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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을 피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자신을 지켜 줄 무기 하나 없이 넓은 들판이나 숲 속에서 곰을 만났다고 하자. 그것도 그리즐리(북미 회색곰)나 공격적인 흑곰의 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어라고 도망칠 것인가? 납작 엎드려 죽은 척 할 것인가?(우리가 어렸을 때 동화로 만났던 것처럼) 아니면 죽을 때 죽더라도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인가? 미련 곰탱이. 뛰어 도망 가보았자 살아남을 확률은 희박해. 그러니까 아예 그냥 편안하게 녀석의 먹이가 되어 주는 거야?
<곰의 습격들 : 원인과 대피방법>(헤레로 저)을 보면, 나무를 잘 타지 못하는 그리즐리를 만나면 우선 나무에 올라가든지, 나무가 없다면 곰과 눈을 마주치거나 등을 보이지 말고 아주 천천히 뒷걸음치면서 시간을 벌라고 한다. 헤레로만이 아니라 거의 많은 책들이 우선 제시하는 방법인데 3000여km의 트레일 종주에 도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부르는 숲>(홍은택 번역)을 쓴 빌 브라이슨은 책에다 이 방법은 한심한 이야기요, 자신이라면 "냅다 뛰겠다"는 것이다.
반면, 나무타기의 명수인 흑곰을 만나면 나무에 올라가보았자 결국 흑곰과 나무 위에서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기니 죽은 척 하라고 하는데 그래보았자 물어뜯기는 것이 결론이란다. 그리고 냄비 같은 것이 있으면 정신없이 두들겨서 소음을 내거나 돌을 던지라고 말한 다음 결론으로 곰을 향해 돌진하라고 헤레로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냄비나 돌을 던져 소란하게 하고 돌진하는 것) 곰을 자극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덧붙이기를, 곰을 피하는 방법으로 등산을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내어 자신이 있음을 미리 알려 곰과 마주친 순간 곰이 당황하지 않게 하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구태여 자신의 존재를 미리 알려 그렇지 않아도 배고파 있는 곰을 끌어 들일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의 방법을 제시한다.
그럼 곰을 피하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야? 곰을 이기는 방법은 정말 없다는 말인가?
결론은 변덕이 심한 곰을 피하는 방법이란 없다. 또 현명하게 곰을 피하는 방법을 누가 제시한다 하더라도 곰마다 특성이 모두 다르므로 제각기 특성에 맞추어 대처해야만 그나마 겨우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곰의 기분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곰을 피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들판이든 숲으로든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곰이 무섭다고 등산을 포기할 것인가? 들판에 나서기를 주저 할 것인가? 그렇다면 곰도 비웃고 말 정말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이다.
곰(운명)아! 올 테면 와라, 내가 간다. 맞서 싸울 것이다.
기자란 몇 개의 눈을 가져야 하는가?
"처음 기자가 될 때 책과 영화속의 가상인생을 넘어선 짭짤하고 시큼한 삶의 진면목을 몸으로 익힐 거라 믿었습니다. 또한 그런 지식의 전달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삶은 결코 숭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러운 눈물과 시큼한 땀 냄새 물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 바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량이 바뀌고, 공간의 차이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그래서 아름답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입체고, 중층이고, 다성(多聲)이었습니다."-머리글 중에서
<곰을 피하는 방법>은 권재현이 동아닷컴 기자칼럼에 '권재현의 한 잔의 선식'이란 제목으로 2003년 7월부터 2005년 7월 까지 3년간 연재하였던 글 80여 편중에서 추린 것이다. 권재현 기자의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시각과 관점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오늘도 끊임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의 어떤 유행이나 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비교해보며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주관에 의해서만 어떤 문제들을 받아들이며 평가하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진실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남도 자기가 옳다는 것에 동의해주길 바라고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믿어 주길 바란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의 사람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진실을 갖게 된다. 이 사람 역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진실이라고 믿어 주고 따라 주길 바란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자신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지식이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오직 하나의 진실로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진실이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진실은 오직 하나뿐일까?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결국 죽는 것, 살다가 죽는 것에는 최소한의 먹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란 절대적인 진실을 빼고 모든 문제들이 오직 하나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을까?
곰은 운명이고, 또한 우리들이 받아 들여야만 하는 사회의 많은 이야기들이다. 제각기 다른 곰의 특성이나 마주친 순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은 당연히 달라야 한다. 책이나 음악, 영화 등을 통하여 국제, 사회, 문화 등의 시각과 관점을 차분히 정리해주고 있다. '기자란 몇 개의 눈을 가져야 하는가?'에 못지않게 나도 이런 시각을 길러보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이렇게 정리하여 보아야겠다는 부러움이 섞인 바람이다. 그야말로 글 읽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읽는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내가 느낀 것은 '기자는 몇 개의 눈을 가져야 하는가?'였다. "기자라면 천개의 눈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많은 눈을 가지고 남이 못 보는 것도 볼 줄 알아야 하며, 남이 이렇게 보면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자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란 가급이면 많은 눈을 가지고 많이 보고 편견을 깨뜨린 시각과 냉정한 이성으로 판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과 거의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기자란 몇 개의 눈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 눈을 가져야 하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남보다 깨어 있는 것, 앞서간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스스로 갖추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