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불쾌한 기분이 들 수 있는 이미지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며칠 전에 '세계 최장신 213cm 여성 모델'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그냥 보기에, 누군가 포토샵으로 장난을 한 것처럼 보였는데, 관련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사실이었다. 실재가 가짜처럼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마존 이브(Amazon Eve)고, 국적은 미국, 키는 213cm라 한다. 처음엔 그녀의 유난히 큰 키때문에 시선이 끌렸지만, 보면 볼수록 독특한 그녀의 표정에 자꾸 눈길이 갔다.    

 

   

 

   실재같지 않은 훤칠한 키, 그리고 분명 웃고 있는 모습이지만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있는 모습과 치켜뜬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 강한 기시감(旣視感)을 불러 일으켰다. 맞다. 난 그녀를 언젠가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서 후치를 기억하게 했다.  

 

  

이토 준지의 그녀, 후치


   2m가 넘는 훤칠한 키에 한 번 보면 기억에 각인을 시켜놓을듯한 강렬한 인상을 지닌 후치는 공포만화로 명성을 쌓은(현재 진행형 동사임) 이토 준지의 단편 만화에서 나온 캐릭터다. 그녀는『소이치의 저주의 일기』중「소문」에서 데뷔했다. 소이치가 단순히 반 친구를 놀리기 위해 연못에 무시무시한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냈는데 실제로 나타나는 역이다.  

   그리고 같은 책「패션모델」에서 그녀의 이미지를 고정시킨 강렬한 역을 맡는다. 키 큰 모델이 아마추어인들이 찍는 영화에 배우로 발탁되어 촬영을 위해 산에 갔는데 그녀가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을 잡아 먹는다(!)는 내용이다. 시공사 구판에서는 『소이치의 저주의 일기』에 두 편이 다 들어있지만, 새로 나온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시리즈에는 5권 『뒷골목』과 6권 『소이치의 저주 일기』에 두 에피소드가 나뉘어져 있다. 이전 구판이 후치의 이야기를 소이치 이야기 결말부에 대한 덧붙임 식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신판에서는 그녀를 당당한 개별적 캐릭터로 다룬 셈이다.   

 

    

 

   이토 준지의 후치 사랑은 워낙에 각별해서 후에 그녀를 한 번 더 출연시킨다. 『어둠의 목소리』 「도깨비집」에서 그녀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경탄과 경악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 어둠의 목소리:궤담』 「소이치 전선(前線)」에서의 등장 이후로 (아마도 아쉽지만) 그녀의 모습은 더이상 보기 힘들 것 같다.  

 

   왜 아마존 이브를 보고 후치를 기억해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 건강한 모델일 것이다.  

 

   


 

*덧붙임 

   1. 이토 준지는 개별적 캐릭터로서 후치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후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인터뷰를 조금 옮겨놓겠습니다. 전문은 더링님의 블로그에 가셔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이야기의 소재들을 생활을 찾는다고 하는데, 당신은 생활 속에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흥미로운 소재를 생각한 후에 무서운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 「패션모델」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나? 

이토: 잡지를 읽는데 어떤 모델이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그녀의 표정은 매우 섬뜩했다. 패션모델치곤 독특해 보였다. 그래서 그걸 과장시키고 식인이라는 설정을 추가했다. 그랬더니 무서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토준지 다빈치 매거진(1998)인터뷰
인터뷰: 이와네 아키코
번역자: 더링

 
   

 

   2. 후치의 입을 보니 또 한사람이 생각나는군요. 7080세대라면 다들 기억 하실 듯 합니다. ^.^



에이미,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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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2-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섭군요 ㅠ_ㅠ

블루베리나이츠 리뷰를 보고 상큼했던 분위기를 떠올리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이토준지의 만화가..^^;; 중학생때였나, 이 만화책을 보면서 두근두근하며 최대한 손이 그림에 닿지 않도록; 책 모서리를 잡고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역시나 이렇게 이미지를 따로봐도 무섭군요 ㅠㅠ

Tomek 2009-12-04 09:37   좋아요 0 | URL
본의 아니게 무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

저도 처음엔 이토상의 만화를 보고 무서워했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그 상상력의 힘에 압도되더군요. 특히 「기나긴 꿈」이나 「길 없는 거리」같은 작품들에서 소재주의를 넘어서 인간의식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는 것을 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의 작품은 소재주의에 머무는 듯한 경향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다른 작가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