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츠 오브 컨트롤 - The Limits of Contro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사내(이삭 드 번콜)가 공항에서 누군가(알렉스 데스카스, 장-프랑수아 스테브냉)의 지령을 받아 마드리드에 잠입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그는 접선책들(루이스 토사, 파즈 데 라 후에르타, 틸다 스윈튼, 쿠도 유키, 존 허트,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히암 압바스)의 연결로 목표물(빌 머레이)에 접근, 그를 제거합니다. 임무를 수행한 그는 옷을 갈아입고 공항을 떠납니다.  

시놉시스를 읽으면 장르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짐 자무쉬입니다. 그는 장르의 틀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고독한 킬러의 여정"이라는 멋진 문구 때문에 스타일리쉬한 장르 영화를 생각한 분들이라면,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짐 자무쉬 감독의 <리미츠 오브 콘트롤(The Limits of Control)>은 예술에 관한 짧은 우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이름이 없고 하나의 기호로써 등장합니다. 영화는 그의 단편 모음집 <커피와 담배>처럼 진한 에스프레소 두 잔을 앞에 두고 매 번 다른 인물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한 후 퇴장하는 순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행동은 메시지에 가까우며 영화에 등장한 모든 것은 대부분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주인공 킬러(엔드 크레디트에 '외로운 사내'로 표기된)는 거의 대사가 없습니다. 그의 대사는 "예""아니오" 정도일 뿐. 대사뿐 아니라 표정도 그대로입니다. 그에게는 희로애락이 없는 듯 보입니다. 영화의 초반, 의뢰인은 목표물에 접근할 때 "상상력을 써서 창의적으로" 접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말을 쓰지만, 킬러는 통역이 없어도 그의 진심을 이해합니다. 예술의 세계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진심의 세계니까요. 

그가 만나는 접선책들은 예술작품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거나 혹은 그 자체입니다. 바이올린을 든 사내와 누드 여인은 회화에서 나왔습니다. 백발의 여인은 영화에서, 기타를 든 사내는 음악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모두들 킬러를 존중합니다. 그들의 대화중에 공식처럼 들어가는 "스페인어 할 줄 알아요?""혹시(By any chance)..."로 시작하는 질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어법이지요. 킬러가 그들의 말을 모두 이해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그 자체가 기호이자 암호인 인물들의 말과 쪽지를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삼켜버립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적 탐욕.  

반면 그가 제거하려는 미국인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고, 상스런 말을 사용합니다. 그는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과 과학이 쓸모없고 위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요. 하지만 통제를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 넘는 게 예술입니다. 그리고 짐 자무쉬는 통제를 벗어나고,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은 바로 창작자의 '상상력'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으로 킬러가 미국인에게 접근해서 임무를 완수했듯이 지금 예술과 과학을 둘러 싼 위기는 바로 이 상상력을 통해 돌파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킬러는 마드리드에 가서 텅 비어 있는 듯한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그림을 감상합니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텅 빈 화폭은 그림을 감상하는 킬러의,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상상력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덧붙임:  

『씨네 21』시사회 당첨으로 8월 10일 20시 30분 스폰지 하우스 광화문에서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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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8-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는, 보고나서 다음날 또 다음날도 자꾸 생각나는 게 좋은 영화인 거 같아요. :) 이 영화도 그랬구.

Seong 2010-08-12 09:24   좋아요 0 | URL
의외로 흠뻑 젖었던 영화였어요. 이렇게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영화였습니다. :D

stella.K 2010-08-1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개봉 안했군요.
짐 자무시 영화는 참 독특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천국 보다 낮선>보고, 영화를 이렇게도 만드는구나 감탄했는데 말이죠.

Seong 2010-08-12 23:23   좋아요 0 | URL
오늘 개봉했습니다. :)
저도 <천국보다 낯선>을 제일 먼저 봤어요. 그때가 1995년 11월. 동숭아트센터였죠. 수능을 마치고 제일 먼저 봤던 영화. 앗! 이러면 연식이~ :D
전 이 영화를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먼저 귀로 들었어요. 예상했던 것 이상의 영화여서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