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의 탄생 -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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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튀겨져서 바삭 바삭 맛있는 돈가스처럼 맛있는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돈가스가 생겨나기까지의 60년 드라마를 적은 <돈가스의 탄생>이란 책이다.

우리의 식탁에도 오래 전에 보편화되어버린 돈가스는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하여 탄생하였는가! <돈가스의 탄생>은 이 과정을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첫맛은 바삭하게 씹히는 세 겹의 튀김옷, 두 번째는 부드럽게 녹아드는 돼지고기 안심살, 그리고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양배추 채의 산뜻함…’일식 돈가스를 이렇게 표현해보면 어떨까?

일본이 만들어 낸 양식의 왕자이자 대표적인 문화코드인 돈가스. 무엇보다 일본인을 잘 말해주고 있는 이 돈가스를 통하여 일본과 일본인을 알아보면 어떨까?

메이지유신은 요리유신?

서양요리를 먹으러 온 손님들은 나이프와 포크로 입안을 찔러 피투성이가 되는 악전고투를 벌이곤 했다. 고기조각을 나이프로 찍어서 함께 입안에 넣고 씹다가 빼는 바람에 입술을 베어 피를 보는 일도 있었다. 또 수프를 마시는 법도 몰라서 접시를 들고 된장국 마시듯 들이켰다가 가슴에서 무릎까지 온통 뜨거운 수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책 속에서)

어떤 일본인은 낯선 음식인 서양요리를 먹으면서 치른 고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돈가스가 탄생하기 전, ‘근대화의 상징’인 서양요리를 먹기 위하여 일본인들이 감수했던 수많은 일화 중 하나다. 그래도 반드시 받아들여 흡수해야만 하는 서양의 문화, 즉 근대화였다.

그런데 서양요리의 주재료인 고기를 이렇게 먹을 수 있기까지 더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온 일본인들이었다.

1800년대 중반, 우리처럼 일본도 개국과 쇄국을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선다. 이때 메이지는 쇄국 대신 개국과 근대화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메이지 지도자들에게 고민이 생겼다. 서양인들에 비해 월등히 왜소한 자신들의 체격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서양인들을 까마득하게 올려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메이지왕은 체력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1200년 동안 유지되어오던 '육식금지령' 해제를 선포한다. 불교가 전해진 이후 ‘육식은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덴무왕에 의해 675년에 내려진 육식금지령이었다. 메이지 때까지 1200년 동안 육식을 금지해오던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대다수 국민들은 심하게 반발. 고기를 먹는 것만이 아니라 소를 잡는다는 것만으로도 타락하고 불경스러워진다는 미신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풍습으로 인해 1200년 동안 전혀 먹어 본적 없는 고기를 앞에 둔 일본인들은 당혹했고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머잖아 육식을 둘러싼 혼란스러움은 점점 엷어진다. 그리고 맛있지만 이목이 두려워 숨어서 먹던 고기가 점차 서민의 식탁 중앙에 ‘쇠고기 전골’, ‘쇠고기 조림’등으로 올려 지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고기 요리들이 탄생한다. 재빠른 일본인들 중 시대에 부응하는 요리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한 가지 음식을 집중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장인들이 생겨난다. 일본의 요리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에게 ‘정치유신’으로만 알려진 ‘메이지 유신’은 사실은 ‘요리유신’이기도 했던 것.

드디어 돈가스가 탄생하게 된다. 수많은 ‘메이지 요리유신’ 요리들 중에서 카레라이스, 고로케, 단팥빵, 돈가스가 단연 돋보였으며 그 중심에는 단연 돈가스가 있었다. 서양문화를 흡수하여 근대화를 이루고 싶었던 일본인들이 고민 끝에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육식, 서양요리의 주재료인 고기가 놀랍게 진화하고 만 것이다. 고기가 돈가스로 진화한 과정을 보자.

"육식권장→ 쇠고기에서 닭고기로, 그리고 돼지고기로→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로→ 유럽식의 빵가루에서 일본식의 알갱이가 큰 빵가루로→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것에서 기름 속에 넣어 튀기는 딥프라이로→ 접시에 돈가스만 담다가 서양 야채인 양배추 채를 곁들이는 형태로→ 튀긴 고기를 미리 썰어 접시에 담아 손님에게 내는 것→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듬뿍 끼얹는→ 나이프나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밥과 같이 먹을 수 있는 일식으로."(책 속에서)

전쟁의 원동력이 된 돈가스와 단팥빵?

<돈가스의 탄생>은 돈가스 60년 드라마를 다룬 이야기다. 외국 음식을 흡수하고 동화하기 위해 집념을 보인 일본의 음식문화를 자세하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와 함께 급박한 세계정세에 놓였던 일본이 외국문화를 흡수하여 세계로 뻗어 가는 발판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튀김옷을 입은 일본 근대사’란 부제가 붙었다. 부제처럼 이 책은 돈가스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일본의 근대사다. 우리에게 정치유신으로만 알려진 메이지유신이 어떤 과정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무모하게 아시아 침략을 꿈꾸었는지 그 이면의 역사까지 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돈가스. 일본인인 저자가 들려주는 돈가스의 어원을 눈여겨보자.

돈가스가 인기를 얻은 데는 그 이름이 '가스' 즉 '가쓰勝'로 '적을 이긴다テキ(敵)に勝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고교 야구선수, 수험생, 운동선수 등은 '스테이크(ステ-キ, 적이라는 말의 데키テキ와 스테이크의 데-키テ-キ가 음이 비슷한 것에 따른 언어유희-옮긴이)'와 '돈가스'를 나눠 먹으며 필승을 다짐한다. 그리고 시험 철이 되면 수험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가스 도시락이나 돈가스 샌드위치를 먹고 시험에 임한다. (책 속에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돈가스의 탄생 못지않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팥빵 속에 숨어있는 일본의 전쟁 역사다. 고기가 돈가스로 탄생하기까지 60년이나 걸렸고, 사회적인 혼란까지 거듭되었지만 빵은 아무런 충돌도 없이 순식간에, 도리어 일본인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단팥빵으로 활짝 열매를 맺었다. 오늘 우리가 먹고 있는 단팥빵의 원조다.

순식간에 꽃을 피운 단팥빵의 비밀은 무엇일까? 단팥빵의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아시아 침략의 역사? 돈가스와 단팥빵과 일본이 벌인 무모한 전쟁은 어떤 관계일까?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라면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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