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4
헬린 옥슨버리 그림, 유진 트리비자스 글,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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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알았는데, 예전에 '계집 희'로 부르는 한자 姬가 컴퓨터에서 입력하려고 보니 '아가씨 희'로 바뀌어 있다. '놈 者'가 '사람 자'로 바뀐 것은 알았는데 '아가씨 희'는 아무래도 좀 웃기다. 이런 것도 일종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PC)' 차원의 변화라고 볼 수 있을텐데, 뭐 이런 건 환영이다.

그런데 동화 뒤집어보기 라든가, 그런 것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바로잡거나 계급적/성적/인종적 차별 등등 각종 차별적인 것들을 없애려는 노력은 찬성하는데, 가끔씩 좀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뭐냐면 동물에 대한 거다.
이솝이야기에서 바보같은 양들은 착한걸로 나오고 여우는 나쁜 걸로 나온다고, 그래서 '외양'에 따라 사람/사물을 평가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양들은 멍청하고 못됐는데 왜 그것들을 순하다고 하는거야. 길잃은 어린양은 바보같아서 길을 잃은 거라니깐...

암튼 양은 양이고, 돼지는 돼지고, 늑대는 늑대다. 이 책은 제목을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아기돼지 삼형제를 뒤바꿔서 '아기 늑대 세마리와 못된 돼지'로 만들었다. 동화책의 줄거리는 내가 보기엔 솔직히 좀 기묘하다. 철골 콘크리트 주택에 다이너마이트까지 등장하는 것은 '현대화' 수준이 아니라 완전 '오버'로 보이고, 마지막 부자연스런 화해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줄거리 차치하고, 돼지가 늑대를 괴롭힐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는 표독스런 독재자 돼지가 나오고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에는 시칠리아산(코르시카산이던가 -.-a) 식인 돼지가 나온다마는, 자연상태의 돼지가 늑대 세 마리한테 덤빌 수 있을까?
민담에 호랑이가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것은, 호랑이가 육식동물이고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마음이 나쁘거나 못생겨서가 아니다. 토끼가 나타나서 '토끼풀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다 자연계의 모습을 반영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러니까 호랑이 조심해라, 하는 일종의 집단적 지혜가 쌓이고 쌓여서 교훈들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걸 '뒤집어보자'고 하니깐 이 돼지와 늑대 이야기처럼 어색한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 애는 겁이 많고 걱정도 많다. 사자 호랑이 악어 걱정에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기사슴 밤비' 보고 난 뒤부터는 독수리 걱정까지 생겼다. 엄마 사자가 나타나면 어떡해요, 아냐 사자는 서울에 안 살아, 그럼 우리가 서울 밖으로 나갈 땐 어떡해요, 이렇게 걱정이 꼬리를 물고, 무서운 동물들 그림자만 나와도 무서워한다(그러면서 고기먹는건 또 왜그렇게 좋아하는지)
그런데 "아냐 아냐 사자는 사실 착해, 안 잡아먹어"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다. "사자가 사람이나 다른 짐승을 잡아먹긴 하지만, 사람들이 사자 더 많이 죽였어!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그 쪽이 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까. 요새 뒤집어보는 동화책들이 많은데 이 책 읽으면서 '뒤집으려면 잘 뒤집어야지.. 부침개 타겠다' 이런 생각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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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2-0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연스러운 것보다는 관습적인 걸 택하는 편이라. 무지 공감이에요.
예전에 장애우라는 표현이 그랬어요.
그 필요 이상의 호의적인 단어는 사람을 참 불편하게 했거든요.
써놓고 나니, 이렇게 툭 뱉을 말은 아니다 싶지만.
큰 맥락에서는 그렇다구요.

딸기 2007-02-0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실은 저도, 장애인 비장애인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에는 1000% 공감합니다만, '장애우'라는 표현이 바로 그렇게 오버스런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답니다.

릴케 현상 2007-02-0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우라는 표현은 실제로 금기어로 채택(?)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뒤집으려면 잘 뒤집자는 말씀은 공감이에요^^

미설 2007-02-0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묘한 이야기로군요. 부침개 타겠다.ㅎㅎㅎ
그나저나 따님은 독수리 걱정까지 하고 있다니... 알도보다 심하군요.^^

마노아 2007-02-03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명리뷰예욧! 맛깔스런 평가에 비유였습니다. ^^

이네파벨 2007-02-0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구절 잼있는 글이예요~
아이가 독수리까지 무서워한다는 얘기에 저희 딸내미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어느 책에서 북아메리카에 사는 어떤 독수리는 작은 ㅇㅏ이들도 잡아먹는다는 얘기를 읽었는지...저번 여름방학때 유치원 친구가 미국갔다니까 폴짝 뛰면서
"큰일났다~ **가 독수리한테 잡아먹히면 어쩌지?" 하더군요...^0^
애들이란...^^

반딧불,, 2007-02-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에 잘 짚어내십니다. 꼭 그말을 하고 싶었는데 표현하질 못했거덩요.

딸기 2007-02-0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방네 엄마들이 모이셨는데, 산책님과 마노아님도 살짝 끼셨군요 ^^
미설님, 이네파벨님, 애들은 확실히 그런게 무서운가봐요.
(실은 저도 귀신 이런 거 아직도 무서워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