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나물아 어딨노? - 할머니가 일러주는 70가지 산나물 이야기
편해문 지음, 권대성 감수, 서명정 촬영 / 소나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으너리야 더너리야 모시딱지 쇠딱지야 고두설기 시설기야 밤나물아 참나물아- 니 어딧노! 고마 내 눈에 비뿌라(보여버려라)….”
‘으너리야 더너리야…’산나물을 부르는 노래다. 동네 아낙 여럿이서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지만 필사적으로 나물만 ?다보니 어느새 뿔뿔이 흩어지기 예사, 이럴 때면 다른 아낙이 부르는 노래는 무서움을 덜었다.
산나물 아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늘보다 넘기 힘들다는 보릿고개, 허기진 배로 산나물만을 ?아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노래를 부르며 고단함을 잊었다.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식솔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쁘다. 그러니 더 숨어 있지 말고 이제 제발 나타나다오.
<산나물아 어딨노?>에서 만난 산나물 노래들은 아리고 고단했다. 노래들은 나물에 의지하여 목숨을 연명한 민중들의 애환과 순박함을 절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산나물이나 산채정식처럼 산나물을 재료로 하는 음식들이 요즘에는 여유의 맛이요, 배불리 먹는 것보다 건강을 위하여 먹는 참살이(웰빙)식이 되었다지만, 30~40년 전만해도 절체절명의 양식이었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횡포,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흉년, 내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어서 풀뿌리처럼 척박한 민초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였던 산천의 풀과 나무. <산나물아 어딨노?>는 산나물에 얽혀있는 민중의 삶을 찾아 떠난 특별한 기행이다.
굶주린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였던 산과 들의 나물들
'시집 온 새댁이 나물 이름 서른 가지를 모르면 굶어 죽는다.'
시집 온 새댁이 나물을 많이 알고 있어야 가족들이 덜 굶주렸다. 남도 모두 알고 있는 나물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수록 목숨을 연명하는데 유리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미 모두 뜯기어 나간 헐벗은 자연, 독초라도 어떻게든지 다스려서 우선 먹어야 했다. 그래서 아낙은 나물마다 낱낱이 알아야 했으리라.
하늘보다 넘기 힘들다던 보릿고개. 배고픈 식솔들을 위해 여자들은 산으로 들로 나물을 하러 수많은 고개를 넘고 남자들은 칡을 캐며 아득하게 깊은 땅을 파내려 갔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송기를 벗겨냈다. 이것들을 잘 말려두었다가 겨우내 나물죽을 쑤어먹었는데 말이 죽이지 쌀이나 보리 같은 잡곡을 조금 흩뿌리는 정도였다나!
겨우 내내, 보릿고개에도 죽을 먹었다. 이렇게 나물죽만 먹다보면 얼굴이 붓고 송기는 많이 먹으면 피똥이 나왔다. 그럴망정 우선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아내이자 어미인 여자들은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렇듯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안동 나물시장에서 만난 예순일곱의 길안 할머니와 다른 할머니들.
삼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열여덟 살에 의성으로 시집을 가 세 동서가 함께 모여 살았다고. 식구가 열셋, 논밭이라고는 거의 없다보니 굶는 것은 예사였다. 막내동서였던 할머니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겨울에는 온가족이 사흘씩 굶곤 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서 일할 사람이 없었고 논밭도 없었다. 가을에 해놨던 묵나물(말린 나물)은 떨어진지 이미 오래.
옛날, 산나물을 하는 때가 보릿고개와 겹칠 뿐 아니라, 지난해 봄에 묵나물로 만들어 놓았던 것도 거의 다 떨어져갈 때쯤임을 짐작해야 한다. 나물에 얽힌 눈물겨운 삶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있고도 남을 듯했다. 산나물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오로지 붙잡고 매달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 나오는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책속에서
무엇이든 뜯어 먹을 수 있는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이것은 길안 할머니네만의 사정이 아니어서 20가구 중에 5~6가구는 며칠씩 굶는 것이 보통이었다. 겨우내 굶었던 사람들은 봄이 되면 무리지어 산으로 갔다. 재미로 하는 것과 목숨 줄을 걸고 하는 것은 다를 것이다. 민중들의 삶이 녹아있는 나물 이야기는 그냥 읽기에는 가슴이 너무 쓰렸다.
산나물 아리랑 으너리야 더너리야...
“우리는 ‘산나물’이 민중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는 데 생각을 모았다. 조선중기 이후 잦은 가뭄과 홍수, 보릿고개, 전란과 같은 민중의 생존이 극단으로 위협 받았을 때 마지막 먹을거리가 나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나물’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앎도 없었다. 도감을 뒤져보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학명이나 이름이 아닌, ‘산나물’과 민중이 한데 얽혀 살았던 ‘삶의 맥락’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후배들과 산나물을 찾아다닌 것이 벌써 네 해가 지났지만, ‘산나물’의 맛과 향, 그것을 해먹던 춘궁기 민중들의 고통과 땀과 지혜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잊지 못하겠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쓰든 달든 돌이켜 잊지 못할 것들이 있어야 한다.”- 저자 편해문
<산나물아 어딨노?>는 특별하다. 민중들과 함께 살아 온 산나물을 통하여 민중들의 삶을 헤아려 본다는 것도 그렇고, 저자가 직접 산나물로 연명을 하였던 사람들의 구술을 통하여 이야기를 엮어냈음이 또한 특별하다. 가난하였던 시절 나물로 연명을 해 온 할머니들과 4년간에 걸쳐 산으로 가서 산나물을 만나 냄새 맡고 먹어 보면서 산나물과 얽혀 온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것 만이랴. 할머니들이 훗날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있어 산나물과 뭉쳐 살았던 절절한 이 사연들을 이렇게 속속들이 들려 줄 수 있으랴. 산나물을 부르는 절실하고 애잔한 노래들을 어떻게 채록해낼 수 있으랴. 저자는 이것들을 책으로, 책으로도 모자라 영상으로 그대로 담아 중요한 자료집을 냈다.
책을 읽는 가슴 찡하도록 절절한 맛, 책의 부록 DVD. 할머니들의 순박하고 질박한 사투리와 함께 떠나는 산나물 여정이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산나물은 요 뿌리(줄기 아랫부분을 말하는 듯)가 빨개. 뿌리가 전부 빨갛잖아. 이 나물 뿌리를 밭에 심으마(심으면) 저 미나리 뿌리 그치(같이) 새파래. …(높은 산나물과 낮은 산나물은) 머거보만(먹어보면) 천지차이라. 전부 다는 모르지만 아는 이는 안다카이. 약내(한약 냄새)가 난다카이.”-책속에서
전체적으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하였다. 때문에 소박하고 질박한 안동 사투리가 자주 등장한다. 절반은 산나물에 얽힌 이야기이고 책의 나머지는 할머니가 알고 있는 산나물 70가지다. 나물마다 사진을 찍고 통상 불리는 이름과 식물도감에 실린 이름, 나물의 특성이나 해먹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나물 중에는 그간 우리가 꽃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도 있고, 자칫 잘못 먹으면 목숨까지 잃는 독초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예사로 보았던 나물이나 꽃이 달리 보인다. 위험을 감수하고 독초까지 먹어야 하다보니 다스려 먹는 방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었겠다. 주의해야 할 점과 먹는 방법을 자세히 실었다.
이밖에도 도감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식물 이야기나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싣고 있어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썩 요긴한 책이 될 듯하다. 또한 나물과 함께 넘어온 삶의 수많은 고비에서 얻어진 인생관 등이 산나물을 부르는 노래와 함께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