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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이 책을 구입한 지 근 7년 가까이 되었다.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장 한 켠에 모셔놓고 새로 책을 구매할 때마다 빚을 진 심정으로 뿌옇게 먼지만 쌓여가는 책을 힐끗거리곤 했다. 그럼에도 여태껏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은 동양 고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책을 펴면 가득 보이는 한문들, 혹은 논어, 맹자, 장자 따위의 이름들은 시작부터 나의 기를 꺾었다.
근래 들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겼다. 소설만 줄창 읽어댄 내 목서 목록을 보고 오래도록 자기 반성을 한 뒤였다. 이왕 읽을 거 서양 철학서보다는 동양서를 좀 읽어보자는 각오를 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띈 것이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이었다. 그래, 한 번 읽어보자. 다짐했다. 고전 읽기는 엔간한 내적 필연성이 없으면 쉬이 도전하기 힘든 부분인가 보다.
7년 동안 책장에 꽂아둔 것이 무안하도록 책의 내용은 가벼웠다. 동양 철학에 관심 있는 중, 고등학생. 혹은 대학 새내기들에게 딱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사실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 따위를 다 다룬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책은 관계론에 초점을 맞춰 동양 고전들의 특징이나 배경, 주요한 구절 따위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저자가 동양 고전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서론에 밝히고 있듯이 책은 고전을 해석하고 적당한 주를 다는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작업을 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시선에 맞춰 구절을 해석하고 강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일반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견을 덧붙이고, 그에 어울리는 추가적인 해석을 부가한다. 이러한 방식에는 장단점이 고루 있겠다. 함축적인 동양고전의 서술 특징 때문에 쉽게 설명이 와 닿지 않는 학생들에겐 여러 가지 비유나 다른 사례로 논지를 보강하는 이 책의 방식이 유익하겠다. 하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색채가 많이 묻어나기에 본격적인 동양 고전 읽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불만을 품을 소지도 있겠다.
책에 소개된 어구들은 약간의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것들이다. 논어 '학이'편의 첫구절인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장자의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같은 구절들이 그렇다. 이 책이 빛나는 것은 고전의 전문가가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신영복이 저런 구절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동양 고전들을 소개하고, 고전 간의 관계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에 본격적인 고전 공부를 하기 전에 몸풀기로 읽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같은 책을 통해 철학적으로 일가를 이룬 분이 아닌가. 그를 통해 해석된 동양 고전은 또 그 나름의 색채로 매력을 갖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