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2주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번주 개봉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단연, <페어 러브>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배우, 안성기 씨와 이하나 씨가 주연이라는 말에 진즉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내용은 다소 파격적이다. 친구의 딸, 아빠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굳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Lolita)>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Damage)>,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Lolita)>, 샘 맨더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등 온갖 '엽기 패륜'을 다룬 영화가 즉각적으로 떠오른 것은 아무래도 내 영화 취향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내가 생각한 그런 (지저분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았다(당연하지!!).
<페어 러브>에 관심이 간 또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소설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없다. 신연식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를 만들어 부산영화제에 개봉했다. 그런데 며칠전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감독 자신이 영화에서 시간과 화면의 제약때문에 담지 못했던 소소한 부분을 살려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기사보기 클릭)
보통 영화가 원작이 되는 소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대충 각색해 영화가 개봉하기 몇 주 전에 서점 가판에 깔리기 마련이다. 이 소설들은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홍보'만을 위해 급조된 소설들이다. 사람들은 가판에 깔린, 영화 포스터가 표지에 실린 책을 보면서 영화를 인식하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책'이 아니라, 수많은 마켓팅 수단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처음에 『페어 러브』가 소설로 나왔다고 했을 때, 이 역시 홍보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홍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각본가이자, 그 내용이 실제 자신의 경험담이라는 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모든 매체를 통해서 '완전히 토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게 상술인지 진심인지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상술이 아닌 영화와 책의 공존을 꿈꾸는 경우는 『박쥐』가 있다. 박찬욱은 이전부터 영상의 소설화에 관심이 많았다. 『친절한 금자씨』로 슬쩍 간을 보더니 『박쥐』에서 본격적으로 그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박쥐>는 설명이 거의 없는 불친절한 영화다. 상현이 왜 그렇게 죽고 싶어했는지, 그 단체는 어느 곳인지, 태주, 강우, 라여사, 그리고 매주 모이는 마작 모임 등, 보여지는 것은 많았지만, 그 인물의 내면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감독은 그 부재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났고 그 부재를 채울 수 있었지만, 한정된 시간과 빠른 컷의 전환으로 단번에 알아차리기는 힘들었었다. 박찬욱 감독은 그 부재를 책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확실히 책은 단순히 영화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시작지점부터 다르다) 인물들의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게다가 『테레즈 라캥』이란 든든한 서사도 있으니...). 소설 『박쥐』는 영화 <박쥐>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두 작품은 서로를 보완한다.
문단에서 활동중인 작가가 쓴 경우도 있다. 김형경 작가가 쓴 『외출』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시나리오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문단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기사클릭) 기성작가가 영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일은 (적어도 한국에선) 전무했으니까. 소설과 영화 각 장단점이 있지만, '감정이입'이란 면에선 소설의 승리였다. 배용준의 복근을 보고 아픔보다는 질투심이 일어났으니까... 그건 평범한 30대의 몸이 아니다. 특별한 30대의 몸이지...
이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곁가지로 다루어본다. 외국의 경우엔 더 다양한 편인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아서 C. 클라크 경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가 있다. 클라크 경의 단편 「센티넬」을 바탕으로 큐브릭 감독과 클라크 경이 이야기를 만든 후, 소설과 영화로 각각 제작 되었다. 놀라운 점은 소설과 영화 둘 다 각 영역에 무시못할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고, 각 작품이 각각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라는 점이다. 큐브릭 감독과 클라크 경은 영화계와 문단이 꿈꾸는 행복한 관계를 50여년 전에 이미 만든 셈이다.
신연식 감독/작가의 『페어 러브』는 이 목록에 추가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이번주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덧붙임
요즘 <아바타(Avatar)>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Abyss)>역시 소설로도 나왔습니다. 작가는 『엔더의 게임』, 『사자의 대변인』을 쓴 바로 그 유명한 올슨 스콧 카드입니다.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다르다고 하는데, 책이 절판된지 오래라 확인할 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