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3주

   중앙씨네마에서 기획한 [마지막 스크린 추억을 만나다]를 보러 중앙극장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야 알았다. 중앙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중앙극장은 중앙씨네마로 이름을 바꿨지만, 아직도 내겐 중앙극장으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가족들과 <쥬라기 공원>을 봤었다. 청계고가 밑 어두 컴컴한 분위기,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와 매연과 경적소리를 뚫고 들어간 극장은 재개봉관같은 허름한 분위기였다. 시설에 실망을 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나서 그런 생각은 접어두게 되었다. 마법같은 순간.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공룡들을 보고 감탄하고, 티라노가 나왔을 때 같이 소리를 질렀던, 93년 여름을 보냈던 그때 그사람들은 그 순간을 기억을 할까?  

   중앙극장은 내게 어떤 내세우기는 뭣하지만,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기억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그곳이 없어진다니. 도시는 나날이 발전하지만, 추억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몇 십년 후, 이곳 서울은 내게 있어서 어떤 공간으로 남을까? 추억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은 삭막한 공간으로 남지 않을까? 이번주는 사라지는 극장, 사라지는 추억을 생각하며 그와 관련한 영화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극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다루는 영화 중 이 영화를 능가하는 영화가 있을까? 영화에 대한 사랑, 극장에 대한 사랑,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던 추억들.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씨네마 파라디소' 극장은 단순히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아닌, 그곳 작은 섬에 머물렀던 모든 사람들의 추억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주인공 토토에게는 아버지같은 존재인 알프레도와의 추억과 첫사랑의 기억이 머물러있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극장은 부서지고, 남아있는 노인들은 그들의 부재함을 인정하고 슬퍼한다. 극장이 없어진 자리엔 쇼핑몰이 들어설 것이고, 그 장소는 추억의 장소가 아닌, 실용의 장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존재하는한, 또 극장이 존재하는한,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고, 그들은 그 추억을 간직하며, 들쳐보고 살아갈 것이다. 

 

   차이 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또한 사라져가는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인 복화극장은 내일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 극장의 마지막 상영 영화는 호금전 감독의 <용문객잔>이고 밖엔 폭우가 내리고 있다. 폭우를 뚫고, 젊은 일본인 남자가 동성애 파트너를 찾기 위해 극장에 오지만, 극장안은 텅 비었다. 그런데 그 때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나타난다. 

   차이 밍량은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을 기억해두기 위해 영화를 찍는 것 같다. <애정만세>를 봤을 때도 그랬고, <구멍>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 <안녕, 용문객잔>또한, 이제는 사라져가는 변두리 구석의 극장을 회환에 찬 눈길로 따스하게 바라본다. 영화는 극장 구석구석을 마치 잊지 않으려는 듯 보여주고, 그 안에서 다리를 저는 여자 매표원과 젊은 영사기사의 애틋한 감정도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끝나고, 내일이면 극장은 문을 닫을 것이다. 이 모든 풍경들이 추억속에 사라져간다. 

 

   이야기를 너무 감상적으로 끌었다.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악몽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비디오나 DVD로 보면 결코 그 매력을 느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악령(혹은 좀비)'들이 극장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환상이 극장이라는 현실로 들어오는 순간. 영화 속 상황과 영화 밖 실제 상황과 겹쳐져, 이 영화는 독특한 아우라로 상영시간 내내 보는이를 옥죈다. 아마도 이 영화를 상영한 극장은 다시는 영화를 상영할 수 없을 것이다. 추억과 아쉬움이 아닌, 끔찍한 기억으로서의 공간. <데몬스>는 다른 방법으로 극장이라는 공간을 환기시킨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이나 추억과 이별을 하게 될까? 청춘은 추억을 쌓는다. 청춘이 끝나면 추억을 꺼내보고, 하나씩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청춘은 끝났다. 

 

 

*덧붙임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은 <안녕, 용문객잔>과 <데몬스>를 섞은 듯한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찾아보시길... 정말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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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 2010-02-1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씨네마, 혹시 스폰지 하우스 중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그곳에서 영화(솔직히 시사회가 대부분이었지만)를 많이 봤었는데... 저간의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극장에서 경험과 추억, 그리고 환상을 살찌우고 있는 많은 영화인들에게 이 소식은 큰 충격이 될 것 같네요. ㅠㅠㅠ

Tomek 2010-02-19 17:44   좋아요 0 | URL
스폰지 중앙은 작년(벌써 작년이네요)에 정리를 했고, 중앙씨네마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그 중앙극장도 문을 닫는다고 하더군요. 스폰지는 광화문 하나만 남고 다 정리한 상황입니다.

이젠 메가박스나 CGV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ㅠㅠ

2010-02-22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2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3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3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