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체 게바라'가 너무 유명했기 때문일까? 부끄럽게도 몇 달 전 <카스트로의 쿠바>를 읽기 전까지 쿠바혁명에 대한 관심은 ‘체 게바라’를 중심으로만 돌고 있었다.

<카스트로의 쿠바>(황매)는 쿠바 혁명 4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사진집으로, 체 게바라라는 유명세에 가려진 쿠바 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바혁명의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목숨을 건 혁명의 가장 큰 힘이었던 쿠바민중에 대해 궁금하게 하였다.

쿠바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혁명이란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들의 혁명은 끝난 지 이미 오래. 과거의 쿠바인들이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쿠바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때문에 선택한 것이 쿠바 기행문 <느린 희망>이다.

시장과 경쟁의 수레바퀴대신 인간의 걸음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쿠바

작가가 여행을 시작하는 곳은 쿠바의 서부에 위치한 비날레스다. 이곳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1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비날레스 벌판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것들은 융기형 카르스트 지형으로 ‘모고테(Mogote)’라고 불린다. 언뜻 보아서는 우리의 제주 ‘오름’과 그 모양에서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중국의 구이린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연상시킨다’고 여행자는 그 느낌을 말하고 있다.

▲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비날레스지역
ⓒ 유재현
비날레스 주변은 화학적인(농약이나 비료 등) 농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곳. 사람들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변지역들도 오래전의 순수한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고. 이점을 소중히 여겨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생태관광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최첨단 통신기기속에서 촌각을 다투는 경쟁으로 살아가는 현재, 비날레스 농경지에서는 쟁기질을 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일구고 가꾸어낸다. 최소한의 오염도 허용하지 않고.

워이, 워이” 우리들은 이렇게 소를 몬다. 그러나 쿠바사람들은 “아레겁, 아레겁” 그들의 쟁기 우리와 다르다. 널따란 판자 밑에 두 쪽의 날을 붙인 우리들이 겨울에 타고 노는 눈썰매와 흡사하다. 그 위에 사람이 타고 쟁기질은 이루어진다.

"아레겁 아레겁... 그 뒤를 분주히 따르는 것들이 있으니 닭들이다. 수탉, 암탉, 큰닭, 중닭, 작은닭 가릴것 없이 모여든다. 땅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흙속에서는 온갖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기회를 놓칠세라 모여든 닭들에게 밭은 훌륭한 모이터인 것이다. 아하, 유기농이란 간단한 것이다. 논을 갈고 밭을 갈면 새와 닭들이 모이는 농사가 유기농인 것이다."

쟁기질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소박한 모습. 그러나 쟁기질하는 소를 뒤따라 다니면서 벌레를 쪼아 먹는 닭들이 무척 인상 깊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모이나 벌레를 주워 먹고 자라던 닭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쿠바는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제공 한다

쿠바가 자랑하는 것은 도시 유휴지를 이용한 유기농업. 도시농업과 유기농업의 선진적이고도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쿠바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교육이다.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나 카리브해지역을 통 털어 가장 수준 높은 교육을 실현하는 곳.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교육만큼은 세계가 인정하는, 즉 교육선진국이다.

배급을 받고 살아가는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 혁명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궁핍한 나라 쿠바. 혁명전이나 달라진 것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쿠바민중들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쿠바정부는 “쿠바는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제공 한다”라는 구호아래 적극적인 교육정책을 하고 있다. 미국의 원천봉쇄와 같은 어려운 조건도 있었지만 정부의 교육부분 실질적인 정책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 한국의 농촌에는 폐교가 널려가고 있지만 쿠바에서는 가르칠 학생이 있는 한, 산꼭대기에고 학교를 짓고 교사를 보낸다.(쿠바 초등학생들)
ⓒ 유재현
“쿠바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가난한 나라, 고질의 교육’으로 일컬어진다. 한나라에 있어 가장 적절한 교육예산으로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것은 GDP6%,OECD 가입국인 한국이 2004년에야 겨우 5%를 넘는 교육예산을 편성하고 북치고 장구 칠 때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섬나라에서는 몇 십 년 전부터 GDP10%가 넘는 예산을 교육에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면 최소한 교복과 학용품 그리고 급식정도는 무상으로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쿠바라는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책속에서

책속에는 그들의 교육정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지체장애인이나 산간벽지처럼 교육이 소외될 수 있는 계층에는 더 많은 투자와 현실적인 지원을 한다. 그러다보니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사이의 학력차이는 전혀 없고, 교육평가를 할 경우 쿠바 전 지역이 비슷한 수준을 늘 유지하고 있다.

나 역시 학부형이어서 교육에 늘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쿠바의 교육정책이 신경 쓰이도록 부러웠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앞서고 있지만 교육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많은 부분을 참고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쿠바의 교육정책은 아무래도 부럽다.

▲ 쿠바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꼭 필요한 희망만 선택하는, 건강한 희망이 있는 나라다
ⓒ 유재현
이밖에도 정치 풍습, 문화 등 사진과 짧은 에세이 사이에 쿠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쿠바의 많은 부분을 알 수 있는 책이었다.

여행자를 통하여 만난 쿠바와 쿠바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화려함에 길들여진 우리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지만, 희망도 꼭 필요한 만큼만 얻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쿠바와 쿠바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희망만 천천히 섭취하면서 속 알맹이를 꽉 채워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척 건강하게 느껴진 그들이었다.

희망도 지나치면 때론 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앞만 보고 무모하게 질주를 하다보면 고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또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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