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 이야기
이기우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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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에 국내에서 처음 열린 미스코리아선발대회. 그런데 국내에서 미인대회를 처음으로 기획한 사람은 시인인 파인 김동환이라는데? 그것도 이때보다 훨씬 앞선 1930년에?

한국인이 가장 애창하는 가요이자 일제 강점기 '민족의 노래'로 불렸던 '눈물 젖은 두만강'의 실제 주인공은 조선공산당의 박헌영? 그렇다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리운 내 님이여…"의 그 '내 님'이 바로 이정 박헌영?

책을 통하여 만나게 된 박헌영과 김동환은 잘 알려진 사람들. 이들을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되는 미스코리아대회와 '눈물 젖은 두만강'은 아무래도 새삼스럽다.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이야기>는 주제부터가 매혹적이다. 격동의 시대 20세기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떠들썩한 사건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 그들의 숨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격동기인 20세기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매혹적인, 혹은 환멸스러운 그들은 누구누구? 어떤 사건들일까.

'눈물 젖은 두만강'의 '그리운 내 님'은 박헌영?

"눈을 뜬 채 등골이 뽑히고 산송장이 되어 옥문을 나섰으니, 그의 아내가 안은 것은 단지 남편의 잔해였다."

일제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난 박헌영을 두고 심훈(상록수)은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매혹적이거나 환멸스럽거나! 그러나 '눈물 젖은 두만강의 주인공 박헌영'은 매혹도 환멸도 아닌 쓸쓸함과 아픔이다.

몇 년 전, 박헌영의 저작물이 정리되어 9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이전까지 박헌영은 내게 한사람의 공산주의자일 뿐. 반공교육을 받은 내게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항일의 상징이 결코 될 수 없던 터였다.

혹자들에게는 빨갱이란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쓰고 기억되다가 최근에야 재조명되고 있는 그는, 1930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로 자신의 온 삶을 바친 민족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노래가 나 올만큼 드라마틱한 박헌영의 삶은 어땠으며 노래에 담겨진 사연은 그의 삶 어느 부분일까? 글은 비록 짧지만 눈물 젖은 두만강에 얽힌 박헌영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 곡이 음반으로 취입된 1930년에 시인 김동환이 기획한 미인대회는 아무래도 썩 달갑지가 않다. 그것도 몇 몇 문인들끼리 함께 발행 중이던 <삼천리>가 방정환의 <별건곤>을 따라잡는 목적으로 기획된 미인대회란다.

일제치하인데도 눈요깃거리 삼천리는 불티나게 팔렸다나! 그러니 삼천리가 별건곤을 누르는 목적은 손쉽게 달성된 것. 역사 속 에피소드로만 웃어넘기기에는 아무래도 마뜩찮다.

수많은 친일과 수많은 반일. 수많은 친공과 수많은 반공… 여전히 명확하지 못한 우리의 아픈 이 숙제는 언제 모두 해낼 수 있을 것인지를 물어 본 1930년의 두 사건이었다.

재미와 흥미로 읽는 20세기 인물이야기, 그러나 따끔한 충고

재미와 흥미를 우선하면서 만났지만 결국 이렇게 무거운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미있게 읽어 나가다가 환멸스러운 사람들을 아프게 꼬집고 있는 저자의 날카로운 글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이었다.

맥도널드 한국상륙 사건을 통하여 식품의 제국주의를 고발하는 '맥크레이지(McCrazy)' 란 글은 맥도널드의 어마어마한 매출의 지극한 공로자이자 희생자인 우리 스스로의 의식을 따끔거려가면서 읽어야 할 글이었다.

1988년 3월 29일 압구정에 1호점을 연 맥도널드의 첫해 매출은 19억. 2000년 2300억. "억!"하면서 아까워죽겠다고 속상해야 하는 액수다.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어찌해야 하는가? 저널리스트 에릭 슐로서는 저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제안한다. "찾지 않으면 된다! 먹지 않으면 된다!" 어쩌면 의미 있는 변화를 향한 첫걸음은 너무나 쉬운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 햄버거가 당긴다면 음유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구를 음미하라. 그 달콤한 밤 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 - 책 속에서

두곰두곰 생각해볼 이야기다. 이만하면 저자의 의도는 뚜렷해진다. 독자들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가면서 매혹적인 인물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환멸스런 그들은 가차 이 꼬집어 줄 것! 무엇보다 우리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기록해야 하는 우리들의 21세기, 우리 자신들의 역사를 위하여!

책읽기에 흠뻑 빠져들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책

지극히 매혹적이든, 지극히 환멸스럽든 저자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들은 매혹적인 주제인 것은 틀림없다. 유명한 역사 인물들의 사생활을 보는 즐거움이라니!

그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면을 훔쳐 볼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책이다. 아울러 정리되지 않고 분분하여 어수선하였던 역사상식을 정리해보기에도 좋았던 짧고 명쾌한, 핵심을 잘 추려내 주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이야기>를 통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거나 쥐고 흔들었던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그들의 비장의 무기인 핵심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아마 언제든, 몇 번이든 생각나는 인물을 다시 만나보기 위해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쉽다.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고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사건과 인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색인을 부록으로 넣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목차라도 도움이 될 것이건만 본문 글씨보다 작은 크기의 글씨라니! 그래서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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