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발로 꾹꾹 밟어 쓴 풍경과 상처 그리고 아름다움
요즘들어 김훈의 책을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면 좀 그 양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더 늘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이문열(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중반에는 이현세, 10대에서 20대를 관통하는 조정래. 20대 초중반의 하루끼. 20대 말의 이토 준지와 고우영 그리고 30대에 만난 박민규, 성석제. 그 외에는 이렇게 전작을 파고든 작가는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영화와 음악은 그 목록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원래 천성이 그런가.)
짧은 시간에 그의 저작들을 읽다보니 괜시리 겹치고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원래는 『공무도하』 리뷰에 적었어야 했는데, 대충 날림으로 생각하고 적다보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 같다. 리뷰의 완성은 죽기 직전에야 완료되는 것인가. 아무래도 리뷰는 끊임없이 덧붙여져지는 숙명인가 보다.
『풍경과 상처』에서 김훈은 강진을 돌아보며 정다산과 그의 형 정약전에 대한 글을 썼다. 성리학의 시대이념이 만들어낸 정약용이 천주교도가 되고 그의 형 정약전과 매형인 이승훈도 역시 천주교도가 된다. 그러나 1801년 정약용의 적극적인 배교로 주문모 신부의 존재가 폭로되어 잡혀들고 매형인 이승훈 또한 잡혀들게 한다. 국청 마당에서 형틀에 묶인 정약용과 이승훈의 대질 심문. 매형과 처남이 서로를 저주하는 지옥같은 광경. 그 속에서, 이승훈 역시 자신이 정약용에게 영사를 주었다고 폭로한다. 이당시 정약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러한 적극적인 배교로 정약용과 정약전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기나긴 유배생활을 한다. 살기 위해서 국청 마당에서 느꼈던 치욕. 조선시대 엘리트였던 정약용은 얼마나 치욕적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천주교도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함께 수학한 사람들과 자신의 매형을 배신해서 얻은 목숨을 이어간다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평판은 어떠했을까.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수 많은 빛나는 저작을 저술했어도, 자신의 생애에 파고든 치욕에 대해선 한 줄 쓰지 않았다. 그는 그 치욕을 감수하고 살아갔다.
『자전거 여행 2』에서 김훈은 정약용의 고향 양수리 두물머리를 보며 정약용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한다. 이런 치욕을 감수하고 유배생활을 마친 정약용은 자신의 호를 열수(洌水)라 하고 죽을때까지 그 호를 썼다. 열수는 한강의 옛말이고 그가 태어난 양수리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정약용은 조선 성리학이 키워낸 시대이념의 엘리트였으나, 천주교와 기나긴 유배생활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 '리얼리스트'가 되었다. 그의 생애는 그가 태어난 두물머리 처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듯, 그렇게 합쳐졌다.
『공무도하』의 장철수는 창야(倉野)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농대를 졸업하고 학교 주변에 머물렀다. 공장의 파업으로 노학연대에 참가하고, 사고인지 의도인지 모를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추도사를 한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그는 세상을 단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긍정하기 때문에 단념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세상은 아니라고 한다. 노목희는 그가 '이런'이라고 규정하는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연행됐다. 그가 풀려남과 동시에 일급 수배자들이 일제히 연행됐다. 형사와 장철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결과는 안다. 그는 밀고를 하고 배신을 했다. 공권력의 힘 앞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동지들을 배신한 그 치욕을 장철수는 '한 세상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아득한 곳을 향해 돌아서는 느낌'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유배가듯 해망(海望)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 때의 일은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 치욕을 몸에 담고서 살아간다.
장철수가 해망에서 고향 창야로 돌아오는 계기는 그의 신장을 떼고 받은 돈으로 '바다에서 고철을 건진 죄'의 값을 갚고 나서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그의 죗값도 그의 신체도 일정한 돈으로 환산되고 그의 신체와 죗값의 등가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정약용이 그의 치욕과 죗값을 빛나는 저작으로 대신했다면, 장철수는 그의 노동과 신체로 그의 치욕과 죗값을 대신했다. 조선 성리학이 지배이념인 시대와 돈이 지배이념인 시대의 절묘한 대구처럼 보인다. 다산이 지금 이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장철수처럼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읽은이의 흰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비약이 너무 심한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장철수의 모습에서 다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치욕을 드러내지 않고 몸에 담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남아있는 자들의 이런 저런 평가는 하나마나한 소리로 들린다. 김훈은 다산과 장철수를 통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치욕을 감내하고 같이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런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 덧붙임
1. 2000년 여름에 다산초당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다산 초당을 직접 보고 들었던 생각은 "캬~ 이거 완전 꿀 빨고 계셨겠구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한여름인데도 시원한 위치에 초당의 크기도 예상보다 굉장히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찾아 읽어보니 지금 초당은 증축된 것이라 합니다. 조금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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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한 호흡 돌리고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면 이내 다산초당이 보인다. 이름은 초당이라고 하였건만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 지붕으로 툇마루가 넓고 길며 방도 큼직하여 도저히 유배객이 살던 집 같지가 않다. 나도 본 일이 없지만 실제로 이 집은 조그만 초당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무너져 폐가로 된 것을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이처럼 번듯하게 지어놓은 것이다. 다산을 기리는 마음에서 살아 생전의 오막살이를 헐고 큰 집을 지어드린 것이라고 치부해보고도 싶지만, 도무지 이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크기여서 그것이 못마땅하다. 더군다나 예비지식 없이 온 사람들은 유배객 팔자가 늘어졌다는 생각만 갖고 가니 이것은 허구 중의 허구이다
유홍준 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다산 초당의 허구와 진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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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면 다산 초당의 크기는 얼마했을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외할머니가 살았던 크기로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그보단 조금 더 컸겠지요. 『풍경과 상처』에서 조금 옮겨봅니다. 아마도 『공무도하』에서 방천석이 살다가 오금자에게 주고, 장철수와 후애가 같이 사는 그 집도 이랬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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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아서 옛모습 그대로라고 마을의 어른들은 말했다. 눈물송이 같은 버섯의 초가집이었다. 쌀뒤주만한 방 두 칸은 흙벽이 드러나 있었고, 그 끝에 흙으로 부뚜박을 빚은 부엌 한 칸이 달려 있었다. 처마가 흘러내려 그 끝이 땅에 닿을 듯했다, 건넌방 앞으로 땟국에 절은 툇마루가 놓여 있었다. 어른 한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툇마루였다. 시 속에 나오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였다. 미당의 어머니의 처녓적 손때와 외할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툇마루였다. 미당의 생가는 이 외갓집에서 질마재 네거리를 건너간 산 아래 있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 아이가 어머니의 매를 피해 이 외갓집까지 달려오려면 한 십여 분 걸릴 것이었다. 마루에 비치는 외할머니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나란히 손자의 낙원이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나' 그리고 '외할머니'의 모습이 함께 비치는 이 때거울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라고 미당은 적었다.
그 툇마루는 지금도 사람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때에 절어 있었다.
『풍경과 상처』 「오줌통속의 형이상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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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훈의 데뷔작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서 '장철민'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고향은 강원도 어느 산골 태생이고 농고를 졸업했습니다. 군대를 갔다온 25세부터 6년간 포크레인과 택시를 운전하다 소방관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소 '의도적인 사고사'를 당합니다. 그는 죽어서 모든 비난을 받지만, 그는 죽었기 때문에 그 치욕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직으로 처리되지요. 데뷔작에서 김훈은 정약용의 '순결과 치욕'에 대한 입장이 덜 정리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