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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는 이제 서점가에서 서가의 한 부분을 확실히 점유하고 있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그 자리까지 오르는 시간은 독자 입장에선 굉장히 짧았다. 첫 작품 ‘위저드 베이커리’로 청소년 문학의 미래를, 두 번째 작품 ‘아가미’로 문학에 동화적 상상력을 접목시키는 기법을 훌륭하게 보여주며 그녀는 단 두 작품 만에 유명 작가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단 시간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떨쳤음에도 그녀에겐 단편집이 없었다. 물론 모든 작가가 단편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작가의 문학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하기 위해선 단편집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단편집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주제 사라마구 같기도 하다. 베르베르가 단편집 ‘나무’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그녀 또한 문학적 효용 안에서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문학적 촉매제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나 ‘눈 먼 자들의 도시’처럼 원인을 불문하는 사건에 소설 속 인물을 던져 놓고 그곳에서 태동하는 서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녀의 소설이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그것을 통해 국내 본격 문학들이 닿아 있는 주제의식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마치…같은 이야기’는 그녀의 색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폐혀가 되어버린 S시는 새로 취임한 시장에 의해 비유가 금지된다. ‘비유의 금지’라는 모티프는 SF적 상상력인 베르나르와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소설집 내내 이어지는 만연체는 조금 거슬리기도 하면서, 그녀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사건들을 비틀고 조소하는 풍자 문학으로서의 요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만연체의 문장이 가장 강조되는 작품은 ‘타자의 탄생’일 것이다. 이 단편에선 어느 구멍에 빠져서 상반신만 밖에 내놓은 채 갇혀버린 한 인물이 갑자기 등장한다. 어떤 전문가도 그를 그 구멍에서 뺄 수 없었고, 그는 집중되었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점점 벗어나 무형화 되어간다. 그의 ‘구멍은 어디에나 있어요’라는 외침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이러한 만화적 상상력은 ‘상상력을 보여주기 위한 상상력’에 머물지 않는다. 나는 그게 구병모 작가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조장기'는 히치콕의 ‘새’를 연상시키는 첫 장면으로 서두를 연다. 이 소설은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새들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모티프를 사용한다. 또한 ‘재봉틀 여인’에선 무엇이든 꿰멜 수 있는 (설령 그것이 감정적 아픔이라 할 지라도) 여자가 등장한다. ‘곤충 도감’에는 전자팔찌를 넘어선, 범법자의 성적 흥분 수치가 올라가면 그 호르몬을 감지해 숙주를 먹어 치우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인공적인 생물이 등장한다. ‘어떤 자장가’에선 자신의 자식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오븐에 구워 버리고, 냉장고에 집어 넣는 여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매력적인 모티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소설의 주제의식을 심화하기 위한 아이템으로 사용된다.

구병모는 이야기의 핵심에 다가가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단순히 서사적인 방법 뿐 아니라, 현실에선 불가능한, 허구성을 극대화시킨 만약(if)을 주요한 서사 기법으로 차용했다. 그녀의 소설은 딱딱하지않고, 가능성에 대한 매력이 가득하다. 그녀의 단편들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오래도록 대중에게 사랑받을 작가가 될 것이란 확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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