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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The Fair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누구에게나 사랑은 제가끔, 특별하게 존재한다. 아무리 평탄한 사랑을 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사랑은 항상 특별하게 기억(혹은 윤색)된다. 그 이유는,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페어러브>는 이보다 조금 더 특별한 관계에서 시작한다. '친구의 딸'이라는 관계와 약 25년간의 나이차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까?", "이들은 주변의 시선을 무릅쓰고 사랑을 지킬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기 전에 머리솟에 맴돌던 질문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 보다는 생각이 무력화 된 경우다. 이 영화는 '사랑'이 아닌,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형만(안성기)은 카메라 수리공이다. 그는 나이 50이 넘을 때까지 연애는 커녕,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줄곧 고장난 카메라를 수리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형만에게 사기를 친 친구가 죽기 전에 형만에게 자신의 딸 남은(이하나)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마지못해 친구의 유언을 수락한 형만은 약속대로 가끔 남은을 찾아간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형만은 작은 작업실 안에서 카메라 부품을 만진 채 50여년을 살아왔다. 그 작은 공간은 그에게 있어서 전부이고, 그는 그 안에 침잠해 있다. 남은이 형만과 사귀게 된 후, 남은은 형만에게 말한다. "사진 수리는 그만하고 작가가 되어보는 게 어때요?" 그러자 형만이 남은에게 하는 말, "인생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니야. 다 자기가 조금씩 잘 하는 걸로 세상에 맞춰 사는 거지. 넌 뭐 대단한 줄 아니?" 이 말은 전형적인 기성 세대의 말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 보다는 세상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 그게 형만이 살아온 인생이다. 아마도 형만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젊었을 때는 작가의 꿈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과 세월에 마모되어 그저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맞춰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가 '젊은' 남은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는 그를 둘러 싼 단단한 껍찔을 깨뜨릴 계기를 얻는다.
남은과 형만
<페어러브>를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야기로 바라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형만의 캐릭터는 이해하기 쉽게 그린 반면, 남은의 캐릭터는 '애매모호'하게 그렸다. 왜 그녀는 형만을 사랑하게 됐는지, 왜 그녀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떻게 그녀는 형만이 자신을 찾아 올 줄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남은은 설명하지 않는다(혹은 감독은 알려주지 않는다) 신기한 건 남은의 캐릭터가 애매모호하더라도, 영화는 삐끄덕거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점이다.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생략한 부분을 감싸안는 힘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화의 중간 장면이 반복된다. 형만이 남은과 그의 친구/동료들과 서해안에 놀러가서 회를 먹는 장면. 갑자기 형만이 일어나서 카메라로 구름을 찍는다. 그러자 친한 동료의 야유. "형이 뭐 스타글리치야? 맨날 구름사진만 찍게." 스타글리치는 사진과 회화를 분리하는 운동에 앞장 섰던 '작가'다. 남은은 그가 작가가 되길 원했다. 매일 조그만 작업실에 틀어박혀 되지도 않는 돈벌이를 하기 보다는, 형만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를 바랐던 남은. 구름을 찍는 형만을 바라보며 남은은 이야기한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 말은 우리의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생'을, '삶'을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은 그들의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같이 시작하자는 말만큼 든든한 말은 없다. 형만은 다시 시작할 것이다. 두려워 할 필요 없다. 갑자기 등장한 신연식 감독의 말처럼 "결과는 오십 대 오십" 이니까.
*덧붙임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형만이 친구인 강 목사에게 성경에도 사랑에 관한 구절이 있냐고 묻자 강 목사가 얘기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형만이 이 구절을 읽고 이야기하죠.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러자 강 목사의 대답. "그래, 어렵고 힘들어. 남들 다 힘들게 산다. (사랑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너나 쉽게 살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