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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파는 건가요?
임창섭 지음 / 들녘 / 2004년 6월
평점 :
<이 그림 파는 건가요?>는 미술 평론가가 썼지만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복잡한 미술 이론서도 아니고,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떤 특정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서도 아니다. 화랑의 기획자기도 한 저자가 화랑에서 일어난 일을 유머스럽게 곁들이면서 일반인들이 미술을 쉽게 이해하도록 들려주고 있다.
턱없이 높고 어려운 화랑이나 미술관에 누구나 선뜻 가보고 싶도록 가볍고 유쾌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잘못된 인식을 무너뜨리고자 배려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대부분 사람들이 유아기에 아무런 이유나 지식없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종이에 나타나는 선이나 색깔들이 마냥 신기하여 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색을 칠해간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존재들을 그려 나가게 된다. 엄마 아빠의 얼굴을 생각 나는대로 표현하고 꽃과 나무와 무지개를 그린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함께 하던 미술이었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접어 들어 시험과 직결되면서 미술은 멀어지고 만다. 더 나아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미술이란 일정 사람만이 표현하는 어떤 특정한 세계로 자리 잡는다. 또 미술을 소개하는 화랑은 특수 계층만이 누리는 그런 문화 공간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란 삶의 여유나 사치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그림이나 미술품 앞에 마음으로 서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나 격식을 앞세운 돈으로 서게 된다. 정말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그림을 포함한 미술 작품들은 대개 이렇다. 또 방송 드라마에서 화가는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턱수염도 자주 손질하지 않아 다소 지저분한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래야만 하는 특별한 그림이고 미술일까? 저자는 말한다. 내 아이들이 그린 그림부터 집에 걸어 보라고. 우리 생활에서 그림은, 미술은 이렇게 생활과 함께 한다고 일러 준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대체 그림이 뭐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림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조목 조목 짚어 나가 "그렇지 그림은 그런 거야"하는 동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왜 그림을 사는 거지?' 에 이어 '누가 그림을 팔지? 어떻게 그림을 사야 하지?'로 끝을 맺는다.
첫장에서는 미술 앞에 선뜻 다가서게 하고, 둘째장에서는 마음을 열어 미술과 대화하게 하며, 셋째장에서는 대화를 통하여 마음에 스며든 그림을 사랑하게 한다. 마지막 장은 미술과 함께 생활하는 살가움으로 맺는다.
책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동도 자못 크다. 우리나라 미술 수집가 간송에 대한 이야기는 큰 감동이다.
...성북동에 자리잡은 아담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이름은 간송 미술관. 이 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였다.그는 일제시대에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우리의 문화 예술품마저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털어 수많은 서화와 도자기,불교 미술품 그리고 서책을 수집했다.
1943년에 안동에서 당시 엄청나게 큰돈인 1만 1천원을 주고 산 훈민정음 원본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의 창제 원리를 알 수 있게 했고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은 치열한 경매끝에 거금을 들여 구입하면서까지 아름다운 청자 모습을 지켜낸 덕에 보물 제 241호로 지정되었다.
만약 간송이 수많은 문화예술품을 수집하지 않아 모조리 흩어졌더라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은 강화도 와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300여책 어람용의궤(왕실행사기록)류를 약탈해 갔다. 이 책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한때 프랑스 대통령이 반환하겠다는 약속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당하게 가져간 것도 아니고, 한 국가의 귀중한 재산을 약탈해갔으면서도 온갖 이유와 변명으로 반환을 미루고 있다. 그러고 보면 간송이 한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 알 수 있다.<간송 미술관과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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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창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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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한국화랑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으며, 청암미술관 부관장을 역임했다. <현대 공예의 반란을 꿈꾸며> <꿈을 그린 추상화가><비평으로 본 한국 미술>(공저) 등의 저술과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호탕탕-일월영측’, 달리는 전동차 미술관 ‘WoW Project’, ‘Dream Metro’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고, 현재 노화랑에서 기획실장으로 있으며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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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이 전해주는 감동만으로도 이 책은 더없이 가치 있다 하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숨어있는 감동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피카소나 이중섭의 그림들이 고액 경매가를 갱신하는 비밀 같은 이야기들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흔하게 접할 수 없던 미술과 관련한 뒷이야기들도 아주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전해주는 그런 책이다.
미술은 특정 계층만의 것이 아니다. 유아기에 누구나 쉽게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 것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미술이다. 또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공감이다. 이 책은 그걸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림을 포함한 모든 미술품은 더이상 특수계층만의 것이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