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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동물 열전 -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들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입담 천재 곽재식 박사의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팔도 동물열전이다.
최애, 극혐, 짠내를 오가는 한국 야생의 생존 고수,
고라니, 멧돼지, 여우, 청설모, 너구리, 붉은 박쥐, 담비, 반달곰 이야기가
지역별로 펼쳐졌다. 해외여행을 갈 때 그 도시를 대표하는 동물들을 보러
일부러 찾아가면서 정작 우리나라 야생동물들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너무 희귀한데 우리나라에는 흔해 로드킬 1위로
저평가된 고라니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초식동물답게 성격이 온순하면서도 언제나 발 빠르고 경쾌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편안하고, 빨리빨리 정신으로 유명한 한국인처럼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물 사슴이라는 영어 이름처럼 물가도 좋아하고 어떻게든 적응하고 변화하며
살아남는 한국인의 기질도 엿보이는 고라니는 고구려와 백제 역사에도 등장한다.
잡학 다식 박사답게 동명왕편에 나오는 주몽의 이야기와 고라니의
특이하고 기괴한 울음소리를 연결 짓는데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고라니가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매년 정부 방침에 따라
대량으로 사냥당하는 일은 심각하게 고려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농민의 고민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국제 자연보전연맹 입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적색 목록 동물을 합법적으로 사냥하는 나라로 분류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로드킬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고라니가 많지만 막상 고라니 연구를
하려고 하면 기본 자료가 부족하고 살아 있는 고라니를 접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라니가 사는 나라에서
고라니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건 너무 황당한 현실이다.
중국 동물원에 갔는데 판다를 보기 어렵다거나, 호주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보기 어렵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생태에 대한 연구와
보존의 기회를 주는 곳인데 정작 우리나라 동물원에 고라니 같은 한국 토종 동물이 없다는
건 무척이나 서글픈 일이다. 다행히도 국립생태원에 고라니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백제 전설 속의 고라니와 스토리텔링을 잘 해서 고라니를 보러
국립생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좋겠다.
돼지가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것 때문에 돼지가 더럽다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 돼지는 매우 깨끗하게 지내는 공물이다. 덩치가 크면 더운 날씨에
몸속의 지방과 근육에서 생기는 열을 바깥으로 내뿜기 어렵다.
돼지는 땀샘이 부족해서 땀을 잘 흘릴 수 없기 때문에 진흙탕에서 뒹굴며 목욕을 한다.
진흙이 몸에 붙으면 물처럼 쉽게 마르지 않아 열기를 오랫동안 식혀주는 것인데,
진흙으로 더위를 버티는 돼지를 더럽게 여겨 "돼지우리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돼지에게 실례인 것 같다.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며 미움을 받게 된 것이 대부분의 갯과 동물과 다르게
눈동자가 고양이처럼 세로로 가느다란 모양이라 요사스럽고 사악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여우에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사람이 보기에 개를 닮은 몸에 고양이 눈을 한 여우가
낯설어 나쁘고 불길하게 생각했다니 말이다. 고양이와 여우의 눈동자는 밝은 때는 가늘어지다가
어두우면 두꺼워진다. 사람이나 개는 눈동자가 둥글어 빛을 세밀하게 조절하기 어려운 반면,
고양이와 여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적응해 사물을 분별하기에 유리해서
사냥도 잘 하고 적을 피하는 데도 능숙하다.
세계 곳곳에서 잘 살아가는 여우가 유독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간접 중독 때문이라니
안타까웠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동안 쥐 박멸 정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어
쥐약이 무분별하게 살포되었는데 쥐약을 먹은 쥐들이 산으로 가고 그 쥐들을 잡아먹은
여우들도 전멸하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 좋은 일이라며 추진한 공공정책이
무심코 뜻하지 않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파괴를 불러오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니
자연환경을 연구하기 위한 과학기술에 충분한 투자가 확보되어 과학기술정책이
현명하고 신중하게 펼쳐지면 좋겠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다람쥐 수출 산업이 성황을 이루면서 한국 다람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일부 무역 회사에만 수출 허가를 내주게 되자, 허가되지 않아서 수출길이 막힌
다람쥐 9000마리가 방치되어 우리에 갇힌 채 굶어 죽은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니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야생 동물들은 정말 우여곡절 끝에 힘겹게 살아남은 생명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했던 화전민들이 산속에서 다람쥐 집을 찾아내 다람쥐가 숨겨둔
밤, 잣, 호두 같은 열매들을 꺼내 먹으며 끼니를 이어가고, 다람쥐 집에 있는 어미와 새끼
여러 마리를 한 번에 잡고 전문 다람쥐 사냥꾼도 있었단다.
한국 다람쥐의 귀여운 모습에 반한 일본과 유럽에서 인기 폭발이라 다람쥐가 돈이 되던 시절 때문에
청설모는 인기 없는 나쁜 동물 취급을 받게 되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오히려 청설모의 털과 가죽이 명품으로 사랑받았다니
참 인간이 간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희귀하게 생겨서 미움을 받기도 신성시 여기기도 하고
귀엽게 생겨서 이쁨을 받기도 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야생 동물들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버티고 잘 적응해온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한반도의 야생 동물들이
더 이상 인간의 개입에 의해 멸종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책임의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다친 동물, 사고를 당한 동물,
나이가 많은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 안식처를 통해 지역 주민과 방문객 누구나
동물을 가까이 접하여 자연에 대한 관심과 생명 존중 의식을 높이며
협력과 연대의 분위기가 한반도 구석구석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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