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족의 표식 아침이슬 청소년 5
엘리자베스 G. 스피어 지음, 김기영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인소년 매트와 비버족 소년 아틴의 맑고 순수한 우정을 그리고 있는 <비버족의 표식>은 사람과 사람간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18세기 후반, 원주민과의 7년에 걸친 전쟁에서 이긴 영국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한다. 이런 땅 싸움을 배경으로 만난 백인 소년 매트와 원주민 소년 아틴은 엄밀히 볼 때 빼앗는 자와 빼앗긴 자. 그러나 이들은 반목과 싸움 대신 소년들로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을 피워내고, 나아가 서로에 대한 연민의 형제애까지 맺게 된다.

숲과 오두막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피워내는 맑고 순수한 우정이 신선한 감동으로 와 닿는 책이다. 사람간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싫어!" 백인에 대한 아틴의 말 한마디.

"아틴, 배워야 한다. 백인들이 우리 땅으로 점점 더 많이 몰려온다. 백인들은 담배로 조약을 맺지 않는다. 백인들은 종이에 표시를 쓰는데 인디언들은 그 표시를 모른다. 인디언들은 백인과 친구가 되었다는 뜻으로 종이에 표시를 한다. 그러면 백인들이 땅을 차지한다. 그리고는 인디언들에게 그 땅에서 사냥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틴은 백인들의 기호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 아틴은 사냥터를 빼앗기지 않는다."

새로운 정착지에 혼자 남겨진 매트. 목숨을 구해준 지혜로운 비버족 소년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한다. 약속한대로 아틴은 매일 아침 사냥감을 가지고 글자를 배우러 오지만 문명인의 표식인 글자에는 통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아틴에게 매트는 자기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준다. 그러나, 아틴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어떤가.

책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며 단 한 번도 의심해 본적 없는 백인사회였다. 원주민을 구해준 로빈슨 크루소가 원주민에게 최초로 가르쳐 준 글자는 '주인님', 로빈슨 크루소 자신에게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러나, 아틴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오만스러운 문명인, 한심한 백인일 뿐이었다.

'아틴이 옳은 지도 몰라!' 이렇게 매트는 아틴을 통하여, 그간 한 번도 의심해 본적 없는 백인사회의 오만을 하나씩 보게 된다. 그럴수록 매트는 점점 더 아틴과 비버족이 좋아지고 있었다. 비버족의 맑고 순수한 표식은 매트의 가슴에 깊이 꽂혀들고 있었다.

"아까. 잡은 물고기를 다시 던져 넣을 때 뭐라고 말한 거니?"
"다른 물고기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물고기들이)도망가 버리잖아"
"넌 물고기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니?"
"물고기들은 아는 게 많아"
"하여간 효과는 있었나보네. (놓아준 작은 물고기 대신)다른 물고기가 잡혔으니까"


둘의 대화는 늘 이렇다. 백인의 사고방식과 원주민의 사고방식이 마찰할 듯 아슬아슬, 문명과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야만이 맑고 순수함을 비교라도 하는 듯 잔잔하게 펼쳐진다. 과연 우리들이 발전시키고 만들어낸 문명이 생명의 순수 앞에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비버족의 맑고 순수한, 무공해 휘튼치드 같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18세기의 문명의 백인소년 매트 역시 비버족의 만물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지혜로움에 깊이 동화화고 만다. 아틴이나 비버족 역시 매트를 한 형제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이제 비버족은 조상들 대대로 살아 온 땅을 백인들에게 내어주고 떠나야만 한다. 갈등하는 매트.

'가족들을 데리러 간 아버지는 결국 못 올지도 몰라. 가을이 되기 전에 오신다고 했지만 벌써 겨울이잖아. 옷도 신발도 모두 떨어져서 꼼짝도 못하는데 이렇게 나 혼자 언제까지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나를 지켜줄 무기하나조차 없잖아. 나를 형제로 대해주는 비버족을 따라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아틴이 가자고 할 때 따라 갈까? 아틴이 한번만 더 말해주면 좋겠는데...'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

<비버족의 표식>은 전체적으로 잔잔한 감동이 이어지는 책이다. 황야에 홀로 남아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매트의 눈물겨운 용기나 가족애. 백인들에게 부모를 잃고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는 상황에서 원주민 소년 아틴이 보여주는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그야말로 진정한 용기와 사랑, 문명과 야만의 기준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미국의 서부개척사는 곧 원주민의 패망사다. 원주민의 땅을 침략한 백인으로 대표되는 매트와, 7년간의 전쟁에서 백인에게 부모를 잃은 아틴은 언뜻 보면 원수관계랄 수 있다. 아틴이 매트에게 처음으로 한말은 "싫어!" 매트 역시 원주민에 대한 떠도는 낭설을 믿으며 원주민을 경계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한편으로 야만인이라고 멸시하려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이런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끈끈한 형제애까지 맺게 될까?

매트와 아틴이 자신들만의 입장과 사고방식, 자신들만의 세계만 옳다고 우기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나는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다. 내가 믿고 있는 진실만이 세상의 진실일 뿐이다..." 그러나 매트와 아틴은 무엇을 택하는가.

글자를 익히는 것을 매개로 만난 이들이지만, 소년들은 숲속에서 모험을 즐기며 '기호와 표식'을 통하여 서로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아틴은 매트에게서 배운 영어를 비버족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연민에 가득 찬 아틴은 매트가 숲속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비버족의 지혜들을 하나씩 가르쳐준다. 이런 과정들이 신선한 감동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서로를 향하여 총과 활을 겨누어야하는 반대의 세계에 있던 이들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서로의 미래까지 밝혀주는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미래의 비버족 추장 아틴은 매트에게서 배운 영어실력으로 이제 더 이상 백인들에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매트 역시 가족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더라도 버려진 황야에서 혼자 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란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운 관계를 위하여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아름다운 관계는 무엇으로 시작되어 꽃피울 수 있는 것일까?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 그것은 한사람만의 일방적인 이해나 헌신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둘이 함께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누는 것, 서로의 관점과 세상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 그것 아닐까?

숲속을 누비는 두 소년의 맑고 순수한 우정을 따라 숲속 가득 울려 퍼지는 비버족의 휘튼치드처럼 맑고 건강하며 신선한 표식. 18세기의 비버족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표식이 문명의 눈부신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21세기의 황량한 내 가슴에 그대로 꽂혀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