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뉴-슈가와 맛나니,P.39~42> -추억, 현실을 공감하다.
시금치를 무치기 위하여 양념병들이 모여 있는 싱크대를 열었다. 귀퉁이에 미원이 보였다. 몇 달 전에 시어머니께서 이런 저런 것들과 함께 사다주신 것이었다. 꼭 한번 쓴 기억이 있을 뿐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드라져 보였다.
겉으론 미끈하고 멀쩡한 무를 썰면서 하나 집어 먹어 보았더니 맵기 이를 데 없었고 단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맛없는 무를 잘못 사서 깍두기를 담아 실패한 적이 있던 나는 할 수 없이 미원을 넣었다. 미원 덕분에 그럭저럭 먹을 만큼은 되었다. 무든, 배추든 다시 사서 김치 담가야 하는 돈이 몇 푼이나마 '굳은' 것이었다.
오늘 시금치를 무치면서 어젯밤에 읽었던 공선옥의 <뉴-슈가와 맛나니>란 글 한편이 생각났다. 공짜로 얻은 시금치가 커서 특유의 냄새가 유난스러웠다.'미원을 넣어 볼까?' 젖은 손끝에 묻혀 보았다. 그러나 결국 쇠고기다시다를 조금 넣어 무쳤다.
공선옥 친구 중에 환경주의자가 있다는데 그 사람은 미원이나 이런 쇠고기다시다 같은 화학조미료를 쓰는 공선옥을 보고 경악한다고 한다. 그럼 생판 모르는 나를 보고는 무식하다고 하며 경멸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공선옥처럼, 나도 전라도 태생, 그것도 가난한 집의 딸이어서 우리 어머니도 학독에 고추를 갈아 김치를 담갔다. 공선옥의 어머니가 뉴-슈가를 선호했다면 내 어머니는 사카린을 선호했다. 팥죽을 쑤면서 단맛을 내기 위하여 사카린 몇 알을 반드시 넣으셨다. 사카린을 넣지 않으면 단맛이 영 나지 않았다. 설탕은 단맛을 내는 고급재료였지만, 군것질거리 없던 아이들이 알음알음 먹어버리기 일쑤여서 자주 살 것은 못되었다. 늘 돈이 문제였다.
미원도 어머니에게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무엇을 하든 미원을 넣고 안 넣고의 차이는 입에서 녹아드는 감촉에서 달랐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사카린과 소다를 잊지 않고 샀다. 사카린이나 소다는 종이에 덜어 싸주는 것이어서 어머니 주머니에 별도로 들어 있었다. 미원도 빼놓지 않고 사오셨다. 미원은 신선로였다.
신선로는 임금님의 수랏상에 오르던 최고 음식이었다. 어느 음식에건 반드시 넣은 미원을 늘 먹고 자랐지만 신선로 음식을 단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조차 없다.
격식이나 품위를 앞세우고 먹는 것보다는, 푸짐하고 게걸스레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늘 편안하다. '사는 게 워낙 거짓말 같아서 일까.'
나도 다 알고 있다. 화학조미료가 우리 몸 안에 들어가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래서 나도 소중한 내 식구들을 위하여 몸에 좋다는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먹이고 싶다. 그러나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늘 돈이 웬수고 시간이 웬수다. 아이들을 떼놓고 동동거리며 살아도 돈은 턱없이 모자란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정성어린 간식거리를 만들어 먹이고 싶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집에 와서 엄마가 사다 둔 과자를 하나씩 까먹으면서 컴퓨터를 하고 엄마를 기다려준다. 이런 우리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사려고 슈퍼마켓에 가서 얼마짜리가 얼마쯤 깎여 팔리는지 먼저 따져서 과자를 산다.
조금 한가해진 날에 "어디보자" 표시 되어 있는 성분을 보면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질 만큼 첨가물들이 끔찍스럽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야만 한다. 무엇이 아이들 몸에 들어가 "어떻다더라"하고 떠들어댄들 그들이 꿈쩍이나 하겠는가. 이렇게 가는 곳 족족 거짓말 같은 세상 꿈처럼 휘청이며 살아가는 엄마일 뿐이다.
사는 게 정말 거짓말 같다. 사는 걸 워낙 거짓으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같은 사람들이 거짓말 같은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기어야만 하는 것이다.
2 - 눈시울 적셔가며 읽었다. 독설, 날카로운 가시 그래도 결국은 위안이다.
공선옥의 산문집을 읽겠다고 마음 먹은 것 자체부터가 큰 실수다.
"작가도 한때는 공순이였다지 아마."
"광주 민주화에도 진즉에 뛰어들었지 아마."
그럼 작가의 가슴속내 이야기가 대충 어떨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 날카로운 가시로 정곡 콕콕 찌를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어야지. 잘 알면서 읽겠다고 집어 들다니. 그러나 만나서 다행이다.
세상살이 어이없는 일 투성이어도 조금 편한 심정으로 살고 싶었다면 제목부터 편치 못한 이 책을 집어 들지 말았어야 했다. 이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울컥 울컥 치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눈에 흐르던 것 훔쳐내고 다시 읽자마자 바로 이어지는 눈시울 그 뜨거움은 또 어쩔 수 없다.
쓰는 사람도 세상 사는 걸 어이없어 하고 읽는 사람도 어이없어 죽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우리들 사는 게 거짓말 같다.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가슴에도 얼룩지던 것들이었다. 고운 빛깔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버티어 나가야 하는 그런 애매하고 억울한 빛깔이었다. 그래서 나도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말들을 가로채서 먼저 말해 버리다니.
그래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작가가 말하는 것들이 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무명의 나는 혼자 삭힐 뿐 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곡을 짚어내는 말에 울컥 울컥 거짓말 같은 세상의 뻔뻔스런 가슴을 후려 패버리고 싶을까.
사는 게 거짓말 같다. 그럼에도 누구에게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나의 말을 선수 쳐서 먼저 해주는 공선옥 덕분에 함께 동조하며 읽어 나가다가, 눈시울 적시다가, '나만 지극히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운 세상인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구나' 이렇게 위안도 받아보다가.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속시원히 한 듯싶어 아주 조금 후련하다. 이렇게 읽어 나간 책이었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눈시울 적시며 속내 후련히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읽고 공감하는 만큼, 그만큼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이 책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거짓말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선 <1,2부>, 작가의 독서일기 <3부>를 담고 있다. 여전히 세상은 거짓말처럼 어이없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혼자 속을 앓던 것들 그나마 위로받은 그런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