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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끈이 있다 그 끈이 우리를 살게 한다."
국내외 산악계에서 '센놈'으로 소문난 박정헌과 산악계의 떠오르는 샛별 최강식의 사투의 등반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그리 오래지 않는 기억 속에서 어느 날 뉴스를 통하여 놀라움으로 만났던 산악인 박정헌과 최강식.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쓰기 전에 우선 먼저 적고 싶은 것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삶의 역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밝힌다.
좋은 책이니 또 누군가든 읽어 보길 권하는 사람이나 어떤 경로로든 박정헌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험난한 삶의 길에 있어 책 한권 쥘 수 없이 힘든 사람들이 그나마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든, 다큐로든 다시 엮어져 가급적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죽음을 넘나들며 죽음의 그 순간에 생명의 끈을, 사람으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 돌아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들에게 전해져 힘든 상황을 극복해내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그들을 살렸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야기는 죽음의 지대에서 살아 돌아온 극적인 생환에 관한 휴먼 다큐멘터리도, 자연에 도전했던 인간의 끝없는 모험도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이 먼 길을 돌아 찾아 낸 진정한 사랑과 소박한 행복에 관한 아주 낮은 이야기다 - <서문 중에서 네팔 카트만두에서 부족한 손으로 박정헌>
"그러나 우리들의 동행은 끝나지 않았다…. 함께 등반을 간다는 건 이미 서로의 생명을 함께 나누기로 결심하는 것과 같다. 천길 낭떠러지 빙벽에서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여 자일파티가 될 때 두 사람의 생명은 하나가 된다. 호흡도 하나가 되고 동작도 하나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죽음을 경험하고 함께 사투를 벌여 살아난 동지이자 형제이다. 사선을 함께 넘어 온 강식과 나의 동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앞으로 인생이라는 함께 헤쳐가야 할 험난한 여로가 남아 있기에….<본문 중에서>"
산악인 박정헌의 이야기는 이미 세간에 알려졌다. 뉴스를 통하여 우리는 그의 사투를 이미 접했었다. 산을 좋아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지금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박정헌은 진정한 코리아 웨이요. 그래도 산을 올라야 하는 목적 없는 목적이며 이유일 것이다.
<나의 두 다리와 너의 두 눈>이란 제목의 1부는 히말라야의 또 한 곳 촐라체 북벽에 매달려 사흘 만에 정상을 밟았지만, 하산하는 과정에서 빙하에 빠지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지경에서 극적으로 살아 난 십 여 일간의 기록이다.
한편의 사람들은 절망 앞에서 또 다른 삶의 희망으로 죽음을 택하는데 박정헌과 그의 후배 최강식은 살아야한다고, 살려달라고 생명에 매달린다. 이들이 매달리는 절박한 이유는 또한 자일파티로 함께 나눈 서로에 대한 생명, 그 살려냄이기도 하다. 흔히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나 이들이 보여주는 살기위한 사투는 결코 인명은 재천만이 아님을, 우리들 생명은 각자의 몫이고 우리가 주체라는 걸 보여주는 위대한 승리라고 하면 너무 통속적일까.
<아직 엄지손가락이 남았다>란 제목으로 시작하는 2부는 구조된 이후 이야기다. 1부에 비하여 긴박함이 없지만, 박정헌의 인생깊이를 진솔히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그가 어떻게 산과 인연이 닿았는지, 그가 개척해낸 코리안 웨이며 봉우리 이야기, 그리고 병원에서 손가락 8개를 절단하기까지….
엄지손가락만 남기고 손가락 여덟개가 잘려나간 손을 가진 그는 그래도 말한다. "인간에게 절망이란 없다"고. 한국인 최초로 안나푸르나 봉을 개척하였으며, K2를 비롯한 수많은 봉우리의 정상에 섰던 그에게 잘라낸 손가락 8개는 이젠 등반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후배 최강식도 사고 직전까지 산악계가 기대하는 유망주였지만 이제는 그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촐라체에서의 생환은 박정헌에게 한편으로는 너무 크고 소중한 것들을 빼앗았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촐라체의 꿈을 꾼다. 히말라야에서의 봉사를 꿈꾼다.
1부의 긴박한 사투 못지않게 2부와 후기 편에서 진정한 산악인 박정헌을 만날 수 있다. 산을 통하여 깊어지고 넓어진 아름답고 거룩한 한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의 꿈을 말한다. 히말라야는 등정이 아닌 학습의 장소로서 만나 질 곳이라고, 제대로 된 산행 안내 등을 통하여 히말라야를 일반인들도 누구나 밟을 수 있도록 그 학습의 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욕심은 인간의 자만이다. 산은 인간이 자신을 한없이 낮출 때만 비로소 정상을 허락한다. 내 목표는 지구상의 고봉을 정복 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꿈은 지구상의 모든 봉우리에서 신의 위대함을 만나는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왜 하필 위험을 자초하며 산을, 그것도 외국에 까지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오르려 하는지 한편으로 의아했던 사람들에게 진정한 산악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소에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것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삶이 무디어졌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가 권태로운 사람들에게, 위험을 자초하며 암벽을 타는 사람들을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삶이 아름답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쉽게 놓지 못하는 '끈'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목마른 시절에 뜨거운 감동이다.
진정한 산악인, 박정헌과 그의 후배 최강식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김훈이 들려주는 말을 일부 덧붙여보며….
"…그가 길 없는 수직의 벽을 비벼 몸으로 길을 열때,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처럼 인간의 축축한 액즙이 바위에 묻어 있다가 이내 사라진다. 길은 거기에 몸을 갈아 바칠 때만 길이다. 끈은 그 길 없는 세상을 건너가는 인간의 길이다.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에서 후배 최강식은 크레바스에 떨어졌다. 최강식의 몸무게 78킬로그램은 박정헌의 몸무게 70킬로그램과 근으로 연결되어 허공에 걸렸다. 몸무게가 거꾸로 였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끈이 몸과 몸을 연결해서 부서진 몸이 매달린 몸을 당겨 올리고 마음은 몸의 고통을 감당한다. 마음의 길은 몸의 길과 합쳐져서 끈의 길로 이어지고, 죽지 않은 두 몸뚱이는 암벽과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그 끈이 왜 아름다운지를 나는 안다. 그때 박정헌의 마음속에서 '자일을 끊어버리자….'는 번민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끈은 인간의 끈으로써 아름답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 왔고 박정헌은 동상으로 썩은 손가락 여덟개를 잘라냈다. 이제 박정헌은 장비를 쥘 수 없고 수직 벽을 오를 수 없지만,그의 길은 끈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 <자전거 레이셔 김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