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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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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읽고 나면 이후에 내가 노트에 풀어내야 할 이야기를 방대하게 선사해 주는 가 하면, 어떤 책은 읽은 후에도 도대체 어떤 말로 책을 정의내려야 할 지 막막하게 만든다. 김인숙의 소설을 읽은지 벌써 1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1권의 문예지를 읽었고, 1권의 교양서적을 읽었다. 그 와중에도 김인숙의 소설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젠 그 내용마저 가물하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생각하다가도, 그럴 여력이 없어서 그만둬 버리고 말았다. 감성적인 사랑이야기가 구미에 맞지 않는 독자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이다. 진과 이야나의 사랑이야기를 전경으로, 진과 유진의, 이야나와 수니의 사랑 이야기가 후경으로 흐른다. 진과 진은 같은 이름의 연인이다. 남자인 진에게 성까지 붙여 유진이라 명명함으로, 둘은 구분된다. 저 멀리 존재하는 섬에 매료되어 버린 유진은 그곳에서 젊은 여자 아이를 하인으로 두고 살아간다. 유진을 만나러 먼 길을 날아간 진은 유진과 하녀가 예삿관계가 아님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 하녀의 배에 유진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다는 사실도. 사랑에 대한 배신과 좌절,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살의는 평화로운 섬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진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진의 손에 묻은 피와 함께 모든 것이 뒤흔들렸다.

7년 뒤, 섬에선 7년 전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진이 일어난다. 7년 전의 지진이 진의 내부에서 발원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외부의 것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쓰나미가 밀려와 도시를 집어삼켰다. 사실 그 장면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진과 진의 하나이지만 둘일 수 밖에 없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소소히 흐르던 와중에, 때아닌 지진과 쓰나미라니. 잔잔한 멜로물에 끼얹어진 블록버스터의 향기는 감성적 어조에 푹 절여저 지쳐가던 나에겐 청량제 역할을 했지만,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끔찍한 폐허와 살육의 공간이, 이야나와 진, 두 남녀가 원초적인 인간상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분명했다. 원초적이라는 것은, 성욕과 같은 본능적인 것이라기 보단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숨겨왔던 좀 더 인간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만이라는 케릭터에 주목했다. 만은 의붓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섬에서 부유한 여자를 만나 섬 밖으로 나가길, 그녀에게 구원받아 자신도 부유해지길 꿈꾼다. 하지만 섬에서 그의 발림에 넘어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여자들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만을 잊어버렸다. 만에게 남겨진 유일한 희망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그의 의붓어머니였다. 하지만 그녀는 유산 상속에 부가조항을 달았다. 자신이 자연사로 죽을 경우에만 만이 유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만이 자신을 죽일 수 있었으므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만은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 헤메인다. 시체를 찾지 못하면 실종으로 처리되어 상속이 물건너갈 것이었다. 그는 울부짖으며 어머니가 호송된 병원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언뜻 보면 어머니의 죽음 그 자체보다, 어머니가 실종으로 처리되어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붓어머니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비로소 어머니가 죽음 앞에 놓였을 때에야 발견되었다.

폐허가 된 도시.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생명이 존재했던 흔적. 그 사라진 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소설이 안겨준 쓰나미나, 지진의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정말로 죽음 앞에 당도했을 때에야 알아챌 수 있는 진귀한 감정을 소설은 담담히 풀어놓고 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혹은 그로 인한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겐 이들과 공감할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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