불러오는 거지요.
내 이성이 따라잡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내 발표하니까요.
그렇게 보면, 저 내용은 과장일 수도 있고 과장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직 인공 게놈 단계인데 인공생명 얘기하는 것은 과장이다, 하면 그 말이 맞구요
사람들은 아직 게놈이란거 이해도 잘 못하는데 벌써 인공게놈?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의 인식보다 훨씬 빨리! 인공생명이 나올 것이란 점에선 과장이 아닌 거구요. ^^

hnine 님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공생명 창조... 무서운 일이 될까요?

라주미힌 2008-01-2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기술처럼, 기술발전에 대한 결과와 영향을 통제할 수 없지 않을까하는 무기력감이 공포를 생산하는 듯. 근데 꼭 기술이 발전한 만큼 이상의 부작용이 있었잖아요. 혜택도 있었지만, 환경파괴라던가 대량 인명피해 등등...
멀지 않았네요... 딸기님이나 제가 눈 감기 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되게 궁금하나이다. 죽기 전에 외계인 한번 봐야 하는데... ㅎㅎㅎ

딸기 2008-01-27 14:0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예요.
다른 기술발전, 예를 들면 자동차의 경우.
자동차라는 것이 생겨남으로써 교통사고 & 환경파괴가 심해졌고
그 대신 우리 삶의 속도가 빨라졌지요. 득일까요, 실일까요.
핵 기술의 경우.
이건 이득이라곤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