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공부는 잘할까? 친구들하고는 잘 어울릴까? 선생님한테 예쁨 받을까? 우리 아이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등 내 아이의 학교생활이 엄마로선 여간 궁금한 게 아니다.
<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는 고봉초등학교(경기도 고양시) 2학년생들이 쓴 일기에, 담임 문현식 선생님이 자신의 생각이나 관련 에피소드를 일기형태로 써서 묶은 책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선생님의 마음을 맘껏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이 연필심 꾹꾹 눌러 순진하게 담아낸 마음(아이들 일기)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선생님 일기)이 책을 읽는 동안 웃음을 머금게 한다.
쉬는 시간에 정작 쉬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더욱 바빠지는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의 뽀얀 먼지 속 정경이 몽글몽글 피어난다고 할까?
#1. 초등학교 2학년 아이 마음에는 무엇이 자랄까
-오늘은 엄마 생신이다. 아빠가 지방 출장을 가서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저녁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서울갈비'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왔는데 아빠가 생신 축하한다고 꽃바구니 배달을 시킨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기뻐하지 않고 돈으로 주면 필요한 거나 사지하면서 투덜투덜 거린다. 엄마는 좋으면서 화를 낸다.-4월 30일 임수진 일기
-오늘은 돈을 더 많이 저축하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2월 28일이 엄마생신이고 5월 9일이 아빠생신이다. 근데 돈이 너무 부족해서 하루에 100원씩 저금하고 빨래 개서 500원도 벌 거고 실내화 빨아서 500원을 벌 거다. 양은 적지만 티끌모아 태산도 있으니까. 옛날에는 편지만 썼지만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2월 2일 이희원 일기
이 두 편의 일기는 썩 잘 썼다. ‘아빠가 엄마의 생신 축하 꽃다발을 보냈다’는 어색한 문장이 보이지만 아빠의 부재중에 생일을 맞은 엄마의 모습이나 집안 행사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희원이의 일기도 기특하다. 돈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와 돈을 벌기위한 구체적인 방법, 티끌모아 태산, 편지만이 아닌 실질적인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짧은 글에 모두 잘 담았다.
일기로 아이들 글짓기 공부를 시킨다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런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하지만 아이들은 마음을 검사받게 된다. 검사를 하기 때문에 일기는 억지로 꾸며지고 아이들의 마음은 더 이상 순수하게 자라지 못한다.
일기에 있는 그대로를 적지 못하고 감추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면서 일기 본연의 뜻이 달라진다. 또한 선생님이 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의 일기 검사는 ‘사생활 침해’라거나 ‘인권침해’라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제 마음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탓에 아이들은 일기를 어려워하고 쓰기 싫어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일기쓰기를 통한 글짓기 교육을 반대한다. 다만 일기는 아이의 마음이나 그날의 일이 잘 들어가 있으면 된단다. 이 때문에 이 선생님의 일기 교육에는 15줄은 써야한다거나 반드시 써야한다는 일기규칙은 없다.
아니 오히려 기쁨이 많은 날에는 정작 일기를 쓸 여가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등 아이들 마음 가까이 잇닿아 있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일기인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를 시시콜콜하게 적은 일기의 가치를 높게 매기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책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일기에는 잘 쓰려고 애써 다듬어 썼거나 꾸며 쓴 느낌보다는 아이들만의 풋풋하고 어설프지만 맑고 순수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문장 역시 어설프다. 어떤 아이는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는 마지막 날 밤 일기에 '할머니랑 내일 헤어져서 슬펐다'라고 적기도 한다.
이 풋내 물씬 풍기는 어설픈 일기를 만나는 동안 감동이 잔잔하게 일고 웃음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초등학교 교실풍경과 선생님의 모습(마음)이 눈에 선하다
생일파티 때 교실에서 춤을 추기로 한 여자아이가 자기도 여자가수 누구처럼 '쮸쮸빵빵'한 몸매를 갖고 싶다고 했다. '쮸쮸빵빵'이 아니라 '쭉쭉빵빵'이라고 알려 주었더니 '쮸쮸빵빵'이 맞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아이들도 '쮸쮸빵빵'이라고 말한다.
여자 아이들이 청소 시간에 청소를 안 하고 최신 유행하는 털기춤 연습을 했다. 누가 제일 잘 추나 뽑아보라고 나한테 판정을 강요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동요를 틀어주면 싫어한다. 가요를 틀어주면 감정을 잡고 따라한다. "그대 기억이 지난 사랑이 내 안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제발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데...." 라는 노래 가사가 뼈에 사무치는 것일까?.-선생님의 일기
이 일기를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뜻을 알기나 하고 부르는 건지, 트로트를 간드러지게 꺾어 부르는 요즘 아이들이 신기할 때가 많다. S라인이니 쭉쭉빵빵이란 말을 어른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말하는 요즘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보는 최신유행(춤이나 노래, 패션 등)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썩 잘 따라하는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처럼 쭉쭉빵빵이 되고 싶다는 아이. 털기춤을 추면서 제일 잘하는 아이를 뽑아달라고 하는 아이. 아이들 누구나 예뻐해야 하는 선생님으로선 제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달라는 아이들 앞에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미도 있거니와 요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자라는 교실 전경이 눈에 선하다.
저자 문현식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의 일기를 소개하고 있다. 친구나 칭찬에 관한 일화 등 교훈적인 대목도 많이 보이지만 책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웃음 머금고 읽어야 할 만큼 재미있다. 아이들의 서툰 일기와 선생님의 일기는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옛날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한해, 내 아이를 가르쳤던 선생님의 마음도 이랬겠지. 새 학년에도 지난해처럼 아이들의 책읽기와 일기쓰기에 남다른 애정과 소신을 가진 선생님을 만나면 좋을 텐데. 2학년 3반 때 장가를 갔던 우리 담임선생님은 지금 할아버지가 되었을 거야. 한 번도 만나 뵌 적이 없는데 어디에 사실까?' |