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魂) - 김수남 사진굿
김수남 사진, 고운기.양진.백지순 글과 사진 정리 / 현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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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굿이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마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일 게다. 어차피 사회와 시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그래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해버린 나의 신앙체계, 이것을 찍으며 하나의 증언,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 <한국의 굿>(1983)을 내며

김수남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최후를 맞는 일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는데, 그 스스로 2006년 2월 4일 타이의 오지 치앙라이에서 소수민족 리수족의 신년행사를 취재하던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수남(1949~2006)이 남긴 사진은 16만 여 컷. 자신의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혼(魂)-김수남 사진굿>은 사라져가는 '한국의 굿'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진작가 김수남을 회고, 정리하는 책이다.

'방울 대신 카메라를 든 박수무당'으로 불렸을 만큼 굿판이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굿 판 속 만신들과 주민들과 망자들의 혼과 함께 어울렸던 김수남. 그는 언제부터, 왜 한국의 굿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까?

30년 동안 굿판만 찾아다닌 사진작가 김수남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휩쓸었다. 새마을 운동은 즉, 근대화였고 근대화의 주축인 유신정권은 근대화 과정에 미신타파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1970년대 유신정권에 의해 '굿'과 같은 우리의 전통문화 중 상당한 것들이 말살되었다.

근대화 때문에 굿판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굿판이 우리고유의 전통문화라는 사실을 자각한 그는 전국의 무속현장을 찾아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서 사진예술로 승화시킨다. 굿 현장만 기웃 거린지 30여년. 언제부턴가 세인들에게 김수남하면 '굿 사진'이요. '방울대신 카메라를 든 박수무당 김수남'이었다.

그의 굿 사진 기록 작업은 한낱 미신으로만 여겨지던 '한국의 굿'을 문화로 다시 바라보게 하고 한국인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게 하는 계기가 된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30여 년 동안 그가 굿판을 누비며 기록한 사진들은 <한국의 굿>(열화당) 20권짜리로 전설처럼 남아있다. 이 책은 2006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선정, 전시됨으로써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굿'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굿판'만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동안 생긴 일화들도 많았다. 굿판의 주인공이야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굿판이 어디 예사현장인가. 술에 취한 만신의 아들이 카메라를 빼앗아 내동댕이친 것도 여러 번, “신이 노한다”는 말로 굿을 거부하는 만신도 있었다. 또 미신타파를 위한 증거를 잡기 위해 관련기관에서 나온 사람으로 의심받은 적도 많았단다.

하지만 굿판을 기웃거린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굿판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어떤 굿판에서는 사진이고 뭐고 망자를 위한 한풀이에 함께 울고 막걸리에 취해있기도 했다고. 사라져가는 굿판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사진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을 굿판의 혼들이 먼저 알아주었던 것은 아닐까?

근대화에 밀린 오지들 찾아다니며 기록한 김수남

"사람들이 주는 술은 다 받아먹고 굿판 사람들보다 더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다니는데, 그 와중에서도 협조를 구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부탁하면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할 것 없이 시키는 대로 비벼주고 포즈를 취해주고 춤도 추어주곤 했다." - 황루시(관동대 교수)

이 책의 1부에서는 이처럼 그가 남긴 굿 사진 그 이면의 일화들을 만날 수 있다. 고인이 생전에 어울렸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김수남에 대한 회고들이 굿판의 음식들처럼 푸짐하달까? 아울러 한평생 오로지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온 직업인으로서, 그리하여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장인으로서 그의 사진세계와 사진관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다.

2부는 그가 남긴 '한국의 굿' 사진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담고 있다. 황해도 내림굿, 경기도 도당굿, 제주도 영동굿, 평안도 다리굿, 은산 별산굿, 강사리 범굿, 위도 띠벳굿... 한국의 굿이 이렇게 많았나? 김수남이 기록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많은 굿들은 혹 잊혀지고 있지 않을까?

"아름답고 화려한 문명이나 문화가 서구의 꺼플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꽤 오랜 시간 경험하고 여러 번 마음세척을 한 후에야 나는 그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술가였습니다. 모두가 소리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고 조각하는 예인이자 장인이었고 잽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들 예인들을 통해, 그들의 삶과 환경을 통해 아시아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김수남,<빛과 소리의 아시아>(2005)중에서

그는 개발과 근대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오지를 찾아 기록한다. 일본, 중국, 타이완, 인도네시아, 타이,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지의 전통의례와 민속 문화를, 김수남이 남긴 사진과 사진에 얽힌 일화와 함께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수남씨는 사진하고 제 생명을 바꾼 사람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기록하느라고 제 나라에서 편히 있지 못했고 남의 인생을 찍느라고 정상적인 제 삶을 살지 못했다. 술 때문에 명을 줄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가 평생 가장 사랑한 것이 가족과 친구와 술이다. 가족은 믿거니 일찍부터 아내에게 떠맡겼다. 국내 답사 현장에는 술친구가 너무 많았고 해외에는 술밖에 친구가 없었다. 인생의 목적을 '사라져가는 아시아 문화현장의 정직한 기록'에 둔 작가에게 술은 고독한 여정을 지탱해준 유일한 친구였다. - 책 속에서

<혼(魂)-김수남 사진굿>은 김수남을 알고 싶은 일반인들을 위해 그에 대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핵심만을 뽑아 잘 정리한 듯하다. 다양한 굿사진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음도, 이국적인 아시아 여러 나라의 풍습을 보는 것도 남다른 재미다.

삶을 전혀 모르던 유년시절에도 굿판 구경이 좋았는데 삶의 굴곡을 어느 정도 겪은 이 나이에도 굿판은 솔깃하다. 이 책 덕분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구경하지 못하는 수많은 굿판들을 실컷 만났다. 어린시절, 쏟아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 올리고 날밤을 새워가며 굿판 구경하던 그 재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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