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종료] 6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어느덧 2010년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5기에 이어서 6기 신간 평가단에 참여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나름 행운이었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5기 때는 (힘겨운) 직장 생활과 병행해 책을 허겁지겁 읽어 아쉬움이 많았던지라, 6기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찬찬히 읽을 작정을 했었습니다. 시간이 그만큼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꽉 짜인 일상에서 헐거운 일상으로 자리 이동 중,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와, 근 한 달 넘게 책을 읽지 않고 지냈습니다. 서재도 거의 방치하고 지내는 수준이었고, 짧은 기간 (나름) 많이 사귀었던 알라디너 분들과도 소원해졌지요. 5월 중순 부터는 조금 나아졌지만, 그 기간 동안은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활동도 하지 않은 무책임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 5기와 6기 신간평가단을 지원할 때 어떤 마음으로 지원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서평단을 지원하는 첫 번째 이유는 꾸준히 서평을 올려서 나태한 제 자신을 다잡는 기회로 삼고 싶어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제 입맛에만 맞는 편식한 독서에서 벗어나보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좋은 신간을 발견하면, 알라디너들께 소개해 주고 싶은, 발견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에세이, 과학, 잠언 등으로 묶인 죽음에 관한 성찰입니다. 이 책은 어느 카테고리에 분류해야할지 망설임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쁘게 보자면, 죽음이란 주제를 진중하게 풀지 못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끌어다 쓴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죽음에 대해 여러 담론을 끌고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긍정적인 모습에 한 표 던집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야기의 톤이 시시때때로 바뀌어 당황스러웠지만, 다 읽고 나니, 죽음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글쓰기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필연적인 이야기니까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는 『십자군 이야기』로 유명(혹은 오명)한 김태권 작가의 학습만화입니다. 아직 서양의 중세 이야기를 다 풀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발간한 이 '동아시아' 프로젝트를 처음 접했을 때는 반가움보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컸습니다. 도대체 언제 끝낼 것인가? "이번만큼은 믿어 달라"는 작가의 말도 있으니, 한 번 더 믿어봐야겠지요.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는 『사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렸지만, 우리가 익숙해하는, 소위 '설(說)'에 반하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사마천이 역사적 사실과 소문을 한데 담아, 독자가 취사선택할 수 있게 했다면, 김태권 작가는 소문은 덜어내고 오직 역사적 사실만을 유추하며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딱딱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역사와 인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이번에는 꼭 완간하시기 바랍니다.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은 일만하고 놀 줄 모르는, 노는 것은 음주와 쇼핑 정도 밖에 모르는 불쌍한 우리들을 위한 책입니다. 세상은 이만큼 진화했는데, 아직도 6~70년대 제조업의 기적을 바라는 높으신 분들은 무조건 야근에 책상에 앉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죠. 이 책은 당연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노는 것은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일을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놀이의 반대말은 일이 아니라 우울함"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괴롭게 직장에 메여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우리는 매 순간 즐거워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는 자기 계발서입니다. 다른 계발서와 다른 점이라면, 『사기』에서 이야기를 끌어온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는 이야기의 교훈을 도식적으로 분류한 것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지엽적으로 푼 것에 대한 반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에 수록된 '이야기'의 재미는 굉장했습니다. '쉽게 풀어 쓴 사기'라 해도 좋을 만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의 저자 김소영 씨는 교수이자 평론가이고 영화감독입니다. 그녀는 정성일, 허문영 씨와 함께 영화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풀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씨네 21>에는 이들의 글이 정기적으로 실렸지요. 책에서 그녀가 이야기하는 한국 영화의 절반가량은 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이라, 텍스트로만 만나야 하기에 아쉬움이 큰 편이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경관은 한 번쯤 따라 갈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한 가이드가 아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소개는 영화, 특히 '한국' 영화는 시공간을 어떻게 경유하고 견뎌왔는지에 대한 사색을 전해줍니다.  

