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 Maborosi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幻の光)>은 이야기를 대신 일상의 순간을 다룹니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면, 아마도 (막장극까지는 아니더라도) TV 아침드라마에서 다루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야기의 뼈대만을 남겨놓은 채, 남겨진 사람들의 결을 따라갑니다.  

어린 시절 유미코는 할머니의 가출을 막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어린 유미코와 작별을 합니다.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유미코는 자신의 실수로 할머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삽니다. 시간이 흘러 유미코(에스미 마키코)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왔던 이쿠오(아사노 타다노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절을 보내는 유미코와 이쿠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이쿠오가 자살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유미코는 중매로 오사카에 사는 타미오(나이토 다카시)와 결혼을 합니다. 유미코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만, 간간히 떠오르는 남편의 기억과 자살의 의문으로 괴로워합니다.   

 

아무런 내색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져올까요? 자살은 의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부재는 수많은 질문을 가져옵니다. "도대체 왜 죽었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그래서 죽었을까?", "왜 아무런 말 내색도 없이 갑작스레 죽음을 택했을까?" 남편을 잃고 유미코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입니다. 유미코는 남편의 부재를 견뎌냄과 동시에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까지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경험을 한다면, 유미코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유미코의 기막힌 인생유전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런 기막힌 삶의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환상의 빛>은 담담한 영화입니다. 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유미코의 고통을 굉장히 강렬하게 찍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유미코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트라우마 같이 각인된 할머니와의 작별과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에도 유미코는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어찌됐건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죠. 때론 즐겁고 행복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상의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자살한 남편의 기억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기억과 후회, 번민, 미련, 의문 등이 점철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갑작스레 휘청거리기도 합니다. <환상의 빛>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결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 또한 평범한 일상을 지내면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통스런 기억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끝까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 물론 해답으로 볼 수 있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 전남편의 알 수 없는 자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유미코에게 현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바다에 나가 있으면 저 멀리 지평선 너머 반짝 반짝 빛나는, 어떤 빛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대. (전 남편도) 아마도 그 빛이 불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말은 남편의 죽음을 설명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은 의문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사 대부분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은 희미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라는 해답'을 추구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리는 그토록 할리우드 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 영화는 모든 것이 명쾌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정확히 나누어져 있고, 선과 악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되는 할리우드의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고 나쁜 영화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태도(attitude)의 영화는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요구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주입식 영화와 주체적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환상의 빛>은 주체적인 영화입니다.  

 

 

*덧붙임: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 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과 김연수 작가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생각을 조금 옮겨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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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1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이벤트 참여하고 싶었는데, 알라딘도 예스24도 다 안 됐어요.
아까워라...ㅜ
이동진 씨는 이 시간에 뭐했나요?

Tomek 2010-07-14 19:10   좋아요 0 | URL
영화 끝나고 대담시간이 있었어요. <환상의 빛> 영화와 원작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과의 인연, 관객과의 질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전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요... :)

2010-07-14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7-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다 오해하는거죠~ 자기만의 방식으로다가~

Tomek 2010-07-14 19:15   좋아요 0 | URL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herenow 2010-07-1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이동진님과의 만남도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덧붙인 김연수님의 글귀도 좋았습니다.

Tomek 2010-07-15 08: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소설도 좋다고하니 조만간 읽어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