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 빛나는 어린이 문학 5
이주홍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집 옆에 서있는 빨간 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숙희. 그러던 어느 날 숙희는 우체통 옆에서 소꿉질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그 통의 입을 벌리더니 무언가를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땅!'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숙희는 우체통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손도 넣어보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쫒아 들어가 어머니께 물어본다. 이런 숙희에게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보낼 편지를 넣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숙희는 고비(편지 따위를 꽂아두는 물건)에 꽂혀있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보낸 편지들을 한참 동안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두곰두곰'(두고두고 곰곰이) 미소 짓게 하는 '우체통과 개떡'

'저 편지들도 저통에서 내어 왔을까? (중략) 옳지, 그 통에서 땅속으로 쭉 구멍이 뚫려있구나. 그래서 그것에 편지를 넣으면 땅속 구멍으로 일본에 있는 아버지께도 가고, 진주 아저씨께도 편지가 갈 수 있는 거야. 나도 아버지께 편지를 보내보면 어떨까?'

숙희는 갑자기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졌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몇 달째 편지도, 돈도 보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갓집으로 식량을 구하러 가셨는데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산 너머 고개에는 여우도 많다는데 어머니는 왜 안 오시지? (중략) 옛날에 아버지가 논에 물을 대고 오셔서 개떡을 무척 맛있게 잡수셨는데, 이 개떡을 좀 보내드리면 어떨까? 무척 맛있게 잡수실 거야.'

숙희는 어머니가 가시면서 쪄주고 간 개떡을 뜯어먹다가 언젠가 맛있게 잡수시던 아버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개떡을 아버지께 보내드리고 싶어서 싸고, 또 싸고 여러 겹 똘똘 싼다.

'그런데, 개떡이 아버지에게 가는 동안 쉬어버릴지도 몰라. 어떡해?'

고민하던 숙희는 몇 달 전, 아버지의 옷이 일본의 공장에서 소포로 왔을 때 아버지의 옷을 싸고 있던 기름종이를 생각해낸다. 아버지께서 입고 가셨던 옷이 그대로 온 것은 기름종이에 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숙희는 아버지의 옷을 쌌던 기름종이에 개떡 뭉치를 싸고 또 싼다.

그리고 너무 어려서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숙희는 아버지가 보내준 편지에서 주소를 오려 노끈으로 소포에 칭칭 동여맸다. 숙희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아무도 모르게 우체통에 넣었다. 개떡은 '땅'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이제 얼마 후면 우체통 아래 뚫려있는 땅속 길을 통해 아버지께 개떡이 갈 거야. 그럼 무척 좋아하시겠지? (중략) 숙희야, 네가 보낸 개떡은 참 잘 먹었다. 어찌 그리 맛이 좋은지, 아까워서 두고두고 먹는다. 아마 아버지는 이런 답장을 보내 주실 거야.'

다음에는 어떤 장면이 나올까? 숙희 아버지는 어떤 답장을 보낼까?

하지만 다음 날 숙희네 집에 개떡뭉치가 배달되고, 개떡을 받아 든 숙희는 너무 슬퍼서 울먹울먹,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이렇게 말한다.

"앙, 아버지가 이걸 왜 돌려보냈을까. 맛이 없든가 보이. 아이그 참 미안해서."

그렇게 기다렸던 아버지 답장이건만…. 숙희 덕분에 맛있게 아껴가면서 먹고 있다는 말 대신 개떡을 답장으로 돌려보낸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맛없는 개떡을 보낸 것 같아 도리어 아버지에게 무척 미안해한다.

책을 읽는 동안 숙희의 이 한마디가 얼마나 좋던지…. 아버지를 위하고 그리워하는 딸의 애잔함도, 요즘과 전혀 다른 말투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함과 따뜻함도 담뿍 느낄 수 있는 표현이었다.

또한 우체통에 얽혀 있는 수많은 추억을 잠시 떠올려 보게 하는 동화였다. 요즘 아이들은 숙희처럼 우체통 밑 땅속으로 수많은 길이 나있어서 그 길로 편지가 오고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숙희를 '바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숙희의 마음이 얼마나 곱고 순수한지, 옆에 있으면 꼭 끌어안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 애잔함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다고 할까?

'우체통'이란 제목의 '숙희와 우체통 이야기'는 <우체통과 이주홍의 동화나라>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동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으로 돈벌러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애잔한 마음과 우체통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잘 표현하고 있는 동화집이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 그림까지 토속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이 동화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세 편. 나머지 두 편은 어떤 이야기들일까? '북치는 곰'은 귀신가족 이야기인데, 섣달 그믐날에서 설날로 이어지는 날 밤에 신발을 감추고 문에 체를 걸어두었던 세시풍속에서 소재를 잡았다. 재미있다.

'은행잎 하나'는 은행나무와 은행나무 잎을 엄마와 아가에게 비유했는데, 더 성장하기 위해 은행잎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그렸다. 은행나무 잎이 처음으로 날아든 곳은 봄에 길을 잃었던 아이의 스케치북. 아름답고 따뜻한, 가을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는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여운이 오랫동안 남을 이야기들이다. 맑고 순수함, 숙희의 애잔함이 마음을 붙들었다.

단어 하나, 표현하나, 그림까지 모두 곱고 고운 이 동화집은,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동화의 씨앗을 뿌린 이주홍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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