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는 '나를 만든 팔할은 바람이었다'고 했는데, 저의 경우는 아마도 어릴적 갖고 있었던 두 종류의 동화집들이 나를 만든 팔할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벌써 몇차례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hnine집 서재에 들렀다가 계몽사 동화집 이야기를 읽었는데, 저는 이 책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거든요(저는 조금 친해진 이들에게는 거의 100% 이 책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의 1, 2, 3권 제목을 말씀드렸더니 hnine님과 네무코님이 기억력 좋다고 칭찬해주셨어요(히히). 이야기 나온 김에 댓글 길게 달다가 아예 포스팅으로 넘어왔습니다. 추억 속 이야기, 조금 올려볼까 해서요.


실은 저는 계몽사 전집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한권 한권(비록 순서는 못 외우더라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47, 혹은 48권 정도 됐었던 것 같은데, 한국현대동화집에 나왔던 마해송 선생의 '바위나리와 아기별'이라든가, 민들레 홀씨를 먹고 사람이 된 인어 이야기, '언네'(인형) 만들어달라고 조르던 가난한 아이 이야기...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동화였지요.


혜란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요, 엄마는 폐병으로 자리에 누워있고 그렇게 모녀가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친구들은 다 엄마가 만들어준 언네를 갖고 노는데 혜란이만 없어요. "넌 네 언네 갖고 놀렴." 친구들에게 설움받던 혜란이는 몸져누운 엄마 곁에 가서 바늘을 들고 팔뚝을 찌르려고 합니다.

놀란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주사(바늘)맞고 빨리 나아 언네 만들어달라고 그런다"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각혈을 하면서 엄마는 언네를 만들어주고, 그걸 들고 혜란이는 밖으로 나가요. 그날따라 친구가 안 보이네요. "군자야, 놀자~" 혜란이가 새 언네를 들고 친구를 부르는데 대답이 없으니 계속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동안 방안에선 엄마가 밭은 기침을 하면서 혜란아, 혜란아, 하는데 골목길 아이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방안 엄마 목소리는 점점 잦아듭니다.

생각하면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요. 친구 이름이 '군자'였던 것, 인형을 옛스럽게 언네라 썼던 것은 생생한데 아이 이름이 혜란이였는지 혹은 군자 말고 딴 친구 이름이 혜란이였는지는 조금 혼란스럽네요. 얼마나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였을까요.


홀씨 먹고 사람이 된 인어 이야기는, 조금 독특해서 우리나라 동화 같지가 않았었어요.

어떤 남자가 바닷가에서 인어를 만나요. 인어는, 자기를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남자는 아주 담담하게, 어떤 마법도 격정도 없이, 자기 사는 곳으로 돌아와 이꽃 저꽃 홀씨를 섞어 인어에게 가져다준답니다. 그걸 먹고 인어는 사람이 되어 사내의 각시가 되었어요.

그런데 항상 신부의 마음 속엔 바다가 있었답니다. 항상 숨기고 있었고, 남자는 이제 아내가 바다를 잊었나보다 했지요.

어느날 양장점 앞을 지나쳤는데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사라져버립니다. 남자는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아내가 보았다는 양장점의 '짙은 하늘빛 옷감'이 실은 바다빛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아내는 가버립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어린 아들이 있어요. 남자는 아이에게 바다빛 같은 것은 보여주지도 않고,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모두 피해가면서 아들을 키웁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바로 그 '짙은 하늘빛'으로 푸른 바다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헛된 노력이었음을 깨닫고 아이와 바닷가 여행을 떠납니다. 내용이 좀 휑하니 이상하지요?

글이 길으니깐, 다음 글로 이어서 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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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7-01-2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좀 담아갈께요^^

딸기 2007-01-2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