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오니의 목표는 평온이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과 화해하여 평온을 찾는 것. 그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욕구를 거부하는 콥트교 수도사들이 얻고자 애쓰는 것과 같은 행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방념의 상태, 즉 풀어 놓고, 흘러가게 하고,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사소한 것, 일상에서 맛보는 잔잔한 기쁨에 온 마음을 쏟았다.-21쪽
그는 아주 큰 잔에 에스프로소를 내리고 거기에 코냑을 부었다. 질이 떨어지는 에스프레소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코냑은 마음을 열게 한다. 이 칵테일을 세 잔만 마시면 무슨 일이든 겁날 게 없다. 그래서 그는 세 잔을 거푸 마시고 택시를 탔다.-82쪽
사람들은 오랫동안 못 본 사람을 뭘 보고 알아보는 걸까? 그 사람이 에전의 그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이 달라졌는지, 아예 다른 사람인지, 뭘 보고 확신 할 수 있는 걸까? 상대를 자세히 뜯어보면 주름을 알아볼 수 있다. 주름 밑에는 모든 감정의 변화와 웃음과 슬픔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내는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 피부는 달라진고, 다른 피부가 된다. 피부는 표면적인 것이지만 주름은 그렇지 않 다. 주름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독특한 것이 되어 간다. -83쪽
브리오니는 커피 잔을 들었다. 하지만 커피가 거의 식은 상태라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찬 커피는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다. 커피의 온도가 높아야만 혀가 달콤한 성분을 감지할 수 있다. 손님에게 찬 커피를 내놓는다는 건 곧 쓴맛만 보여주겠다는 얘기다.-132쪽
빛깔만 봐도 특성을 알 수 있어요. 차는 투명하고, 무슨 색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게 모호하고, 빛에 노출되는 정도와 농도에 따라 색이 달라져요. 반면에 커피는 색이 곧 커피의 정체를 드러내 주지요. 차는 뜨거운 물과 필터만 있으면 되고, 천 년도 넘는 세월 동안 그 자체로 만족해 왔어요. 하지만 커피는 기계를 요구하고, 정교한 추출을 요구하고, 갈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 장비를 요구해요. 차는 영감을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무욕의 상태에 이르게 해 주지요. 부처 같다고나 할까요. 반면에 커피는 격앙시키고, 목적의식을 갖게 만들고, 도전하게 만들어요. 모하메드처럼 세계 지배를 요구하지요 -322쪽
그가 차를 좋아한 건 오로지 찻잔 때문이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중심을느끼고, 그 음료의 중심을 느끼고자 두 손으로 받치고 들었다 내려놓는 극동 지역의 찻잔. 손잡이가 없거나 두께가 아주 얇은 찻잔은 정신 집중을 요구한다. 차를 마실때 문제가 되는 건 존재와 지각과 초월이다. 커피의 경우는 다르다. 내용물을 보호하고 열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잔은 두껍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안전을 위해 잔 받침을 든다. 사람들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잔을 입술에 갖다 댄다. 커피를 마실 때는 오로지 잔에 담긴 내용물과 그것이 우리 내면에 풀어 놓는 효과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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