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
장윈청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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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 만약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스스로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밤을 꼬박 새는 한이 있더라도 어머니 대신 셋째형의 몸을 돌려 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 드려 편안한 잠을 주무시게…. 내가 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 어머니의 얄팍한 어깨에서 무거운 물통을 내려 내 어깨에 지겠다. 어머니 대신 남의 집 일을 할 것이다. 어머니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때 분연히 일어서겠다. 어머니를 건장한 내 뒤에 세우고 그 악인에게 호통을 칠 것이다.

내가 만약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전력을 다해 일하고 돈을 벌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장 드시고 싶어 하면서도 차마 못 사시는 바나나를 사드리고 행복하게 모실 것이다. 내가 3일만 살 수 있다면 그동안 부모님과 다른 가족에게 진 모든 빚을 돌려드리고 싶다. 내가 3일만 걸을 수 있다면…. <책 속에서>


무심히 보내 버리기 일쑤인 우리의 3일이 윈청에게 주어진다면…. 윈청의 이런 소박한 꿈은 사실 처절한 바람이다. 이미 예정된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고 싶고 자신을 세상에 낳아준 어머님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고백하는 책, <3일만 걸을 수 있다면>은 한 인간의 처절하고도 따뜻한 바람이자 기록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다.

3세 때부터 근육병을 앓기 시작해 이제 물 한 컵조차 자신의 의지로는 들어 올릴 수 없는, 게다가 28살에 예정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아름다운 청년 윈청이 단 3일만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이루고 하고 싶은 절실한 바람이다.

윈청은 어려운 집안 형편과 온몸이 마비되는 병으로 정규교육이라고는 단 하루 받는데 그쳤다. 그러나 윈청은 세상에 따뜻한 희망을 전하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사형수가 죽을 날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예정된 죽음을 가지고 살아가며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쓸모(?)를 위하여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다.

하루 더 사는 만큼 점점 더 심하게 마비되어가는 몸으로 죽음 직전까지 이르며 한 자 한 자 글자를 쓰고 글을 썼다. 이 책은 아름다운 청년의 따스한 삶의 기록이다. 희망의 메시지다. 몸은 비록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강한 의지로 영원한 삶을 일구어낸 한 생명의 위대한 기록이다.

좁은 방안에 수북이 쌓인 빈 링거병들. 팔뚝에 달고 살다시피하는 링거로 인해 핏기가 가신 손은 아프도록 퉁퉁 부어올랐다. 펜을 쥐는 것조차 힘들다. 글을 몇 자 쓰기도 전에 손가락은 금세 굳어져버리고, 마비된 손 위로 쏟아지는 동통을 달래려고 남은 한 손을 들어 쓸어내리는 것도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다.

그렇게 6년이 넘은 시간 동안 하루 같이 17만자를 써내려갔다. 겨울에는 가끔 펜을 들 때도 움직임이 원활하지가 않다. 30초 정도 시간을 들여야 편안한 손 자세를 취할 수 있으며, 바로 움켜쥐는 것도 불가능해서 조금씩 조금씩 힘을 불어 넣어야 한다. 그래서 매번 밥을 먹은 직후, 글을 쓰곤 한다. 그때가 그나마 몸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열이 나면 온몸이 찬 물을 뒤집어 쓴 듯 와들와들 떨린다. 명치가 아프고, 등도 아프고, 특히나 머리가, 뭔가를 생각하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로 지끈거린다. 하지만 나는 펜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한 번 열이 났다 하면 제때 약을 쓰더라도 일주일은 누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그건 안 돼! 2시간 안에 갖가지 증상이 나타나 나를 괴롭히지만 200, 300자라도 더 써놔야 한다. 글을 마치고 나면 곧장 더욱 극심한 고통과 피로가 몰려오고 주의력은 온통 불편한 몸 상태로 쏠린다. 나는 서둘러 잠자리에 몸을 누이고 잠들기 전, 내가 쓴 글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단잠에 빠져든다. <책 속에서>


글자 한 자 쓰는데 6분, 하루에 77자의 글씨를 쓰고 다시 고쳐 썼다. 이렇게 씌어진 17만자는 2003년 13억 중국인들을 울렸다. 그리하여 장윈청이 2004년 4월 10일, '2003년 올해의 아름다운 중국청년상'을 받을 때 시상식장에서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13억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장윈청은 이미 희망의 메시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자신의 의지라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3세에 앓기 시작한 불치병을 원망하며 자포자기하는 대신 받아들이며 사는 날까지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상과 꿈을 가진 장윈청. 이미 사형날짜를 알아버린 사형수 같은 운명의 윈청은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도리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하루 종일 한 칸 방에서 혼자 글씨를 터득하고 작문법을 공부하였다. 이상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으며 작가로서의 꿈을 향하여 처절하게 싸웠던 것이다.

윈청은 물 컵조차 자신의 의지로는 전혀 들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하루 종일 한 칸 방에서 늘 보고 자랐던 풍경만을 보고 살아 갈 뿐이다. 어쩌다가 어머니 등에 업혀 바람을 쐬러 가면 그동안 형에게 불편한 상황이 되었을까 조바심이 난다. 자신도 이미 병을 앓고 있어서 점점 마비되어가는 불편한 몸이지만 더 불편한 형의 몸이 마비될까봐 밤새 형의 몸을 돌아 뉘어 준다. 자신은 정규교육을 단 하루라도 받아 보았지만 그나마도 가져 보지 못한 형을,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형을 가엽게 여긴다. 그리고 고단한 몸으로 살아가는 어머니가 가련하다. 그래서 윈청은 만약의 꿈을 꿔본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장윈청의 이야기는 "안됐다"의 심정과 막연한 동정으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윈청은 우리들의 막연한 동정을 받을 만큼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상을 가지고 절망적인 삶을 굳은 의지로 발효시켜 우리에게 제대로 된 희망과 삶을 보여주고 있다.

책 속 내용들은 윈청의 삶에 대한 건강한 감사, 강인한 의지, 식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간절한 바람들이다. 한 자 쓰는데 6분이 걸렸을 그 처절한 윈청의 의지가 투병과 함께 감동으로 펼쳐진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정말 수만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4년 전만 해도 저는 담을 의지해서나마 꽤 멀리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단 한발자국도 걷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살아 있기만 하면 이 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 다리가 없다면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1996, 6월 장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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