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1주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자라지 않아)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 王昭君(왕소군) -              

 

   경칩을 하루 앞둔 오늘, 밀려가는 겨울은 꽃샘 추위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보지만, 다가오는 봄의 따스한 숨결로 그 독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추위를 견뎌낸 나무들과 대지는 한껏 녹색을 드러낼 준비에 바삐 보내고 있고, 조금씩 길어지는 아침해와 저녘해는 벌써부터 여름을 준비하는 것 같다. 계절은 완연한 봄기운을 흘리고, 난 그 향기에 취해있지만, 주위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겨울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저번주, 이번주, 다음주 개봉하는 영화들을 훓어보니까 흥미로운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관련된 주제로 걸러보니 두 편이 나왔는데, 옛날 영화를 한 편 더 보태 '정치-인'에 대한 주제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백하건데, 난 정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화염병을 들고 쇠파이프를 들었을 땐, 대학생이라면 의당 그래야하는줄 알았었다. 하지만 의식화가 되지 않고 의무감으로 하는 '운동'이 얼마나 지속적일 수 있을까? 약 1년 반동안 하는둥 마는둥 시위를 하고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데모'라고는 이제 학내 등록금 투쟁정도 밖에 없던 시절, 교양으로 듣던 정치외교 수업에서 처음으로 '정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신문을 보더라도 정치면은 안보고 스포츠, 연예면만 보는 너희들! 너희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는 왜 그리 읽어대냐? 그게 너희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하는 게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냐? 김미현이 우승한다면 모르겠다. 아버지가 고깃집을 하니까, 혹시 알어? 우승하면 그날 고기는 공짜! 뭐 그런 게 걸릴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그 소식은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옌예인 가쉽이나 박찬호 승수가 너희 인생에 이득을 주진 않잖아? 좀 실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정치는, 너희들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어떤 청렴한 사람이라도 부패하기 마련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뽑은 우리는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는거야. 뽑아놓으면 끝이 아니라고.  
   

 

   거의 10년전에 들었던 강의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난 정치에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진 않으나, 그저 매일 뉴스를 체크하고, 선거때면 투표하는, 일상적인 관심은 지니고 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대개는 부패하고 악덕한 인물들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뭐 멀리 볼 것 없이,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때에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나온 것이 반갑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라기 보다는 숀 펜의 영화라는 게 더 어울리는 영화 <밀크>는 하비 밀크라는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을 다룬 영화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를 간단히 서술한다면, 그는 동성애자다. 그는 뉴욕에서 증권사에 근무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리고 그의 친구들이 부당한 편견과 폭력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게이 인권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다.

   하비가 꿈꾸는 세상은 인종, 나이, 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는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그 자신이 세상의 편견과 부딪혀 싸워왔다. (자신도 게이인) 구스 반 산트는 하비라는 인물을 드러내기 위해 가능한 개입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하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숀 펜은 그 스스로 하비가 되어 하비의 정치를, 하비라는 정치인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인들도 (집에서 말고) 극장에서 꼭 좀 보셨으면 한다.

 

   넬슨 만델라. 27년간 옥중생활을 한 대통령.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 그는 복수의 정치를 펼친 게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펼쳤다. 그 모든 사감을 털어내고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를 펼친 위대한 인물. 클린트 이스티우드 감독은 이 위대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럭비 월드컵으로 풀어낸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스포츠 지상주의를 혐오하지만, 그래도 스포츠에는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힘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인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하나가 되는 기적을 그렸다. 이만큼 간단하고 명료하게 넬슨 만델라의 업적을 그릴 수 있을까? '인간'으로써 하나되는 평등한 세상. 만델라 대통령은 그런 세상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또한, 경제나 강이 아닌,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계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게 아닐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극단적인 평가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1979년 10월 26일에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벌인 행동은 그야말로 웃음만 나게 만든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언제나 문제작만 만들어내는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가감없이 "보고서에 쓰여있는 그대로" 찍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은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이며, 이런 한심한 사람들을 믿고 살아왔던 우리들은 얼마나 더 한심한 사람들이었나. '박정희'라는 우상이 깨어진날,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일반 시민들이 그의 영정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담긴 기록필름을 볼 수 없다. 영화가 다룬 '그 때 그사람들'의 행동도 코미디였지만, 이 영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신경질적인 반응 또한 코미디였다.  

 

   왜 우리에겐 존경할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없을까?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의 정치 자체가 코미디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치인은 코미디를 하고 코미디언은 정치를 하는 세상. 동혁이 형을 국회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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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3-1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 그것은 탐욕을 위한 성찬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없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 원인을 찾아가보면 기막힌 사연들이나 이유가 나오겠지만 인간 자체가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올바른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풍토, 언제나 그게 현실적 벽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 일선에 있어본 적도 있었고 친구들 역시 보좌관이니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막힙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국민이 잘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것에 목매단 정치인 역시 엉망이긴 마찬가지고. 이렇게 보면 나라발전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omek 2010-03-10 13:34   좋아요 0 | URL
'之'자로 걷더라도 어떻게든 앞으로는 가겠지요. 대안을 발견 못함을 절망으로 여겨야할지 희망으로 여겨야할지 모르겠지만, 희망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역시나 이상적인 말이네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