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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지식 - 괴팍한 과학자들의 기발한 발명, 발견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박규호 옮김 / 북로드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분필로 칠판에 줄을 그으면 소름끼치는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신경을 자극하는 고음의 이 소리에 우리들이 느끼는 불쾌지수는? 식당 등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속이 뒤집힐 만큼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분노지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꾸준히 전달되는 야릇한 호기심 중에 발이 크면 무엇도 크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래?
예로 든 것들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한 것들. 그래서 대부분 ‘그런가보다’ 넘어가고 말거나, 궁금하긴 하지만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그치고 말기 일쑤다. 하지만 그냥 흘려버리지 못하고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실험해 어떤 결과를 반드시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웃는 지식>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매년 10월 하버드대에서 발표되는 배꼽 잡는 노벨상 패러디인 '이그노벨상'을 혹 아시는지? 이 상은 한번 보면 웃기지만, 두 번 보면 뭔가 생각하게 하는 과학적인 업적에 수여된다. 수상자에겐 ‘생각하다 떨어진 사람’이 그려진 상장과 은박지메달이 주어진다. <웃는 지식>에는 이들의 배꼽 잡는 실험들이 소개돼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건기 때 나오는 올챙이들의 맛에 관한 비교 연구
‘어떤 올챙이가 맛있을까?’ 캘리포니아의 동물학자인 리처드 워서서그는 이 지독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하기 위해 코스타리카 반도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올챙이 8종을 모았다. 그리고 올챙이를 먹고 올챙이 맛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지원자 11명을 모았다.
참가자들은 2시간 30분 동안 규칙에 맞게 올챙이를 시식했다. 시식 중에 “이 올챙이 맛은 어떻더라!”고 절대로 말하면 안 되는 게 규칙이었다. 또한 올챙이를 먹는 방법까지 정해져 있었다. 또한, 각 실험자마다 무작위적인 순서로 올챙이가 제공되었다.
먼저 올챙이 꼬리 부분을 이빨로 조심스럽게 깨물고는 피부가 찢어지지 않도록 껍질만 가볍게 씹어야 했다. 그렇게 15초가 지나면 20초 동안 마음껏 씹으면서 살코기 맛을 마음껏 음미, 올챙이를 완전히 삼켜서도 안 되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다시 뱉어내야 했다.
2명의 여자와 9명의 남자 중, 흡연자 2명이 탈락했다. 1명은 올챙이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또 다른 1명은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맛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까다로운 실험 규칙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 왕두꺼비의 검은색 올챙이들은 껍질 맛이 유독 나쁜 걸로 판정 났다. 몇 종의 개구리 올챙이들은 살코기에 이빨을 완전히 박았을 때야 역겨운 맛이 나기도 했는데 실험자들마다 껍질 맛은 그럭저럭 좋다고 했다.
가장 맛있는 올챙이는 겉모습이 제일 추악한 암갈색의 개구리 올챙이. 껍질도 꼬리나 살코기 모두 먹을 만했다. 실험자이자 수상자인 워서서그는 아울러 말한다. 사람들이 맛있어하는 알은 다른 포식자들도 맛있어한다고.
“우리는 양서류들이 성장할 때 아주 나쁜 맛이 나는 발달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1922년 실험에서 회갈색두꺼비 부포부포의 알을 다른 개구리 알에 뿌렸을 때는 심지어 개구리알들이 모두 죽어버렸지요. 마찬가지로 다양한 새들의 알에 대한 포식자들의 반응도 모두 똑같은 정도로 좋거나 나쁘거나 합니다.” (리처드 워서서그, 2000년 이그노벨 생물학상수상)
우리나라에도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수상자가 있다!
전체적인 실험 결과, 보호색이나 속임수를 통하여 자신을 잘 보호하는 올챙이 일수록 한결 맛이 좋았고 색깔이나 행동이 눈에 잘 띄지만 아예 적 앞에서 도망칠 능력이 없는 올챙이들은 아주 맛이 나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올챙이만이 아니라 스컹크 같은 동물들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고약한 냄새를 발산한다. 열을 내는 것들도 있다. 가장 작은 전갈이 가장 독한 독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작고 약하기 때문에’ 위협받기 쉬운 생명을 위한 진화의 결과는 아닐런지.
올챙이 맛 실험은 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실험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실험은 작고 ‘연약한 수중 동물들의 생존과 방어 전략’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준다. 생물학적인 자료로서는 물론 우리 주변을 둘러 싼 수많은 문제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혹시 아는지?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우리에게 낯선 상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수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진지한 과학만이 인류에 기여? 천만의 말씀! 과학도 유쾌할 수 있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 발밑의 우물에 빠지는 코미디를 연출했고,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벼락 맞아 죽은 놈’이 될 위험을 감수했다. 지나치게 진지해서 때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황당하기에 오히려 감동으로 다가온다.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진지한 유머에 박수를!” (이은희,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지은이, 과학칼럼니스트)
<웃는 지식>에서 만난 과학자들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은 얼핏 보면 유쾌한 웃음뿐, 다시 보면 너무 진지하여 호기심 해결을 위한 열정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실험실에서나 딱딱한 이론을 위하여 존재할 것 같은 과학이 이렇게 유쾌하고 존경스러울 수 있다니!
이 책은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던가! 독일, 오스트리아 국영방송에서 지난 6년 동안 ‘이그노벨상’ 수상작들을 소재로 생방송,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던가! ‘이그노벨상 수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아깝게 탈락한 기발한 연구’들을 한 달에 한편씩 칼럼으로 연재하는 유명한 잡지도 있다던가!
노벨상이 높고 높다지만, 이그노벨상도 그와 비견할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들이 관심을 두고 막대한 시간과 열정으로 실험대에 올린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사롭고 하찮게 여긴 것들, 고상한 지식인들이 외면한 것들이어서 더 유쾌하고 높아보였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탁월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맘껏 굴리거나, 완전히 비틀어 과학적인 사고 유발과 인류의 생활에 공헌하는 괴팍한 괴짜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메마른 호기심에 기름칠을 해줄만한 소재들 이라고 할까?
우리들은 흔히 아이들의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어른들에게도 호기심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이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윤택한 삶의 조건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실험목록 중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남자가 여자보다 섹스 파트너가 4배나 많은 이유▲코골이는 공부를 못해?▲커피와 비스킷의 과학적인 궁합▲회색 곰은 콜라가 무서워!▲밑줄 긋기는 정말 공부에 도움이 될까?▲모차르트씨! 입은 배설기관이 아니에요!▲직업만족도는 유전자 탓?▲매운맛으로 분노측정하기▲닭도 미남을 좋아한다?▲모기의 독특한 입맛▲추워야 길고 강해진다?▲칠판 긁는 소리의 불쾌지수▲발이 크면 다른 것도 크다고?▲거머리의 치명적인 마늘사랑(45가지 실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