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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이 책은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니 이 책은 기니노 나쓰오가 99년도에 나오키상을 받은 작품이기에 무조건 읽어야만 한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기리노 나쓰오식 이야기가 펼쳐진다. 끝점이 없이 계속되는 인간 내면의 세계. 이야기를 쫒아가다보면 곧 도착할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그 것은 새로운 시작이고 또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또 다른 출발이 된다.
18살 무작정 고향을 등지고 막차에 오르는 카쓰미. 그녀는 부모에게 편지한장은 커녕 그녀의 모든 흔적조차도 지우고 홀연히 부모를 떠났다. 그리고 어렵게 그녀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 둘을 낳고 산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가출했던 것 처럼 그리 순탄치많은 않다. 자신과 남편의 거래처 남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더 나아가 그녀와 불륜의 상대는 각각 자신의 가족과 함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둘 만의 비밀스런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별장에서 남 모르는 둘만의 만남을 갖은 날 아침 주인공 카쓰미의 큰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왜? 누가? 어떻게?
초반부는 모든 촛점이 사라진 아이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후반부로 달려 갈수록 이야기는 카쓰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과 카쓰미의 내면-이면-으로 옮겨간다. 딸아이의 실종으로부터 4년. TV 프로에 나간 이후에 그를 돕겠다는 전화가 온다. 전직 형사. 하지만 그 전직형사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4년이란 시간은 주인공 카쓰미와 주변 인물들의 많은 것을 바꿔놓아 버렸다. 이혼, 자살, 파멸 등등.
카쓰미와 전직형사는 다시한번 4년전으로 돌아가 당시의 인물들을 만난다. 당시의 인물들이 전해주는 자신만의 감정. 모두가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 시선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러한 인물들의 세세한 부분을 잘 파헤치고 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런 것을 즐기는 듯 하다. 이제 이야기는 아이의 실종을 바탕으로 잃었던 자아와 과거를 찾아나서는 카쓰미로 옮겨간다. 20여년만에 고향을 찾아나선다. 과연 그녀의 부모는 그대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딸을 찾을 수 있을까?
부드러운 볼은 적은 분량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읽히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속도를 늦추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자연 속도를 늦추게 되고, 범인이 누굴일가 찾아내기 위해 꼼꼼하게 읽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장을 덮으면 꽉 막혀버린다.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부드러운 볼]이다. 작가는 결코 답을 주지 않는다. 희망조차도 주지 않는다. 아마도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면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더러운 세상이라고. 짜증나는 작가라고. 하지만 그러한 점이 기리노 나쓰오의 매력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이 기다리고 있어 기분이 좋다. 내용은 결코 기분 좋지 않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