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 Beyond the yea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정말 사무침에 사로잡혀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어떤 영화도 날 이렇게 사무치게 만들었던 적은 없던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을 4년 만에 필름으로 다시 보면서 느낀 감정은, 이제야 오해에서 벗어나 그의 영화에 겨우 한 발 들어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들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100번 째 영화를 이청준 작가의 소설 『남도사람』의 세 번째 연작인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로 찍는다고 했을 때, 옛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고 싶어 하는 자화자찬으로 생각했다. <천년학>은 마치, 그의 최고 흥행작이자 그 당시 한국 영화사의 관객 기록을 갱신한 <서편제>의 두 번째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100번 째 영화라는 엄청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너무 쉽게 무시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져가는 줄 알았다.  

한 사내가 선학동의 선술집에 찾아든다. 그의 이름은 동호(조재현).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 유봉(임진택)과 누이 송화(오정해)와 함께 소리 공부를 하면서 이곳 선학동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그는 누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피가 섞이지 않은 유사 가족들이다. 동호는 송화를 사랑하고, 아비 유봉을 의심한다. 지독한 가난을 이기지 못한 동호는 집을 나와 유랑극단에 들어가 밥을 번다. 그 안에서 배우 단심(오승은)과 결혼을 하지만, 동호의 송화에 대한 집착으로 파국을 맞는다. 동호는 이곳 선술집에서 그 옛날 송화에게 연정을 품었던 용택(류승룡)에게 송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아버지 유봉이 이곳에 암장됐으며, 아버지의 북을 받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잘게 잘린 쇼트로 연결되어 있다. 굳이 자를 필요가 없는 부분을 임권택 감독은 기어이 잘게 잘라서 연결했다. 그럼으로써 받아들이는 감정은 왠지 영화가 매번 끊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끊어지는 느낌의 연속 속에서 송화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들어와 현실과 과거를 잇댄다. 끊어진 현실을 잇는 과거의 기억. 동호는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가 송화에게 보내는 집착은 사랑, 애틋함, 미안함 등의 감정이 오롯이 섞여 있다. 그는 송화를 찾아다니지만, 그녀를 만나도 그냥 떠나보낸다. 그에게 송화는 어떤 간직해야할 다짐과도 같은 것이다.   

이 영화를 동호-단심-송화 혹은 유봉/백사-송화-동호의 멜로로 볼 수도 있지만(어떻게 보아도 정말 가슴 시린 냉정한 이야기다), 가장 심금을 울렸던 장면은 (노인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이었다. 송화를 소실로 들였던 백사 노인은 친구들과 함께 송화의 노래 소리를 듣고 벚꽃이 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죽음을 준비한다. "백사는 이 절경을 놔두고 아쉬워서 어떻게 가려나?" 그리고 맞이하는, 탄성이 흘러나오는 장관의 백사의 죽음. 그리고 우리는 유봉의 죽음을 듣는다. 유봉의 죽음은 용택의 부인에게서 대화로만 전해진다. "그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 묏자리를 보러 이곳에 왔었지요. 아니, 자식도 없는 분이 뭐 그리 명당자리를 고집하시냐고 물으니까 그 분 말씀이, 그 자리는 후대에 명창이 나올 자리라고 하데요." 자기 자신은 명창이 못됐으니, 자신은 이 예술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 내가 아닌 다른 후손들에서 꼭 명창이 나오길 바라는, 저 예술가의 애절한 바람! 그 자신이 이미 소리를 하면, 선학동에 학이 날아드는 명창인데도, 그는 자만심을 느끼지 않고 언제나 예술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난 이 장면에서 임권택 감독의 모습을 본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 째 영화 <천년학>은 자신의 자화자찬이 아닌,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한 동시에 자신을 뛰어 넘는 명창(명감독!)이 되라는 감독의 애절한 유서와도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혹은 당연히!) <천년학>은 그의 유작이 되질 않았다. 100번째 영화를 만든 이후, 그는 데뷔작을 찍는 마음으로 <달빛 길어 올리기>란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그가 디지털로 작업한 첫 번째 영화다. 그는 언제나 과거에 머무는 것을 경멸하는 감독이다. 유봉의 북과 송화의 소리가 신작로로 뒤덮인 선학동을 다시 옛 모습으로 바꾸고 학을 돌아오게 했듯이, 그의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라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선경(仙境)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덧붙임: 

2010년 8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 전작展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KOFA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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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이 영화 본 기억이 납니다.
영상미도 좋고 애잔한 영화였어요.
전 몇편 보진 않았지만, 임권택 감독이 항상 좋은 영화만 만들었던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극과극을 달렸다는 말도 있고.
(아, 토멕님 앞에선 아는 체 하면 하면 안 돼요.ㅋ)
그런데 그 사람처럼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작가도 없다고 생각해요.^^

Seong 2010-08-18 08:40   좋아요 0 | URL
감독님 스스로 말씀하시길, 6, 70년대 만들었던 영화들은 명백히 습작(혹은 쓰레기)였다라고 말씀하실만큼, 당시 영화들은 80년대 이후 걸작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하더군요. 하지만, <만다라>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닌 것처럼 그 시기의 영화들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새마을 영화 <아내들의 행진>, <길소뜸>, <법창을 울린 옥이>를 보았는데, 정말 굉장하더군요. 요즘 말로 쿨하다 못해 콜드했어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2010-08-17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하는 사람들이 그런다면서요~ 다음 영화를 위한 밑천만 생기면 성공한 영화라구요^^;

Seong 2010-08-18 08:43   좋아요 0 | URL
그 밑천은 물적 토대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감독 자신이 비전을 갖느냐 못갖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가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