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주주의란 단어는 이미 시효가 다 된 단어라 생각했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가 낡은 사상이 되었듯이, 87년에 선배들이 직선제를 일구었을 때, 아니 조금 더 써서 93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미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라 생각했었다. 독재의 반대로써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룬다는 것이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혹은 나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의정치로써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단일화에 실패한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당합당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조로 정권을 창출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조 없이 정권을 창출했다. 민주화 인사들이 대통령이 된 과정은 마치 우리들의 정치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했을 때, 나는 (혹은 우리는)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었다. 국민의 힘으로 이렇게 흐름을 만든 민주화의 결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나는 (혹은 우리는) 수수방관 했었다. 그에게 모든 짐을 지우게 하고, 훈수를 두고 때로는 쌍욕도 하면서 방관했었다. 그게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 생각했었다. 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멋진 제도는 이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잘 작동할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2010년에 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시급하고 당면한 문제로 보인다.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선거를 통한 대의정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인데, 지난 10년이 마치 일장춘몽인 것처럼 민주화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가장 극명한 예로 북한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하나회 척결과 금융 실명제를 제하고) IMF사태가 있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이 땅의 이데올로기가 반공이 아니라 자본이라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물론 그 깨달음은 너무 많은 국민들을 힘들게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종전상태가 아닌 휴전중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실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행동하는 지성들인 김상봉, 김종철, 김찬호, 도정일, 박명림, 박원순, 오연호, 우석훈, 정희진, 진중권, 한홍구, 홍성욱 저자들의 강연을 책으로 풀어 쓴 것이다. 이들 강연은 지금 이명박 정부를 진단하면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끌어낸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서 짧은 시간에 세워졌는지를 설명하고(한홍구), 국가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며(박명림),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의 구성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정희진), 토건사업과 강남과 아파트 평수에 따른 진보성과 보수성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기도 한다(우석훈). 점점 더 지옥이 되어가는 학벌경쟁의 폐해와(김상봉), 생활속에 깊숙이 개입한 헌법의 중요성(김종철), 인터넷 개인 미디어로 정보의 독점을 끌어내리는 황홀한 현실(오연호),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토건에 매달려있는 이 대통령의 내면에 대한 성찰(진중권)도 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단 한 명의 대통령으로 이런 다양한 주제를, 그것도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린 민주주의를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의 무관심이 지금 이 정부를 만들었다. 저자들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만이 이 불안한 제도를 보완해주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 시대를 비판만하지 않고, 실천 방안까지 제안하고 있다. 그 실천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를 들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고 아기자기한 실천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엄숙하고 처절한 투쟁만을 접해왔었나. 저자들은 생활 속의 실천, 시민들의 연대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 것이라 얘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변화다.  

지금 이 시기는 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렇게 후안무치한 정책을 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만큼 이 세상에 대해서, 민주주의라는 원론적인 문제에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우리를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회의하고 스스로 깨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계몽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병맛이니 글도 병맛이다. 한심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0-06-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말 백 번 동감합니다.
요즘 현정권의 실책들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제, 특히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제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직 대통령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데, 역설적이고 자조적이지만, 저는 현직 대통령이 지금 이 시대의 대표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소통을 원하지도 않고, 밀어부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 되는 일이면 뭐든 서슴치 않고, 편법으로라도 이기면 된다고 믿고... 이 시대의 반면교사로 이만한 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시켜놓으면 더 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엉엉

Tomek 2010-06-12 07:38   좋아요 0 | URL
리트머스 시험지 같지 않을까요. 어쨌든 1000여일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좀 절망적이지만요.
민주주의의 굴레라 해야할지. 정치에 관심 없이 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요순시대는 정말 신화속의 국가인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