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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달과 게'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제7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 제6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제12회 오야부 하루히코 상 수상, 제23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화려한 이력의 작가다. '달과 게'로는 2011년 14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나오키 상이 훌륭한 대중소설에게 주는 상이기도 하고, 작가의 이력을 보면 미스터리, 추리 쪽 수상이 많기 때문에 이 소설도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성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이 소설은 대중 소설이라고 하기엔 맥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의 심도가 얕다. 치밀한 반전이나 긴박한 스릴러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책 구입을 미뤄야 할성 싶다. 다만 이 소설은 대중문학에 적을 두었던 작가가 풀어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본격문학적인 기질을 두루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훌륭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은 어린아이들이 주요 등장 인물이다. 주인공인 신이치는 암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사고가 난 배에 탔다가 한 쪽 발이 잘린 할아버지 쇼조와 미망인 스미에가 신이치의 가족이다. 신이치는 외지에서 시골로 이사온 후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에게 있는 친구란 역시 외지에서 이사온 하루야 뿐이다. 둘은 매일 바닷가에서 신이치가 만든 블랙홀(패트병 머리 부분을 잘라 몸통에 거꾸로 끼워, 들어온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통발과 같은 것)로 물고기를 잡는다. 주로 잡히는 것은 소라게 뿐이다. 그 둘이 하는 소일거리는 그 소라게를 라이타 불로 지져서 빠져나온 소라게를 불태워 죽이는 일 뿐이었다. 둘은 뒷산의 움푹파인 돌에 바닷물을 붓고 소라게를 키우며, 소라게를 불태워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불타 죽은 소라게가 자신의 죽음과 맞바꾸어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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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생각은 안 드나? 그거는 역시 소라검님이 죽었기 때문 아이겠느냐고. 자기가 희생해서 우리 소원을 들어준 거 아이겠느냐고. (…) 그케도 항상 그래 운 좋게 죽어 주지는 않겠제? 요전에는 우연히 죽어뿌서 그리 됐지만, 그런 경우는 적다카이. 그라이까……." pp.12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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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소라게를 죽이며 서로에게 자신의 은밀한 소원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단순히 고백의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는 암묵적인 놀이의 형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는 마치 소라게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듯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두 아이의 심리적 움직임을 잘 읽어내어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라게의 죽음과 소원 성취의 과정을 은밀히 감추며, 약간의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시킨다. 그 방법상의 문제가 대단히 교묘해서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한채 그 강약조절의 박자에 맞춰 작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게 된다.
하루야는 자신을 계속해서 폭행하는 아버지와 살아간다. 그리고 신이치의 어머니는 그의 같은 반 학우의 아버지와 은밀한 관계를 가진다. 그 남자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의 배가 사고가 난 날, 그 배에 타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 신이치의 가슴에 무겁게 다가왔다. 그 남자의 딸인 나루미는 자신의 아버지와 사귀는 것으로 짐작되는 여자의 아들에게 접근한다. 정말로 자신의 아버지가 사귀는 여자가 신이치의 어머니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원인이 된 신이치의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인간관계는 세 아이의 구도를 미묘하게 섞어내고 있다. 그리고 세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도, 나루미에게 신이치과 관심을 가진다던가, 나루미는 오히려 하루야에게 마음을 보인다던가, 신이치는 둘의 사이를 질투하고 하루야에게 적의를 갖는다던가 하는 서로간의 질투와 반목이 세심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신이치는 자신의 속에 일어나는 본성을 조금씩 드러내게 된다. 이를테면 나루미와 친하게 지내는 하루야가 다쳤으면 좋겠다. 라던가 자신의 어머니와 사귀는 남자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상상 속에선 누구나 잔혹한 살인마가 된다.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가 아닌 상상 속에선 누구나 사람을 죽이고 토막내어 바다에 던지고 땅에 묻는다. 신이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맘에 들어하고 있는 나루미가 하루야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넘보는 남자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없어지길 빌었다. 그 바람이 소라검님의 앞에서 내뱉어진 순간, 운명의 시계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 상상이 현실로 옮겨가는 찰나의 순간에, 소설은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바로 그 본성을 제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이 튀어나오게 된다.
소설은 심장을 뛰게 하는 서스펜스도,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반전도 없다. 다만 인간군상 속에서 읽혀지는 그들의 심리적 얽힘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본능적 성질의 질투와 분노, 살의 등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기록된다. 이것은 단순히 소설이 몇몇 아이들의 반복적인 행로만을 그리며 한정된 무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롭게 느껴지며 흥미도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된 아이. 혹은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아이. 어찌보면 상투적일 수 있는 두 아이의 속성은 '소원 빌기'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주기'라는 놀이와 만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책 뒷머리의 추천의 말에 적힌 것처럼, 이 소설은 '대중 문학과 순수 문학의 경계를 지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중 소설의 것이라곤 볼 수 없는 깊은 주제의식과 심리묘사가 치밀하게 짜인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