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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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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엄청난 다작가다. 서점가엔 쉬지 않고 그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의 이름을 잊을 새도 없이 새 작품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 이름이 아니라 무슨 모임의 이름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게다가 그 작품들이 대부분 중박 이상을 치는 걸 보면, 놀라움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영화화 되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사실 그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만, 그는 소설가라기 보다는 스토리텔러에 가깝다. 그의 소설은 마치 시나리오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써놓은 것 같다. 꼭 필요한 행동묘사나 심리묘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스토리는 대사로 처리된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장면들은 쉽게 상상 가능하고, 쉽게 현실화 가능한 장면들이다. 복잡한 상징성, 이미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게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를 원하는 대중 독자들에게 그가 어필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의 장기인 ‘이야기만들기’를 정면에 부각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소설은 조금 특이한 경향성을 띤다.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의 대부분의 소설에선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미스터리가 발생하며, 그것이 해결된다. 정통적인 방식의 범인찾기가 아니더라도 그의 소설의 기본 골자는 미스터리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한 미스터리물이 아니고, 거기에 사랑과 같은 인간적 감정을 담아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에 주력한다. 그의 이런 스타일을 가장 단정적으로 볼 수 있는 소설이 그 유명한 ‘용의자 X의 헌신’이다.

그 소설은 흔한 추리물의 성격을 가졌다. 살인사건이 생기고, 그것을 숨기려는 알리바이가 동원된다.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형사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 수수께끼 풀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한 남성의 헌신적 사랑에 촛점을 맞췄다. 덕분에 독자들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와 반전이 일으키는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인간적인 감동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소설 ‘새벽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소설은 추리보다는 드라마에 더 무게를 두었다. 사실 내용은 별볼일 없다. 불륜을 하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는 과거에 어떤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소설은 불륜을 하는 남자의 고뇌, 그것이 인륜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욕망적 속삭임에 굴복해버린 인간의 좌절을 그리면서도 한 편으론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의 전모를 드러날듯 드러나지 않게 감추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남자가 불륜을 하는 상대도 그녀의 아버지가 불륜을 해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거나, 때문에 남자의 딸도 같은 상처를 공유하진 않을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라던가. 남자의 아내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의심을 억누르고 그를 평소와 다름 없이 맞아들이는 장면 등에선 흔한 불륜의 소제에서 신선함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섬세함이 잘 드러났다.

소재가 소재다보니, 왠만한 실력을 가진 이야기꾼이 아니고서야 이 소재를 재미나게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또한 그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 듯 싶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나 로멘스라고 보기에도 어설프고,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에도 반전의 묘미가 없는 싱거운 작품이었다. 다만, 결혼을 한 남자의 입장에선 이 소설이 얼마나 달콤하게 읽힐지 모르는 일이다.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독자적인 경향성을 가진 작가의 특색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라 이전의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었던, 너무도 재미나고 놀라웠던 작품들에 비해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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