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1주

   초서와 엘리엇 말고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매년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사와 관련된 사람들이나 극장주들이겠지요). 전통적으로 4월은 비수기거든요. 어두컴컴한 영화관보다는 겨울을 이겨낸 따듯한 봄기운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통 4월엔 블록버스터의 횡포로 개봉을 하지 못했던 내실있는 작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요즘 개봉작의 싸이클을 보면 비수기는 없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여름과 겨울에만 찾아오던 대작들이 늘상 찾아오는 셈이지요. 이건 마치 하우스 재배 과일을 먹는 것 같은 떨떠름함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번주 개봉작 중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타이탄(The Clash of the Titans)>입니다. <터미네이터 4>와 <아바타>에 출현해 상종가를 치고 있는 샘 워싱턴이 위대한 영웅 페르세우스를 연기했지요. 이건 취향의 문제이기도 한데, 전 '그리스 신화'를 다룬 작품이라면, 따지지 않고 그냥 봅니다. 신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어던 이야기의 '원형'이 담겨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접해왔던 내용이라 별 거부감없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타이탄>은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메두사의 목을 베고, 제물로 바친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며, 자신의 아버지 이크리시오스를 (본의 아니게 예언대로) 죽여 아르고스 왕국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투구,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발, 방패와 칼, 메두사와 바다괴물과의 사투, 안드로메다 공주와의 멜로 등 페르세우스 이야기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이런 소재를 놓칠리가 없지요.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각색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원작이 있습니다. 1981년 데스몬드 데이비스 감독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레이 해리하우젠이 만든 <타이탄족의 멸망(The Clash of the Titans)>이 2010년 <타이탄>의 원작입니다. 이 영화 또한 (당연하게도)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원작은 제우스와 테티스의 아들 갈등을 기본으로 다뤘습니다. 테티스의 아들 캘러보스가 실수를 저질렀는데, 제우스가 벌을 내렸지요. 테티스는 마음이 상해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에게 고난을 내립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의 어머니 카시오페아의 망언으로 올림포스 신들의 분노를 삽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라켄'이 아이티오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 으름장을 놓습니다.  페르세우스는 인간이 크라켄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메두사의 머리라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얻으러 길을 떠납니다. 

   원작이 유명한 것은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때문입니다. 그의 불세출의 작품인 <아르고 황금 대탐험(Jason And The Argonauts)>만큼의 놀라움은 아니지만, 메두사, 전갈, 크라켄 등 크리처의 모습이나 액션은 정말로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때문에 리메이크를 진행했겠죠. 

   리메이크 <타이탄>은 제우스와 테티스의 갈등이 아닌, 제우스와 그의 형 하데스와의 갈등으로 극이 빚어집니다. 하데스의 농간에 넘어간 제우스는 하데스가 아이티오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묵인합니다. 저승의 신이 왜 그렇게 바다에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지만(좀 무리수이긴 했지요) 그런대로 원작의 이야기와 신화를 잘 비틀어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원작의 유명한 크리처들은 모두 등장하고, 규모는 커지고, 속도는 빨라졌으며, 액션은 뛰어납니다. 물론 아날로그나 디지털 모두 진짜같지 않은 이질감은 보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요. 하지만 공들인 액션씬은 모두 재미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다룬 또 다른 작품은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트로이(Troy)>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각색한 것인데, 말이 각색이지 원작의 흥취를 다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동진 기자는 이 영화를 평하면서 "호머가 봤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라고 악평을 했었는데, 그 심정 백분 공감합니다. 

   『일리아스』올림포스 신들의 대리 전쟁입니다. 그런데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를 싹 뺐습니다. 남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벌이는 아비규환 전투뿐이지요. 두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멋진 캐릭터가 남아있지만, 그들이 벌이는 액션은 흥분보다는 실망감이 앞섭니다. 엄청난 병사들이 벌이는 대규모의 전투는 <반지의 제왕>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즉각적으로 떠오를 정도로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헐리우드가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런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도 무언가 아쉬웠는지(아니면 제작사의 우려먹기 전술인지) 2008년에 확장판 DVD를 출시했습니다. 내용이 변하진 않았고, 조금 더 잔인한 장면과 여인들의 누드 장면이 포함되었습니다. 

 

         

   『일리아스』를 언급했으니, 짝패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빼놓을 순 없지요. 『오뒷세이아』를 다룬 영화는 꽤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는 오뒷세이아의 모험은 영화로 만들기에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죠. 오뒷세이아가 만나는 괴물들만 하더라도 엄청나니까요.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코헨 형제가 감독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입니다. 코헨 형제는 신화의 세계를 재현하기 보다는,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과거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오뒷세이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정말로 웃깁니다. 맹인에게 예언을 듣는 장면이나 외눈박이 거인을 만나는 장면, 특히 마지막 대홍수는 정말로 쓰러지게 만들지요.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이렇게나 유쾌하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외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는 이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다룬 최고의 영화는 아마도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 되겠지만, 이 영화를 보기엔 수고가 듭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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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바로 호머가 저술했다는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입니다.아직까지 두 작품을 호머가 저술했다고 아시는 분이 많은데 학계에선 실제 호머란 인물이 저술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두 작품의 성향이 전혀 달라서 한 인물이 저술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것이 대세더군요.
현재는 대체로 일리어드는 남성이 오딧세우스는 여성이 저술했다는 설이 차츰 힘을 얻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딧세우스의 내용중에 여성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잘 묘사되었으나 남성의 모습은 비 현실적(즉 남성이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이가 저술함)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Tomek 2010-04-06 10:03   좋아요 0 | URL
제가 들은 설은 호메로스는 개인이 아니라, '창작집단'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별이 다른 저자라는 사실은 놀랍네요. 어쩌면 호메로스는 나관중처럼 저자거리에 흘러다니는 이야기를 취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