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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힘들어 - 남편 이야기
박경남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가정의 달도 이제는 중순이다. 이런 저런 기념일은 챙기지만 가정의 중심인 부부를 위한 헤아림은 정작 뒷전에서 서성이는 것 같다. 아내나 남편, 서로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가슴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려움을 헤아리고 배려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부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여보, 나 힘들어>는 박경남, 김종오 부부가 썼다. 아내 이야기와 남편이야기가 부부처럼 한 몫으로 나왔다. 아내나 남편에게 쉽게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기 15꼭지씩을 담고 있는데, 쉬우면서도 흔한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다. 드라마를 통하여 한번쯤 만나졌던 부부들, 혹은 우리 부부에게도 있었던 지난날의 갈등이나 아픔, 이웃 부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이야기 등을 통하여 아내의 속내를, 혹은 남편의 고충을 들여다보고 헤아려본다.
작가는, 40대 부부를 주 독자층으로 썼다고 한다. 왜 꼭 40대를 주 독자층으로 썼을까. 우리나라의 40대는 시대적 흐름이 특별하다고 한다. 또한 20~30대에게 밀린 듯하지만, 삶의 현장 곳곳에서 핵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40대 가장의 외로운 고백이나, 386, 486 펜티엄, 혹은 사십대 들여다보기는 책을 모두 읽고서도 특별한 여운이 남는다.
대체적으로 사십대의 부부가 가장 위태롭다고 한다. 결혼초의 사랑은 이미 정이나 의무로만 남은 듯하고, 대부분 결혼 10년차 이상을 살며 권태기에 접어드는 부부가 40대의 부부들이다. 또한 40이라는 나이는 결코 쉽게 넘어가지는 나이는 아닌듯하다. 40을 불혹이라 부르고, 어떤 시인은 ‘부록’이라 부르듯 40대는 특별하다. 또한, 우리나라 40대 가장들의 유례없는 높은 사망은 얼마나 어이없는 수치인가 말이다.
남편이야기-아내가 남편에게 선물하는, 남편들을 위한 에세이집
어느 40대 가장의 고백이 마음 아프다. 이 땅의 주역인 386세대에 관한 이야기도 쓸쓸하게 마음을 끈다. 또한 흡연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이나 견해,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아내를 둔 남편의 자기성찰, 직장 나가는 아내 대신 집안 살림을 즐겁게 자처해버린 남편을 만날 수 있다.인생 역전을 꿈꾸는 남편이나, 어린 아내를 둔 남편도 만나서 그 속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십대. 변화의 길목에 서 있는 그들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폐기처분되는 낮은 사양의 컴퓨터가 될 수도 있고, 앞으로 등장할 고도의 버전을 가진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펜티엄으로 머물 수도 있다.
현재 이 사회에서 사십대는 참으로 복잡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양한 키워드를 가진 사십대. 많은 사람들이 사십대를 말하는 만큼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열린 보수와 비판적 진보가 공존하는 세대이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반면에 마르크스와 레닌에도 탐닉했던 세대이기도 한 것이다.
… 그러나 사십대는 자기들의 발전을 멈추지 않는 저력을 가진 세대이기도 하다. 컴맹극복을 위한 사투 끝에 사이버 공간에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줌마 클럽이나 다양한 사십대의 모임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좌지우지 하는 모임으로 부상하기도 했다.<책 속에서>
제일 마지막 이야기 <나 가거든, 들꽃 한 묶음을>은 유서 미리 써보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글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늘 앞만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던 삶을 잠시 멈추고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은 어떨까. 4년 전 도예가 김종희씨의 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었다. 소설가 황석영, 가수 김창완, 영화감독 박철수 등 몇 사람들이 깊은 자기성찰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못 뜻 깊다.
<이렇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다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인데. 콩트를 읽는 느낌으로 읽어도 좋겠다. 커피 한잔과 함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그런 기분으로 읽어도 좋겠다. 그러나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부부가 생활하면서 필요성을 한번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고, 이미 진즉에 한 번 더 생각하였다면 서로에게 아픔 주지 않았을지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40대를 주 독자층으로 하였다지만, 어떤부부에게나 해당하는 그런 글들이다. 부부간에 문제 풀기가 가장 어렵다는데, 이 책안에는 그 정답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아내이야기-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하는 책>, <남편이야기-아내가 남편에게 선물하는 책>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남편에게 선물하기 전에 먼저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편이야기에는 우리 이웃의 남편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환경이나 처해진 상황은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내 남편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찬 가지로, 남편이라면 집안 살림과 아이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아내에게 삶을 돌아보고 위안 받을 수 있는 책 한권 배려해 보는 건 어떨까. 서로를 헤아려주고 배려해준다는 것은 부부간에 가장 사소한듯하지만 소중한 사랑의 실천, 그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