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 Phantom of the Oper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925년 작, <오페라의 유령>은 흑백영화이자 무성영화입니다. 영화는 발명품으로 시작했고, 그 자신이 수많은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은 (지금 영화의 기술력과 비교해서) 촌스러움과 지루함을 감안해야 합니다. 더구나 무성영화는 대사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와 표정으로 극을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지요. 관객은 그저 진득하니 눈으로만 영화를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감독은 잔재주를 피울 수 없지요. 감독은 우직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음모, 공포, 서스펜스, 사랑 등 거의 모든 장르가 담겨있습니다. 소설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잘 직조하지 못한 반면, 영화는 이 이야기를 굉장한 볼거리를 담아 진행합니다. 늘어졌던 원작의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진 것 또한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실제로 유령을 봤다는 직원이나 단원들도 상당수 존재하지요. 하지만 새로운 극장주는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돈나 카를로타는 이상한 편지를 받습니다. 주연 자리를 크리스틴 다에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이죠. 카를로타는 이 편지를 무시하지만, 그 저주는 현실이 되고 극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결국 크리스틴 다에가 주인공을 차지하고 화려한 데뷔를 합니다. 실은 오페라의 유령이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크리스틴을 좋아하는 라울 자작 때문에 크리스틴은 갈등을 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오페라의 유령을 속이고 라울에게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안 유령은 엄청난 복수를 준비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엄청난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거대한 오페라 극장의 위용과 그 안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무대는 스펙터클(spectacle)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막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수 있는 샹들리에도 말 할 것 없고, 극장 지하의 유령의 거처 또한 화려한 볼거리를 수놓습니다. 하지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오페라의 유령, 에릭의 모습입니다. 소설에서 묘사한 해골에 가까운 모습의 끔찍한 모습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백미입니다. 물론 어느 판본의 영화를 보더라도 아름다운 크리스틴 다에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영화에서는 매리 펠빈(Mary Philbin)이 크리스틴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세월이 흘러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새겼습니다.  









제가 본 판본은 오리지널 원본이 아니라, 1930년 사운드를 입힌 인터내셔널 판본입니다. 필름엔 여러 색과 필터가 들어가 있으며, 특히 중간에 가면무도회 장면에서는 일부 칼라로도 나옵니다. 하지만 가장 특별했던 것은 새로 만들어진 음악이었습니다. 이 음악은 <오페라의 유령> 영상에 맞춰 만들어졌는데,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던지 무성영화가 아닌 유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성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문법과 지금 영화의 문법이 워낙에 다르기 때문에 ‘보는 방법’을 따로 배우거나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섣부르게 다가가면 "무성영화는 지루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무식하게도 그냥 부딪힌 경우였습니다. 그리피스 감독의 <국가의 탄생>이 첫 무성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지요. 고정된 카메라와 과장된 연기와 드문드문 등장하는 자막, 게다가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저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왜 이 영화가 명예와 불명예로 점철된 영화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무성영화를 접하는 게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왜 이 영화들이 고전 대접을 받는지 몸소 느낄 수 있게 되었지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무성영화를 처음 접하고 싶지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전 <오페라의 유령>으로 시작하시라고 감히 권해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라는 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맛볼 수 있는 전체요리로서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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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영화죠? 저도 최근에 봤는데, 압도되었습니다.
43년도 Claude Rains 주연의 영화도 꽤 좋았는데,
이 무성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비교되더군요.^^
완벽하다고 해도 될 영화였습니다.
저도 무성영화를 좋아합니다. 특히 버스터 키튼의 희극영화요.

Tomek 2010-07-19 10:50   좋아요 0 | URL
정말 굉장한 영화죠! 어쩜 이렇게 놀라울 수 있는지!
1943년 작은 만듦새는 좀 나아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실망인 작품이었어요. 유령의 탄생과정 따위는 정말로 궁금하지 않은데! ㅠㅠ

stella.K 2010-07-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건 무성이 아닌데 이게 몇번 만들어졌나 봅니다.
너무 오래된 영화라 괜찮을까 싶은데 안 그런가 봅니다. 흠...

Tomek 2010-07-19 10:53   좋아요 0 | URL
1925년, 1943년, 1964년, 1989년, 1998년, 200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 1964, 1998년 작품 빼고 다 본 것 같습니다.
영화 재미있으니 꼭 한 번 보셔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