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페어러브>는 (이미 알려진대로) 형만(안성기)과 남은(이하나)의 사랑이야기다. 단, 이들의 관계는 (조금 혹은 매우) 특별한데, 남은은 형만의 친구 딸이다. 굳이 유교권 국가의 특성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랑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서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들의 사랑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1. Fair Love (공평한 사랑) 

   형만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만 끊임없이 반문하고 회의한다. 그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특별하게 흘러간다. 상대가 친구의 '딸'이기 때문이다. 형만은 이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끊임없이 반문한다. "내가 이래도 되나?" 형만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엔 그의 주변사람들의 분노와 비야냥을 설득해야 한다. "사실이냐? / 야! 이건 아니지. / 늙으막에 딸같은 여자애랑 연애하려니 고생이 많네."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마저 설득해야 한다. "이젠 아저씨 말고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기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보여지는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해왔고 봐왔던 사랑과 다르지 않다. 그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들(이라기 보단 형만)은 사랑 말고 윤리적인 판단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숱하게 고민하다 내뱉는 형만의 한마디, "에잇! 내가 뭐 죄짓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처녀총각이 만나 연애한다는 건데, 내가 왜 이래야해?" 맞는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적인 사랑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이다. 페어 러브. 

 

 

1-1.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상처를 주는 사랑 

   <정사>의 사랑은 윤리적인 틀 안에선 불륜의 범주에 해당한다. 잘나가는 건축가와 결혼해 10살난 아들을 둔 서현(이미숙)이 그녀의 동생과 곧 결혼할 우인(이정재)를 만나서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애틋하다기 보다는 안타깝다. 이들의 사랑은 설득의 대상이 너무나 많다. 서현의 남편, 아들, 그녀의 동생,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포기할 수 없는 안락한 생활 등.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채, 밀회를 즐기는 것 뿐이다. 하지만, 비밀은 영원할 수 없고 사랑엔 댓가가 따른다. 

   서현의 남편(송영창)은 이 일을 무마하려고 한다. 허상으로 채워진 안락한 부르주아의 세계를 깨뜨리기엔 그의 자존심은 허약하다. 하지만 서현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 아들의 체육대회. 아들을 응원하러 간 서현이 우인을 보고 학교 과학실에서 정사를 벌인다. 그때 갑작스럽게 보여지는,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 책임과 윤리 사이에 부유하는 서현의 사랑은 정말이지 안타깝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상처는 공평하지 않다.  

 

2. Fair Love (공정한 사랑) 

   영화 초반부. 형만이 남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남은이 이야기한다. "참 이상해요. 아빠가 돌아가실 때는 별로 울지 않았는데,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는 시도때도 없이 계속 울었어요. 전 나쁜앤가 봐요." 그러자 형만의 말, "원래 내가 받은 사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준 사랑은 기억에 많이 남는 법이거든. 그래서 부모가 죽었을 때 보다, 자식이 죽었을 때, 부모가 더 슬피 우는 것이지.

   덜 사랑하는 자가 '연애'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사랑은 늘 50:50으로 공정한 법은 아니다. 처음에는 50:50으로 사랑했다 하더라도 시간과 감정의 마모로 인해 그 양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양이 달라지면 종내는 파국을 맞기도 한다. 

   형만과 남은 역시 50:50의 사랑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수 많은 상황들과 그들 자신의 세계관의 충돌로 다른 사랑들과 똑같은 위기를 맞게 된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사람을 다루는 일은 처음인 형만에게, 이런 위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그런 위기는 사랑을 겪게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으레 겪는 것이기 마련이다. 다만 극복하느냐,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가 더 주거나 덜 받은 것이 아닌, 서로 (공평하게) 사랑했다. "우리 이제 다시 시작해요."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고 영향을 주었다. 휘풀어진 그들의 삶은 '다시 시작'해서 하나의 완전한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공정한 것이다. 페어 러브. 

 

2-1.  기억에 머무는 사랑, 가슴에 머무는 사랑 

   하지만 아무리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간의 상처를 봉합할 수 있을까? 그럴바엔 아예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그런 상상을 실제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사랑에 빠졌지만, 날이 지날수록 권태기에 빠지고 그들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그들은 이별을 하고 서로의 기억을 지우기로 합의한다. 클레멘타인과 사랑했던 기억을 하나씩 지우면서,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국 기억은 지워지고 그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지웠다고 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몸은 기억할 것이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다면, 그들은 알 수 없는 호감에 멈출 것이고, 또다시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있는 사랑에 대한 공포감을 클레멘타인은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은 언젠가 내게 실망을 할 것이고, 우린 서로에게 싫증을 느낄 것이고, 둘이 만나도 전혀 새롭지 않으며 어색한 침묵만이 계속해서 흐를거에요." 그러자 조엘의 대사. "(그런 생각따윈 잊어버리고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순간을) 즐겨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면, 설사 서로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은 상대방을 알아볼 것이다. 단,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공평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3. 다시 <페어 러브> 

   이번주에도 시놉시스만으로도 사랑스럽고, 벌써 입소문이 심심치않게 돌고 있는 개봉영화들이 즐비하지만,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같은 영화를 소개했다. 간만에 이렇게 사랑스런 영화는 오랜만인 것 같기도하고, 완성도나 재미면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는데도, 상영관 수 축소와 교차상영의 비애로 아마도 이번주가 지나면 거의 상영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페어 러브>가 너무 안타깝다. 그저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누군가 읽고, 이 글을 퍼가서 다른 블로그나 게시판에 올려 입소문이 나, 이 영화가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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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2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감상을 하셨군요.
꼭 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Tomek 2010-01-21 10:26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거의 모든 상영관에서 내렸고 남은 상영관마저 교차상영이네요.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