『디오니소스의 철학』은 술과 철학이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면서도 의외로 잘 어울리는 두 주제를 잘 버무렸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습니다. 적은 분량에 고대부터 근대까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술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철학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취한 느낌이 든 것처럼 밀려드는 정보와 사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도만큼은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영단어 인문학 산책』은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단어의 유래를 들어 서양사의 역사와 문화, 사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영단어 외우기 비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시험에 나오는 영단어를 설명하지도 않지요. 이택광 교수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영어를 시험으로 바라보지 않고, 문화로 대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이야기하는 영어 단어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언어는 문화’라는 기본 명제를 가장 잘 설명하고, 그만큼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는 다분히 전투적입니다. 2010년 한국에서 불온하게 소비되는 '좌파'라는 단어와 순수 학문으로의 기능을 잃은 '인문학'을 접붙인 것만 보더라도 이 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망선고를 받은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이택광 교수는 지금 2010년 인문학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를,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틀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역시 읽는데 만만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읽기는 했는데, 제대로 읽었는지 회의하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다 죽었다고 생각한 인문학의 효용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각기 언급한 철학자들의 먼지 묻은 서적을 다시 꺼내어 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중요한 책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은 회화와 음악을 인문학적인 접근이 아닌, 저자 개인의 감상으로 접근한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부분으로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조금 과하게 풀어 놓아서 그 거부감이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화와 미술은 창조자의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결과물입니다. 저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드러내며 회화와 음악을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접근 방법은 참신합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강연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멋대로 부제를 단다면, '이명박 프리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리영희 선생님, 죄송합니다), MB 정권 시대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부터, 토건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대통령의 '삽질 마인드'까지 지금 대한민국에 드러나 있는 모든 문제점을 다루었습니다. 때로는 실소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분노와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을 평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그냥 실천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그것도 거창한 실천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이야기합니다. 민주주의란 그렇게, 작지만, 개인이 움직여 큰 물결을 만들어 내는 것임을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우울의 심리학』은 우울증에 관해 이야기입니다. 우울증이란 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질병인지를 이야기하고, 그 무시무시한 우울증에 벗어나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우울증이라는 게 워낙에 개인별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방법이 통할까 궁금해 했었는데, 저자는 일반적인 치료법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울증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위로와도 같은 책입니다. 물론 저자가 겪은 우울증의 진폭은 좀 큰 편이지만, 그녀의 위로는 어설픈 심리 치료보다 훨씬 위안이 됩니다.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는 비만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책입니다. 비만에 대한 너무 일반적인 접근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이 책은 비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한, 착한 성격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착한 그녀들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녀들의 삶은 거의 성직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고나면, 자신을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한 뒤 고스란히 남는 스트레스. 부족한 시간과 스트레스는 먹을 것으로 귀결됩니다. 착한 여자들이 살이 찌는 이유는 그녀들이 (적당히) 이기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남을 위한 삶은 그만 살고,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상에는 음식 보다 더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7기에도 지원하고 싶었지만, 7월 말에 있을 이사 때문에 지원을 못했습니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8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신간평가단의 책 읽기는 항상 긴장과 비판과 즐거움이 수반되니까요. 그동안 좋은 책 보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롱펠로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불러온 것을 보니 내가 정말로 아픈가보구나.'

전 여동생하고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서로 쌓기만 하고 터뜨리지 않아 결국엔 터져버리고 말았지요. 우리는 한동안 거의 말을 지내지 않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쓰인 명사들이 임종 직전에 남긴 말들을 읽으면서, 유난히 이 글귀에 마음이 아렸던 것은 동생에 대한 아마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틋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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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7-0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짝!!!!!
신간평가단에 참여하면서 즐거웠던 일들 중 하나는 Tomek님 리뷰 읽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끝내지 못한 리뷰가 2권이나 있어서(엉~엉~) 빨리 끝내야...

Tomek 2010-07-09 13:0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잘 썼어야 했는데 성격대로 너무 설렁설렁해서 아쉬움이 도네요...
굿바이님은 7기 지원하셨나요?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D

2010-07-0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0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신간평가단 2010-07-1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많으셨습니다. Tomek님. Tomek님 덕분에 든든했답니다. ^-^
설렁설렁이라뇨, 무엇보다 정성스러운 페이퍼, 잘 읽었고, 고맙습니다.

저 위에 굿바이님은 7기 지원을 하지 않으셨답니다. 참 아쉬운 일이죠 ㅜ_ㅜ
그리고 Tomek님의 베스트 다섯권이, 저는 진심으로 궁금하니다. 하하.
이사 잘 하시고요. ^-^ 그간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페이퍼 잘 읽고 갑니다.

Tomek 2010-07-10 07:1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지나고나니 자꾸 아쉬움만 남아요... 좀 잘 할걸...

전 모든 책이 베스트여서 다섯 권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5기 때도 그랬고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책들에게 미안해서... :D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7기 때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